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홀로서기’로 방향 틀었다
  • 신혁진│불교포커스 기자 ()
  • 승인 2011.02.1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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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정부 지원 거부…정부와의 갈등 국면 오래갈 듯

지난해 12월8일 여당이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한 이후 불거진 불교계와 정부의 갈등이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과 교육원 등 중앙 종무 기관 스님과 재가 직원들은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법당에서 매일 아침 1백8배를 하고 있다. 정월 대보름 다음 날인 2월18일에는 4대강 공사 현장인 경북 의성 낙단보 현장에서 ‘민족 문화 수호’를 위한 1천80배를 할 계획이다. 이곳은 공사 과정에서 고려 시대 마애부처님이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발견된 곳이다.

▲ 지난 1월11일 조계사에서 열린 법회에서 민족 문화 수호와 한나라당 반대를 천명하며 스님들과 불교대학 재학생들이 삼보일배를 봉행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종단 운영 기조를 ‘쇄신과 변화’로 바꿔

불교계는 현재 삭감된 템플스테이 예산에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템플스테이 예산은 지난해 1백85억원에서 63억원이 삭감된 1백22억원으로 국회를 통과한 상태이다. 실제 배정된 예산 85억원 가운데 각 사찰의 시설 보수에 투입되는 예산은 30여 억원에 불과하다. 이를 100개가 넘는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에 배분하면 각 사찰에 지원되는 금액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수준이라는 것이다.

조계종은 템플스테이 예산을 거부하는 것과 함께 총무원 총무부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민족문화수호위원회를 구성했다. 조계종 수뇌부는 현재의 상황을 불교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소통과 화합’이었던 종단 운영 기조는 올 들어 ‘쇄신과 변화’로 선회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잇따른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지난해 12월11일 대전에서 열린 ‘부처님 성도절 대법회’에서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이도 말고 불교가 5˚만 변화한다면 불교 전체가 큰 변화를 이룰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스님들이 공무원들에게 굽실거리며 로비를 하던 과거의 모습을 털어버리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중독성이 있다. 문화재 사찰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쉽게 운영하려고 하는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오래지 않아 크게 후회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경기도가 “올 한 해 61억원을 39개 사찰에 보수비 등으로 지원하겠다”라고 밝혔으나 용주사와 봉선사 등 경기도 지역 본사와 소속 말사들은 “예산 수용을 보류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계종은 이와 함께 소외 계층을 보살피고 사회복지 활동 등 이웃에 대한 관심과 자비행, 이타행을 펼쳐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있다.

사찰 방재 시스템 구축 사업비도 직접 모금

조계종은 정부의 예산 지원을 거부하면서 “(예산을 지원받아) 2년이면 할 불사를 (예산을 지원받지 말고) 10년 걸려 하자”라고 각 사찰에 독려하고 있다. 쉽고 편한 길을 택하기보다 불교의 자립도를 키워나가자는 것이다. 신도 단체들도 정부가 전액 삭감한 사찰 방재 시스템 구축 사업비를 모금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조계종 종정 법전 대종사는 신년 법어를 통해 “지름길을 버리고 정로로 가라”라고 말했다.

물론 걸림돌도 적지 않다. 조계종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내부의 적’이다. 조계종 지도부의 지침을 어기고 비밀리에 정부·여당 인사와 접촉하거나 자기 사찰을 위한 예산을 끌어오려는 움직임이다. 조계종 지도부는 이에 대해 ‘수차례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단합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조계종 이외의 종단에 대한 정부·여당의 구애와 천태종, 진각종 등 다른 종단의 비협조도 조계종이 불교계를 대표해 지금의 기조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천태종 등은 이미 “조계종의 입장을 따를 수 없다”라고 공언하고 있다. 조계종과 정부·여당의 관계가 벌어진 틈새를 활용해보고자 하는의도도 엿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계종은 이번 기회에 불교의 체질을 개선하고 자립하는 것과 함께 민족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불교 문화를 내손으로 지키고 후대에 전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법회에서 “정부·여당과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종단은 정부와 싸우는 것이 아니고, 정부를 배척하는 것도 아니고 한나라당을 공격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민족 문화, 불교 문화재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인식을 높일 때까지 우리 식대로 불교 문화재를 보호하겠다”라는 것이다. 

정부측에서는 내심 속앓이를 하면서도 시간을 가지고 대응해나가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 고위 인사는 “고민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라고 걱정을 털어놓았다.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는 등 정국 흐름 속에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뚜렷한 묘안을 짜내지도 못하고 있는, 어정쩡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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