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재앙’에 식탁이 떨고 있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3.0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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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살처분으로 축산물 공급량 부족 심각…식자재 유통업체들 “웃돈 줘도 돼지 구할 수 없어”

 

▲ 경기도 양평의 한 구제역 피해 농가의 텅 빈 축사에서 개들이 놀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해 11월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4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다소 소강 상태이기는 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 기간 동안에 무려 3백5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되어 매몰되었다. 어지간한 광역시의 인구에 버금가는 숫자이다. 여기에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창궐해 닭 등 가금류 5백4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되었다. 전국 축산 농가가 생지옥으로 변한 것이다.

구제역은 인간에게 커다란 후폭풍을 몰고 왔다. 당장 돼지고기 등 축산물이 부족하고 우유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3월에 개학한 초·중·고등학생들의 식단도 구제역 폭탄을 맞았다. 학생들의 식단에서 고기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영양사는 “구제역으로 인해 축산물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지난해에는 1주일에 돼지고기나 쇠고기가 네 번 정도 식단에 올랐는데, 올해는 두 번 정도로 절반을 줄였다. 닭고기도 세 번에서 한 번으로 줄였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영양을 맞추기 위해 밥을 더 주고, 찌개나 국도 열량을 더 높였다고 한다. 과일 배급량도 지난해보다 늘렸다. 학교 영양사는 “축산물 공급이 오랫동안 차질을 빚으면 아이들 영양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라며 걱정했다. 다른 학교도 실정은 마찬가지다. 각 학교는 자구책으로 1인당 급식비를 2백~3백원 정도 올렸으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문제는 웃돈을 주고도 축산물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축산물 가공업체들은 특히 돼지고기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한 식자재 유통업체 관계자는 “구제역이 돌기 전에는 돼지 한 마리당 35만원이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두 배를 불러도 구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금돼지’이다”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돼지·닭의 경우 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최진성 한국육가공협회 부장은 “돼지의 경우 전체 사육 두수가 8백80만 마리였는데, 그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3백20만 마리가 살처분되었다. 여기에다 구제역 때문에 이동 제한에 묶여 있고, 도축이 안 되고 있다. 지금 현재로서는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돼지고기의 공급 불안은 소비자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구제역 파동 이후 돼지고기 가격(5백g 기준)은 평균 8천3백11원에서 1만6백50원으로 28.1%나 뛰었다. 돼지고기를 식자재로 사용하는 외식 상품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축산물 가격 상승률은 전월 대비 8.7%였다. 돼지고기는 1개월 만에 18.8%나 올랐다. 이는 1984년 4월 28.7% 이래 27년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공포의 삼겹살’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일부 식자재 업체들은 직영 농장을 확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사회적 기업인 ㈜연우와함께는 충남 논산에 3만2천여 평의 농장을 확보하고, 돼지 수천 마리를 사육하기로 했다. 이상근 대표는 “안정적으로 축산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직영 농장을 갖추지 않고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직영 농장을 통해 원활한 축산물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강조했다.

우유만 공급량 겨우 유지하는 실정 

▲ 지난 2월27일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매일유업 평택공장에서 한 직원이 생산 라인에서 나오는 우유 완제품을 최종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건강 식품 ‘우유’ 공급에는 차질이 없을까. 한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구제역으로 인해 전체 젖소 42만9천여 마리 중 3만6천여 마리가 살처분되었다고 한다. 국내 최대 우유 가공업체인 서울우유의 경우 그중 2만6천여 마리를 매몰했다. 이는 전체 살처분 젖소의 65%를 차지한다. 조흥원 서울우유협동조합장은 2월25일에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학교 급식용 우유의 원유가 하루에 5백t가량 필요한데 4백t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서울우유는 낙농진흥회에 2백50t의 원유를 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서울우유는 중·장기 대책으로 젖소 수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낙농업계에 따르면 젖소 살처분으로 원유 공급량이 8% 이상 줄어든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우유 대란’이 닥칠 수도 있다. 

하지만 농림수산식품부는 공급에는 차질이 없다고 말한다. 올해 원유가 전년보다 약 8% 감소한 1백90만5천t이 생산될 전망이지만, 학교 급식용 우유 등 시판 우유는 1백50만5천여 t 정도가 소요될 전망이어서 아직은 물량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우유 중간 유통업자는 “우유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정부의 방침은 유제품 원료유를 최대한 줄여서 이를 시판 우유에 공급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학교 급식 우유 등 직접 마실 수 있는 우유는 부족하지 않겠지만 분유, 치즈, 버터 등은 공급량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부족한 유제품 원료유에 대해서는 할당 관세를 배정해 긴급 수입하기로 했다.

쇠고기는 어떨까. 한우협회 관계자는 “전체 한우 사육 두수는 2천7백62만여 마리이다. 보통 1년에 60만 마리를 도축하는데 이번에 11만 마리가 살처분되었다. 이 정도면 공급하는 데는 큰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구제역 발생 이후 축산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지만 쇠고기 가격은 떨어지고 있다. 한우 5백g당 소비자 가격(한우 1등급 등심 가격)은 3만6천3백35원에서 2만9천4백69원으로 약 18.9% 떨어졌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두 가지로 분석되고 있다. 우선 한우가 돼지에 비해 피해가 적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소비자들이 구제역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국내산 쇠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가격이 내려갔다는 것이다.

식자재 유통업체 관계자는 “우리도 학교 급식을 하는데, 학교에서 쇠고기를 주문하지 않고 있다. 구제역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학부모들이 원하지 않는 것도 이유이다. 먹이면서도 불안하기 때문에 아예 식단에 넣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닭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한국계육협회 시세 기준으로 보면 닭고기는 생닭 1kg당 2천4백원이다. 이는 AI 발생 이전보다 50% 급등한 것이다. 달걀 역시 값이 올랐다. 닭의 경우 AI로 인해 수백만 마리를 살처분한 상태에서 쇠고기나 돼지고기의 대체 식품으로 떠오르면서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국내산 축산물의 빈 자리를 수입산이 꿰차고 있다. 정부는 관세를 없애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축산물 수입을 대폭 늘리고 있다. 축산물 공급이 안정될 때까지는 한동안 수입산이 학교 급식이나 가정의 식탁을 점령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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