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을 곳’ 찾아 헤매는 미국 정부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1.02.21 22: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바마, 3년 내내 1조5천억 달러씩 적자 예산 편성…국가 부채, 14조 달러로 위험 수위 넘어서

예산을 보면 정책과 통치까지 보인다. 예산 없는 정책은 공수표이고 어느 분야에 집중 투자하느냐는 정치 이념과 통치 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조7천3백억 달러 규모인 2012 회계 연도 연방 예산안을 미국 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면서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과의 마라톤 예산 투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미국은 해마다 적자투성이 예산을 편성해야 하고, 이미 엄청난 빚더미에 짓눌려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과 2011년, 이번 2012 회계 연도 예산안까지 3년 연속 한 해에 1조5천억 달러씩의 적자 예산을 편성했다. 경기 침체로 세입은 줄어들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 지출은 늘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미국의 국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14조 달러를 넘어섰다. 3억명의 미국민이 1인당 4만5천5백 달러의 빚더미에 눌려 있는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엄청난 적자를 감축하기 위해 예산 삭감에 나섰지만 깎으려 해도 깎을 곳도 없어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세 번째 편성한 예산안을 통해 미국 나라 살림의 현주소를 파악해보자.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12 회계연도 예산안 사본이 지난 2월14일 워싱턴 의회 의사당 상원 예산위원회로 배달되고 있다. ⓒAP연합

오바마, 10년간 1조 달러 적자 감축안 제시

미국의 예산안은 최근 들어 해마다 붉은색투성이로 꾸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월14일 연방 의회에 제출한 2012 회계 연도 연방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오는 10월부터 적용되는 2012 회계 연도 오바마 예산안에서는 한 해 동안 세금으로 2조6천2백70억 달러를 거둬들여 3조7천2백90억 달러를 쓰겠다며 1조1천20억 달러의 적자 예산을 편성했다.

이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이 편성했던 2010년도에는 1조5천5백60억 달러, 2011년도에는 1조2천6백7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적자 폭을 조금씩 줄이고는 있으나 여전히 연방 정부 예산에서만 한 해에 1조 달러 넘게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국가 부채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뉴욕 월가에 세워진 국가 부채 시계(National Debt Clock)를 보면 미국의 나라 빚은 14조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한 해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엄청난 수치이다. 특히 이것은 미국인들이 빚더미에 눌려 압사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아이들을 빼고 세금을 내고 있는 납세자 1인당 무려 12만7천7백 달러의 나라 빚을 떠안고 있는 것이다. 4만5천5백 달러는 보통 중산층의 연봉이다. 미국에서도 10만 달러가 넘는 고액 연봉자는 전체의 2~3%밖에 되지 않는다.

이같은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예산안을 통해 향후 10년간 1조1천억 달러의 적자를 줄여보겠다고 제시했다. 한 해에 1천억 달러씩 적자를 줄인다면 14조 달러의 국가 부채를 갚는 데 1백50년은 족히 걸린다는 계산이다. 그것도 앞으로 적자가 더 이상 추가되지 않고 경기가 살아나 세금을 많이 거둬들여야 가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워싱턴 정치권의 예산 투쟁은 적자 감축 논쟁으로 변질되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 적자를 감축하는 방법으로 75%는 정부 지출 삭감을 통해, 25%는 일부 세제 혜택 종료를 통해 줄이겠다고 밝혔다. 특히 적자를 줄이기 위해 처음으로 국방비까지 축소키로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국방 예산에서 앞으로 5년간 7백80억 달러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5년간 7백80억 달러를 삭감하기 위해서는 미 해병대의 새로운 수륙 양용 장갑차 생산 계획을 폐기시키고 F-35 조인트 스트라이크 전투기 생산을 늦추는 동시에 미 육군과 해병대 병력 3만7천명을 감축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의 국방 예산은 한 해에 7천억 달러에 가까운 것에 비하면 5년간 7백80억 달러를 삭감해도 적자 감축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2012 회계 연도 미국 국방비는 일반 국방 예산 5천5백30억 달러와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비 1천1백78억 달러 등 6천7백10억 달러로 책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국방비 감축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발끈하고 있다. 특히 삭감되는 군사 장비 생산 기지나 군 기지가 있는 지역 출신 의원들은 재고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의 분노뿐만 아니라 국방비 삭감은 지구촌의 슈퍼파워 유지에 필수 요소인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논란을 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으로 꼽힌다.

그 때문인 듯, 오바마 대통령은 국방비 첫 삭감에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항상 앞세우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방비 삭감 계획이 게이츠 국방장관이 마련해 자신이 승인한 것임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부시 전임 공화당 행정부에서 유일하게 유임된 오바마 정부의 각료이기 때문이다. 

교육·에너지 인프라 구축에는 계속 투자

 7천억 달러대의 국방비에 비해, 국방부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미국 국무부의 예산은 4백70억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4백70억 달러 가운데 대외 지원 예산이 3백29억 달러로 국무부 외교 예산 1백42억 달러의 두 배 이상 된다. 제아무리 슈퍼파워라고 할지라도 현금을 원조하지 않으면 외교를 하기 어려운 국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이 원조하는 국가들을 보면 테러 전쟁을 치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뿐만 아니라 이번에 민주화 시민 혁명이 몰아닥친 중동 아랍 국가들도 끼여 있다. 무바라크가 하야한 후 미국의 이집트 군사 원조비 13억 달러는 2012년도에도 국무부 예산에 그대로 잡혀 있다. 더 이상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이스라엘에게도 한 해 31억 달러의 군사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는 요르단에는 3억 달러, 예멘에도 3억 달러를 해마다 지원하고 있다. 아프간 23억 달러, 파키스탄 19억 달러, 이라크에는 10억 달러씩 제공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미국 의회는 적자 감축을 위해 어디에서 얼마를 깎을 수 있을지 부심하고 있고, 삭감 폭을 놓고 지루한 예산 투쟁에 돌입했지만 사실상 더 이상 깎을 곳도 없다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한 해 전체 예산 3조7천3백억 달러 가운데 3분의 2는 대통령이나 의회가 마음대로 손댈 수 없는 예산이기 때문이다.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2조3천8백20억 달러는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등 의료보장보험 1조3천7백8억 달러, 사회보장연금 7천6백7억 달러 등 의무 지출 예산이다. 이것은 미국민들이 연금식으로 세금을 낸 것을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없다. 나머지 3분의 1인 1조3천4백억 달러가 정부 재량 예산이다. 이곳에서 줄여야 하는데 그 가운데 절반인 6천7백10억 달러는 삭감하기 어려운 국방비이기 때문에 깎을 곳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교육과 에너지, 인프라 구축에는 투자를 계속하겠다는 다짐을 보였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올해 상반기 비준 발효된 뒤에 이번 예산안이 적용될 가능성이 커서 한국 기업들과 업체들은 이 분야를 집중 공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