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봐왔던 ‘아저씨’ 우리와 살아갈 ‘아저씨’
  • 정덕현│<대한민국 남자들의 숨은 마흔 찾기> 저자 ()
  • 승인 2011.02.1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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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성별 넘어 사회의 변화 담은 ‘중년 남자의 재발견’ 화제

 

▲ KBS 에 출연한 이경규. ⓒKBS 제공

최근 ‘중년의 재발견’이 화두가 되고 있다. 설 연휴 최고 히트 프로그램은 40년 넘게 캐주얼하고 댄디한 모습으로 살아온 통기타 가수들이 모여 앉은 ‘세시봉 쇼’였다. 또 중년 남자가 주인공인 <남자의 자격>이라는 예능 쇼가 TV에서 인기라는 점이 상징적이다. 

재발견되는 우리 시대의 중년 남자는 어떤 자화상을 그리고 있을까. 과거 아버지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중년 이미지는 늙수그레한, 말 그대로 ‘아저씨’였다. 볼록 나온 배에 일에 지쳐 파김치가 된 얼굴, 회사에서는 언제 정리해고될지 몰라 전전긍긍, 집에 오면 쥐꼬리만 한 월급에 바가지나 긁히는, 그리고 주말이면 방바닥에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듯 뒹굴며 TV 앞을 벗어나지 않는 그런 아저씨. 하지만 지금의 중년 남자가 과연 그들이 보아왔던 중년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을까. 답은 ‘글쎄’이다.

이런 애매모호한 답이 나오는 이유는 우리의 뇌리 속에 이미 강하게 심어져 있는 ‘아저씨 이미지’의 잔상이 여전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럼에도 이 아저씨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의 중년이 점점 더 눈에 띄기 때문이다. 과거 아저씨의 이미지와 실제 아저씨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벌어지고 있으며 또 왜 그런 것일까.

외모에 대한 대중 매체의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져

가장 민감하게 중년 남자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역시 대중 매체이다. 먼저 외형에 대한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배불뚝이가 ‘여유 있는 중년’을 상징하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이른바 ‘꽃중년’이라 불리는 신(新)종족이 나이를 잊은 몸매를 자랑하며 중년들을 헬스클럽으로 몰려가게 만드는 시대이다. TV 드라마 속 식스팩을 가진 중년은 과거 흐트러진 모습의 중년과 다른, ‘관리되는’ 중년의 이미지를 심어놓고 있다. 배불뚝이가 상징하는 것이 본연의 매력이 아닌 외적 조건들(예를 들면 지위나 돈)이었다면, 식스팩은 그 사람만이 가진 미적 매력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외적 조건과 늘 따라붙는 ‘권위적인 모습’도 따라서 많이 사라졌다. <남자의 자격>과 같이 아저씨를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년 남자는 권위가 아니라 심지어 귀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귀농을 체험하기 위해 시골에 갖게 된 아지트에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새로운 만남에 설레 하고 패러글라이딩이나 전투기 조종사 같은 모험을 감행하기도 하며 걸그룹에 열광하는 아저씨 팬이 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진짜 중년의 모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프로그램이 현재의 중년과 소통하고 공감한다는 것이다. 즉,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 욕구는 요즘 중년의 욕망에 깊숙이 접속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욕구가 점점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 역시 대중 매체에 부쩍 많아진 중년 콘텐츠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자의 자격>은 그 선두 주자로서 중년을 재발견해냈다. 최근 <놀러와>에서 대히트를 친 ‘세시봉’ 역시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은 물론이고 양희은, 이장희가 출연해 나눈 진솔한 이야기와 환상적인 앙상블은 많은 중년의 향수를 자극했다. ‘세시봉 효과’라고 불릴 만큼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중년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이유는 역시 우리가 보아왔던 아저씨 이미지와 실제 아저씨의 모습 사이에 놓인 간극 때문이다. 바로 이 간극은 예능에서 웃음으로 전화된다.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의 아저씨가 열심히 춤을 추고, 아저씨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도전을 하는 것은 늘 편견을 부수면서 웃음과 감동을 준다. 중요한 것은 이 ‘달라진 아저씨’에 열광하는 이들이 아저씨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자의 자격>은 여성에게도 인기가 있고 최근 들어서는 20대 팬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세시봉’에 나왔던 송창식의 창법을 듣고는 20대들이 “어떻게 저렇게 부르냐”라고 감탄을 거듭하며 트위터에서 핫이슈가 되었다.

