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는 것이 다르면 평가 또한 크게 달라진다
  •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2.2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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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에 대한 ‘인상 형성’이 추후 판단에 미치는 영향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정음(황정음)을 향해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돌진한다. 그때 옆에 있던 지훈(최다니엘)이 재빨리 몸을 던져서 정음을 밀쳐낸다. 하지만 지훈 자신은 피할 겨를도 없이 오토바이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만다. 문제는 충돌 부위. 다음 날 아침, 아직도 술에서 덜 깬 정음에게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광수(이광수)는 지훈이 정음을 구하려다가 앰뷸런스에 실려갔다고 알려주면서 말한다. “거기 다친 모양이던데. 괜찮을지 몰라. 거기 말이야. 남자의 가장 중요한 부분.”

 걱정스런 마음으로 병원을 찾은 정음은 지훈의 병실 앞에서 우연히 지훈과 친구 의사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된다.

   친구1: “어디 봐봐. 아~ 아주 아작이 났네. 안 돼, 이건.”

   지훈: “가망 없나?”

   친구2: “가망 없지, 그럼. 상태를 봐라. 이 귀중한 거를. 아, 너도 참.”

   지훈: “아~ 얼마 써보지도 못하고. 죽겠네.”

   친구1: “그러게. 어제 그렇게 무모하게 몸을 날렸냐!”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음은 다리가 맥없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만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지훈을 만난 정음은 죄책감과 지훈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울먹이며 말한다. “저 때문에 고(자)… 그게 망가져서 어떡해요.” 그리고 그날 저녁에 술에 잔뜩 취해 다시 병실에 나타난 정음은 지훈에게 울면서 말한다. “제가 책임질게요.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제가 다 책임질게요. 평생 책임질게요. 불쌍한 지훈씨.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책임질 거니까.” <지붕 뚫고 하이킥> 55회는 이렇게 하여 정음이 ‘황책임’으로 등극하는 날이었다.

ⓒhoneypapa@naver.com


 이 에피소드에서 지훈이 실제로 다친 부위는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그 부분’이 아니고, 그 부위에서 약 10cm 아래쪽 허벅지였다. 그리고 ‘아주 박살이 나서 써보지도 못하게 된 귀중한 것’도 지훈이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로OO’라는 최고급 시계였다. 물론 시청자들은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자기 때문에 지훈의 중요 부위가 박살이 났다고 믿고 있는 정음의 행동은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만약 우리들 중 누군가가 정음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과연 박살난 것이 지훈의 신체 부위가 아니고 시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대상과 마주하게 되는 경우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한 시간 후에 또는 1주일 후에 자신이 어떤 대상을 만나게 되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접하게 되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각과 판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대가 지각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은 인상 형성에 대한 연구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상 형성에 대한 사회심리학 연구의 고전 중 하나인 애쉬(Asch)의 실험에서는 실험 참여자들에게 평가 대상 인물이 가지고 있는 여섯 개의 성격 특성을 알려주고 그 사람의 인상을 평가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두 집단의 참여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개의 형용사 목록을 제시했다.

   A: 똑똑한, 부지런한, 충동적인, 비판적인, 고집스러운, 질투심이 강한

   B: 질투심이 강한, 고집스러운, 비판적인, 충동적인, 부지런한, 똑똑한

 목록 A와 B는 모두 동일한 여섯 개의 형용사를 담고 있다. 단지 A에서는 긍정적인 성격 특성들이 먼저 제시되었고, 반대로 B의 경우에는 부정적인 성격 특성들이 먼저 제시되었다는 것만 달랐다. 하지만 결과에 따르면, A 목록의 순서대로 성격 특성에 노출된 참여자들이 B 목록의 순서로 성격 특성을 보았던 참여자들보다 평가 대상 인물이 더 사회성이 좋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행복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대’ 가진 뒤에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가치 파악 힘들어

 애쉬(Asch)는 실험 참여자들이 순서상 앞에 제시되는 성격 특성들을 토대로 평가 대상 인물에 대한 기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보았다. 처음에 제시된 형용사가 긍정적인 것인가 또는 부정적인 것인가에 따라 평가 대상 인물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고, 그 기대에 따라 이후에 제시되는 성격 특성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비판적이기도 하다면(목록 A의 순서), 이 사람은 객관적이고 타당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질투심이 강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비판적이기도 하다면(목록 B의 순서), 이 사람은 괜한 트집을 잡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지런한 사람이 고집스러운 경우(목록 A의 순서)에는 고집스러움이 인내심과 끈기가 강한 사람이라는 방향으로 인상을 형성하게 만들지만, 질투심이 강한 사람이 고집스럽다는 것(목록 B의 순서)은 비합리적인 질투심으로 다른 사람을 끝까지 괴롭힌다는 인상을 형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비판적인’이나 ‘고집스러운’에 대한 해석이 평가 대상 인물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먼저 형성했는지 또는 부정적인 기대를 먼저 형성했는지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우리가 기대를 가지고 세상을 지각하는 것은 기대가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들고, 그 결과 우리로 하여금 미래의 상황에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으면, 비가 올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를 하고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개팅에 나올 사람이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자유분방한 집안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만날 장소와 옷차림 그리고 소개팅에 임하는 마음 자세와 행동이 달라진다. 따라서 이러한 기대에 기초해서 미래에 펼쳐질 상황에 미리 대비하는 것은 상당히 적응적인 행동이다.

 문제는 기대가 늘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보수적이지만 소개팅에 나올 당사자는 자유분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종류의 기대는, 애쉬의 연구에서처럼, 기대를 형성하고 난 이후에 접하게 되는 정보에 기대의 색을 덧씌운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대 형성 이후에 접하게 된 정보의 객관적인 가치를 파악하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기대와 불일치하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을 때, 이를 예외적인 사례라고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자신의 기대와 일치하는 사례에만 주의를 집중하고 불일치하는 사례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대와 불일치하는 사례가 이미 세 번 이상 발생했다면, 이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대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신호해주는 정말 가치 있는 정보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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