“중년도 뭔가 하고 싶은 주체임을 보여주고 싶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2.1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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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격> 신원호 PD 인터뷰

 

▲ 신원호 PD(오른쪽)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왼쪽)가 대담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남자의 자격>(KBS)이라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은 여러모로 특이하다. 요즘 쇼 프로그램의 대세인 아이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남자만 등장한다. 게다가 이경규(51), 김국진(46), 김태원(46), 이윤석(40), 이정진(33), 윤형빈(31) 등 출연 멤버의 반수 이상이 중년이고, 배우인 이정진을 빼면 비주얼과도 거리가 멀다. 몸이 굳어가기 시작하고 변화와 적응보다는 아집이 세지기 시작하는 중년 남자가 ‘죽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으며 이런저런 도전에 나서는 모습을 담은 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주말 저녁 시청자들을 불러모으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하반기 합창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하모니’ 편은 엄청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나이 먹은 사람에게 점잖음을 너무 강요한다. 방송에서 아저씨도 쫀쫀하게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주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하는 <남자의 자격> 연출자 신원호 프로듀서를 인터뷰했다.

왜 출연진을 남자로만 한정했나?

동성끼리 있을 때 훨씬 더 자유스럽게 이야기가 되니까, 섞어 놓으면 러브라인 외에는 다 잃어버린다. 솔직한 부분이 날아간다. 하지만 초반에 마초적으로 보여서 반감도 있었다.

제목도 ‘남자의 자격’이다.

여성 시청자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외려 여자들이 더 많이 본다.

언제부터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았나?

2009년 3월에 시작해서 석 달 뒤에 ‘패러글라이딩’ 편이 방송되었다. 그게 사실상 남자들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시작이었다. 그 전에는 금연이나 육아 등 남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시키는 콘셉트였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이 항목이 있었다. 패러글라이딩 편에서 처음으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러다 그해 9월부터 시청률이 안정적으로 나왔다.

프로듀서가 37세인데 출연진 평균 나이는 42세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소통이 잘 된다. 이경규씨와는 약간의 긴장 관계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100% 서로 신뢰한다. 이경규씨의 센스나 아이디어가 제작진보다 낫다고 느낄 때가 많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인 ‘남자의 눈물’ 편을 찍으면서 서로 울고 속마음도 꺼내 보이고, 그러면서 공감대가 넓어졌다.

중년 남자를 다루어보니 어떻던가?

‘선물’ 편에서 보듯 김국진은 백화점에 가보지를 않았다. 그때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처음 사본 경우였다. 아이템마다 그런 의외의 것이 많다. 김성민이나 이정진 빼고는 완전 옛날 아저씨 타입이다. 주는 대로 입고, 실생활 잘 모르고…. 오히려 김태원이 생각보다 표준에 가까운 사고방식과 노멀한 생활 태도를 갖고 있다. 이윤석이나 김국진은 ‘남자’로 큰 사람이라 가부장적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와 비교했을 때 가장 변화가 큰 사람이 이윤석과 김국진이다.

쇼에서는 출연진이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나?

각자의 머릿속에는 스스로가 세운 장벽이 있더라. 건강검진을 하자고 했을 때 절대 안 하겠다고 했다. 모르고 살겠다는 사람이 반이고, 방송에서 내 속까지 까는 것이 싫다고 한 사람이 반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했다. 김국진은 ‘방송에서 영어 안 한다, 물에 안 들어간다, 개 안 키운다’ 이런 원칙을 갖고 있었는데 방송하면서 다 깼다. 

프로그램이 전체적으로 어깨에 힘을 뺀 듯이 보인다.

어마어마해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캠페인, 감동, 이렇게 비치는 것이 싫다. 낄낄거리고 웃는 것이 좋다. 그것이 예능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은 진짜 아니면 안 보니까. 예능의 끝이 리얼이다. 서양에서는 무인도에 가둬놓거나 바람피우는 현장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며 더 독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것은 안 통한다. 우리는 그것에 비해서는 감정에 호소하는 착한 리얼, 따스한 리얼이 먹힌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웃기는 데 강박증이 있나?