그렇다면 중년 남자의 욕구를 담아내면서 그들을 재발견하는 과정으로 웃음과 감동을 주는 이른바 ‘중년 콘텐츠’는 왜 중년 바깥 세대와 성별을 넘어서까지 공감을 주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그 아저씨가 여성에게는 남편이며, 자식에게는 아버지이고, 아버지에게는 아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거 어딘지 삶을 저당 잡히며 살아가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한 세대를 살아낸 아저씨의 이미지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성공이 아닌 개인적인 행복이 새로운 가치 기준으로 세워진 현 시대에 아저씨의 행복은 거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저씨와 연결된 가족의 행복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남자’ ‘가장’ ‘아저씨’라는 견고한 껍질 속에 감추어야만 했던 아저씨의 욕구가 슬슬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세기 말부터 ‘아줌마’의 불행과 위상 회복이 TV 드라마의 주요 소재가 되었지만 알고 보면 ‘아줌마’보다 나을 것이 없는 ‘아저씨’의 좌절에 대해 우리 사회는 침묵해왔다. ‘돈 벌어오는 무생물’로 전락한 아저씨를 담보로 세워진 우리네 사회가 가진 부조리함을 깨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 아저씨가 변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 MBC 에 출연한 김세환,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왼쪽부터). ⓒMBC 제공

아날로그 정서에 대한 대중의 갈증 해소해줄 대상으로 부각

하지만 이런 얘기는 당위에 가깝다. 그러해야 한다는 얘기이지 실제 중년 남자가 요즘 들어 세대와 성별을 넘어 매력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왜 그럴까. 중년 남자의 그 무엇이 현 시대에 울림을 주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경제 불황과 연관 지어 향수와 복고를 얘기한다. 물론 그런 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아니다. 여기에 한 가지 빠져 있는 부분은 아날로그 정서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이다. ‘세시봉’의 통기타 선율과 시에 가까운 가사 그리고 조미료 하나 섞이지 않은 듯한 발성이 하모니를 이루는 장면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디지털 세계의 차가움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힘을 발휘한다.

7080으로 대변되는 현 중년은 바로 이 마지막 아날로그의 세계를 문화로 경험한 세대이다. 그들은 합창을 하며 그 하모니가 주는 알 수 없는 감동의 시간을 익숙한 경험으로 알고 있는 세대이다. 어딘지 쿨하지 못하지만 정이 가고, 어쩐지 편안하게 말을 건넬 수 있을 것 같은, 그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현재의 중년 세대만이 가진 매력이 아닌가.

지금 중년 남성은 수많은 과도기에 걸쳐져 있다. 수직적인 권위의 시대에서 수평적인 소통의 시대로, 일과 성공을 지상 목표로 세우던 시대에서 개인적인 행복의 시대로,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민주화를 부르짖고 이상을 꿈꾸던 거대 담론의 시대에서 일상 속의 소소함을 추구하는 시대로, 남성의 시대에서 여성의 시대로… 과도기에 걸쳐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요즘 중년 남성은 어느 한 시대를 오롯이 점유하지 못한 소외된 세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이 여러 과도기에 걸쳐진 중년 남성은 그 변화의 양 끝단을 연결시키는 다리로서 소통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1970년대의 청년 문화가 있었듯이 현재 어떤 ‘중년 문화’가 그만큼의 힘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보아왔던 중년에서 이제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중년을 이 시점에서 다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중년 남자의 재발견은 그 세대와 성별을 넘어서 사회의 변화를 담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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