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큰 병 들기 전에 정기 검진이 필요하다
  •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3.1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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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의 위암 조기 발견해 치료해준 방송에서 느끼는 것들

“제 인생 통틀어서 가장 제가 사랑하는 단어는 내시경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이 한 말이다. KBS 2TV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에 이경규, 김국진, 이윤석, 이정진, 윤형빈 등과 함께 출연 중이던 김태원은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받았던 위 내시경 검사에서 위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김태원의 위암은 초기였고, 곧바로 시행된 두 차례 내시경 점막 절제 수술을 통해 암세포가 완벽하게 제거되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앞으로 관리를 잘하고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면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오락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 했던 검진 덕분에 암세포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생명을 다시 얻게 된 셈이다. 김태원의 사례는 어찌 보면 요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으로 방영되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발생한 가장 충격적이고 ‘리얼’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이 나간 후에 시청자와 네티즌들은 김태원의 건강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남겼고, 동시에 건강 검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김태원의 오래된, 하지만 조용한 팬 중의 한 명이다. 내 청춘의 노래 순위에는 그가 만든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마지막 콘서트> <사랑할수록> 등과 같은 곡들이 상위에 올라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해둘 만한 뮤지션인 김태원에게 다시 멋진 곡을 만들고 연주할 수 있는 인생의 기회를 연장시켜주었고, 그 덕분에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그의 노래를, 그리고 아마도 그의 새로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 ‘남격’이라는 오락 프로그램과 내시경 검사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사실 ‘남격’에서 중년 출연진들의 건강 검진을 오락 프로그램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황당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러한 의문이 들었던 것은 필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남격’의 신원호 PD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제1113호)에서 ‘왜 하필 건강 검진이나 암과 같은 소재를 오락 프로그램에서 다루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시청률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 검진만 하면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대부분 그것을 안 하지 않나. 그래서 처음으로 핵심 시간대에 내가 시청률 잘 나오는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이용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프로그램 게시판에 ‘당신 프로 보고 건강 검진을 해서 내가 살았소’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마도 신원호 PD는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당신 프로 덕분에 살았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김태원의 사례보다 더 극적으로 정기 검진과 조기 검진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호소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정기 검진을 통한 암의 조기 발견이 자신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남격’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고 최진실’씨나 전문계 고교 출신 로봇 영재였던 KAIST 학생과 같이 자살로 우리 곁을 떠난 분들이 마음에 대한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정기 검진을 통해서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했던 심리적인 문제를 조기에 발견해서 자살할 생각과 행동으로 더 크게 자라지 않도록 제거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배우 최진실의 연기에 아직도 울고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쩌면 출근길에 우리나라 젊은이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했다는 뉴스를 듣고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의 몸에는 심심치 않게 병이 찾아온다. 병은 왔다가 가기도 하고, 생각보다 오랫동안 우리의 몸에 머무르기도 한다. 그런데 거의 모든 종류의 병의 진행 과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몸이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병의 경우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병은 커지고, 반대로 빨리 발견해서 빨리 치료하면 할수록 병을 이겨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아진다는 것이다. 정기 검진을 통해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불치병이라고 여겼던 암조차도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완치에 이를 수 있지만, 감기처럼 하찮게 여기는 질병도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폐렴으로 자라고, 결국에는 사람의 목숨을 요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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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인 상처나 질병 또한 조기 발견해야 치료도 쉬워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다. 심리적인 상처나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면 할수록 완치도 쉽고 치료에 걸리는 시간도 짧아진다. 따라서 마음에 상처가 났는지, 그리고 이 상처가 질병으로 진행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마음의 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은 몸의 건강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마음의 병은 살다보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마음의 감기와도 같은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가면 자연적으로 치유되기도 한다. 마치 감기에 걸려도 따뜻한 물만 자주 마시면서 쉬어주면 우리의 몸이 자연적으로 감기를 치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이 자가 치유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자기 마음에 생긴 상처와 질병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문제는 몸의 자가 치유력만으로 병을 이겨내기 힘든 경우들이 있듯이,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힘겨운 심리적인 상처나 질병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나아질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시간에 기대는 것은 미래의 불행을 예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생각은 암세포를 발견하고도 시간이 약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심리적 상처의 경우에는 ‘시간이 약’이 될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심리적 상처가 생겼을 때 ‘시간은 독’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에 대한 가장 최근의 통계인 ‘2009년 사망 원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사망 원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악성 신생물’, 즉 ‘암’이었다. 하지만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 차지했고, 40대와 50대의 사망 원인 중에서도 자살은 2위였다. 2009년에만 우리나라에서 1만5천4백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근본적으로 자살을 줄이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는 개인의 마음에 상처와 질병을 유발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를 바꾸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미 마음에 병이 걸린 사람의 경우에는 마음의 병이 자살을 충동질하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문제를 진단해내고 개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구성원들의 마음에 대한 정기 검진을 실시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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