웃기는 것을 해야 하나, 스토리를 전달해야 하나, 그것을 놓고 매번 고민한다. 쉽게 손이 가는 것은 웃기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웃기더라도 궁금해야 채널을 고정한다. 쇼를 통해 못 보던 그림을 보고 궁금한 것을 해소하고 감동을 하고 그런 것을 원한다. 즐거움의 영역에 웃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더라.

중년 남자에게 합창도 시키고 탭댄스도 배우게 하고 그러는데, 대한민국 아저씨의 평균적인 문화 소양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재미있는 뮤지컬은 안 졸고, 조금 쳐지는 것은 억지로 참아가면서 보는 수준 정도인 듯하다. 분명 쁘띠부르주아가 존재한다. 그런 문화적 ‘허세’의 대세가 뮤지컬이다. 박칼린이 등장한 ‘하모니’ 편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도 그런 사이클을 탄 측면이 있다.

소녀시대 팬클럽 되기나 요즘 하고 있는 탭댄스는 중년 판타지인가?

중년 남자는 돈 되는 일이 아닌 것은 판타지로 여기며 자기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해봐요, 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라고 남자들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나이 먹은 남자가 탭댄스 추는 것은 못할 짓이라고 여기는 것이 잘못이다. 실제로 소녀시대 팬클럽을 만나보니까 50대 남자도 있더라. 그때 ‘이게 비정상인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친구들 가운데 자신보다 나이 먹은 이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이 있다. 나이 먹은 사람이 아이돌에게 환호하는 것이 그렇게 욕을 할 일은 아니지 않나? 요즘 게시판에 암 특집을 왜 그렇게 많이 하느냐는 글도 있다. 그건 너무 배려가 없고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저씨들이 뭐 했을 때 꼴 보기 싫다, 주책이다 그러는데, 그것이 더 문제이다.

건강검진이나 암 소재는 왜 다루나?

‘굳이 버라이어티에서 몸으로 때우는 것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 관련 에피소드가 잘 풀리면 구성애씨나 안철수씨 같은 분 모셔다가 이야기만 듣는 것도 하고 싶다. ‘남자와 섹스’, 이런 것도 풀어놓고 싶다. 그것이 가능할까 타진하는 단계로 건강 관련 아이템을 다루고 있다. 시청률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검진만 하면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대부분 그것을 안 하지 않나. 그래서 처음으로 핵심 시간대에 내가 시청률 잘 나오는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이용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프로그램 게시판에 ‘당신 프로 보고 건강검진해서 내가 살았소’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앞으로 두 회분이 더 나갈 것이다.

크게 히트한 ‘하모니’는 합창을 소재로 채택했는데.

합창단 경험이 있는 분들이 공연할 때마다 운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짜릿한 것은 있는 것이지?’라고 물어보았더니 그렇다고 하더라. 공감하고, 공감이 이어지는 순간 사람은 거기에 반응한다. 거제도 합창대회에 참가했을 때 첫 팀 공연을 보는 순간, 거기에서 반응이 왔다. 두 번째 실버 합창단 공연을 보는데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돌아보니 다들 울고 있었다.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예술적인 체험도 아닌데 눈물이 나오는 장르를 모르겠더라. 그게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애초에 1회로 편성된 합창대회 편을 전 출전팀을 모두 소개하는 2회차로 늘리기로 즉석에서 결정했다. 한 회의 엔딩은 무조건 할머니 합창단이라고 생각했다. 편집하면서 계속 울었다. 

원래 PD가 꿈이었나?

대학(서울대 화공과 94학번) 때는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학내 영화서클에 실망(?)해 직접 영화판 조감독으로 나서기도 했다. ‘생활의 무게’ 때문에 영화판을 나와서 2001년 다큐멘터리 PD로 입사했다. 생방송 <세계는 지금>을 10개월 정도 하다가 예능으로 발령이 났다. 나중에는 영화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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