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대로 ‘사리’ 먼저 모셔왔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3.0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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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도굴해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판 ‘라마탑형 사리구와 사리’ 반환 추진 노력 결실 맺어

 

▲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라마탑형 사리구. ⓒ문화재제자리찾기 제공

미국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라마탑형 사리구의 ‘사리’가 곧 돌아온다. 사리가 반환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보스턴 미술관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원한다면 사리는 반환하겠다”라는 입장을 천명해왔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사리와 사리구의 분리 반환은 불가하다”라는 입장을 고집해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1월23일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취임하면서 ‘사리 반환’이 급진전되고 있다. 정장관은 취임 한 달을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보스턴 미술관이 사리 반환에 동의해서 조만간 찾아올 수 있다”라고 밝혔다. 정장관은 또 “사리구는 밀반출 사실이 공식 확인되지 않아 돌려받을 명분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문화재 반환을 추진해 온 불교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보스턴 미술관에 있는 라마탑형 사리구는 1939년에 일본의 ‘야마나까 컴퍼니’가 팔아넘긴 것이다. 원래 사리구가 있던 곳은 남한의 회암사(경기도 양주)나 북한의 화장사(황해도 개성)로 추정된다. 이것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도굴해서 해외로 반출했고, 보스턴 미술관까지 흘러들어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리보탑은 금은제 도금의 공예 소품으로 높이 22.5cm인데 전체적으로 라마탑 모습을 하고 있다. 사리구의 내부에는 높이 약 5cm의 팔각원당형의 소형 사리탑 다섯 개가 안치되어 있다. 각각의 탑신에 새겨진 명문으로 사리의 주인공을 추정해보면, 부처 진신사리와 당대의 고승인 지공·나옹 스님 등의 사리가 함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리구’의  일제 밀반출 사실 확인 시급

사리구의 원래 소재지가 회암사나 화장사로 추정되는 것은 지공 스님과 나옹 스님의 행적 때문이다. 지공 스님은 인도 마말타국 출신으로 고려 때 회암사를 창건했다. 현재 한국 불교에서 나옹·무학 스님과 함께 ‘3대 화상’으로 꼽힌다. 서기 1363년에 입적한 뒤 정골 사리가 1370년에 고려에 왔고, 공민왕의 명에 의해 양주 회암사에 안치되어 부도를 세웠다. 그 뒤 왕명에 의해 사리가 화장사 등에도 나누어 안치되었다.

나옹 스님은 1320년 1월에 경상도 지역에서 출생했다. 1371년 8월 왕사로 임명되었고, 입적하자 제자들이 사리를 수습해 회암사·신륵사 등에 부도를 세웠다. 문화제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은 “지공 스님과 나옹 스님의 사리가 안치된 사실에 입각해보면 사리구의 출처는 두 스님의 부도가 건립된 사찰 중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화장사 사리탑은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한 사리구와 모양이 유사해서 이곳에서 도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불교계가 라마탑형 사리구가 보스턴 미술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2004년이다. 4년 뒤인 2008년 5월에는 평양을 방문해 조선불교도연맹으로부터 사리구 반환과 관련한 일체의 법률적 권한도 위임받았다. 그해 12월부터는 보스턴 미술관과의 반환 협상에 직접 나섰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던 정병국 현 문화체육관광부장관도 보스턴 미술관을 방문해 협상에 참여했다. 이후 불교계는 보스턴 미술관측에 지속적으로 사리구의 반환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술관측은 “사리구의 반환은 불가하지만 종교적 신성물인 부처님과 고승들의 사리는 원산국으로 반환할 수 있다”라는 답변을 해왔다. ‘단, 한국 문화부장관이나 문화재청장이 사리만의 반환을 승인해야 한다’라는 조건이 붙었다.

보스턴 미술관은 사리구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매입했고, 도굴품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을 들어 반환에 난색을 표명했다. 이상근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은 “현실적으로 사리구의 반환이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리만의 반환’에 동의하고, 문화재청에 승인을 요구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건무 당시 문화재청장이 반대했다. 이청장은 “사리만의 반환은 승인해줄 수 없다”라며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다. 사리만을 받으면 자칫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화재청은 겉으로는 불교계와 보스턴 미술관과의 협상 내용을 존중할 뜻을 비추었다. 그러나 보스턴 미술관은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요구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사리와 사리구의 분리 반환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조동주 문화재청 국제교류과 사무관은 “우리의 원칙이 바뀐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의 공식 입장에 대해서는 우리가 말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정장관이 사리만의 반환에 적극 나서면서 문화재청의 입장이 모호해진 것이다.

‘분리 반환’ 안 된다던 정부측 입장 바뀐 까닭

▲ 2009년 1월 문화재제자리찾기 관계자들과 당시 의원이었던 정병국 장관 등이 보스턴 미술관에서 사리구를 친견하고 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제공

그렇다면 정부는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꿨을까. 크게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정장관이 불교계의 요구를 적극 수용해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정장관은 라마탑형 사리구 반환에 참여했고, 보스턴 미술관에서 사리를 친전하기도 했다. 사리 반환에 대해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정장관이 사리라도 먼저 가져오려고 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정치적인 선택과 판단이다. 현재 정부·여당과 불교계는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으로 촉발된 양측의 갈등은 해를 넘겨서도 쉽게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다 4대강 사업지구인 낙동강변 낙단보에서 마애보살좌상이 훼손된 채로 수개월째 방치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여당과 불교계의 갈등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서울 종로 조계사에는 여전히 ‘민족문화 보호 정책 외면하고 종교 편향 자행하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 대하여 조계사 출입을 거부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종교를 담당하는 문화부의 입장에서는 돌파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정장관이 라마탑형 사리 반환을 성사시킴으로써 불교계와 정부의 화해를 모색하지 않았느냐는 시각이다.

이에 대해 이상근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은 “사리의 반환은 민간 단체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사리와 사리구의 분리 반환을 통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병국 장관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만약 사리만이라도 반환된다면 향후 문화재 반환에서 민·관의 협력에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은 라마탑형 사리구의 반환을 위해 지난 2월 초부터 최근까지 약 한 달간 미국 보스턴에 머무르며 협상을 진행했다. 라마탑형 사리구가 반환될 경우 어디에 소장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아 있다. 회암사는 남한에 있고, 화장사는 북한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제자리찾기측은 “남북 간 이해 당사자들이 만나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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