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전, 민간 피해가 더 심각하다
  • 양욱│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 ()
  • 승인 2011.03.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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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 무력화 등으로 막대한 손실 초래…국방부 외 유관 기관들이 협력해서 방어책 세워야

 

▲ 북한은 키리졸브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항해 지난 3월4일부터 전자전 공격을 감행했다. 북한은 이미 1980년대부터 30여 년간 전자전을 준비해 오고 있다. ⓒKODEF 한국국방안보포럼 제공

회사원 A씨는 잠에서 깨자마자 놀랐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시간은 벌써 오전 11시이다. 무슨 영문인지 휴대전화가 가리키고 있는 시각은 밤 9시이니 알람이 울릴 리 없다. 차에 시동을 걸고 주소를 입력하려고 내비게이션을 켜니 내비게이션이 장소를 찾지 못한다.

등산을 즐기던 B씨는 오대산에서 등산을 하다가 실족했다. 다행히도 휴대전화 신호가 어느 정도 잡히는 장소여서 112로 긴급 구조를 요청한다. 날씨가 어둡고 인적이 없는 터라 B씨도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지 못한다. 경찰은 위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 위성 등으로 B씨의 휴대전화가 전송하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 정보를 파악하려고 하지만, 웬일인지 응답이 없다.

위치 기반 서비스로 물류 배송을 하는 C기업은 온종일 항의 전화와 메시지에 시달렸다. 배송 차량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 고객들로부터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담당자들은 전산 시스템의 오류가 있는지 계속해서 시스템을 점검하지만 이상은 발견되지 않는다.

위의 시나리오는 GP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어떤 것이 있는지 말해준다.

전파 교란, 전쟁 수단으로서 중요해져

전파는 소중한 자원이다. 공기나 물이 없이 인간이 생활할 수 없듯이, 인간 생활은 전파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구촌의 소식을 전해주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언제 어디서나 의사소통이 가능한 휴대전화, 모르는 길도 정확히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 비행기의 항로를 잡아주는 전파 항법 장치, 오지에서도 통신이 가능한 위성통신 등 우리의 생활은 전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전파가 지금 위태롭다. 그 진원지는 다름 아닌 북한이다.

지난 3월4일부터 사흘간 서울 등 수도권 서북부에서는 GPS의 혼신 현상이 발생했다. 정부는 북한 개성 인근에서 발생한 강력한 교란 전파가 그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 전파로 인해 총 1백45개의 휴대전화 기지국이 영향을 받았지만, 2세대(2G) 휴대전화에만 영향을 미치는 데서 피해는 그쳤다. 그러나 만약 위의 시나리오들처럼 GPS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될 때 사회 전반에 미칠 피해는 막대하다. 

주파수에 대한 공격은 전쟁의 형태 가운데 전자전(Electronic Warfare)에 해당한다. 전자전은 적의 전투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전자파를 사용하는 군사 활동을 말한다. 따라서 적의 전자파 사용을 억제시켜 적 장비나 인원, 시설의 성능을 감소시키는 한편, 적의 전자파 공격으로부터 아군의 장비나 인원, 시설을 보호하는 공격과 수비 활동 전반을 가리킨다. 특히 전쟁 때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적의 잠재적인 전자파 공격을 파악하고 아군을 보호하는 것이 전자전의 활동이다.

사실 전자전은 통상적인 전쟁의 형태이다. 적의 유선통신 케이블을 끊거나 케이블에 전화기를 연결해 도청하는 것이 초기의 원시적인 전자전 형태였다. 그러던 것이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함대가 일본의 사격 지휘 정보의 무선 통신을 방해하면서 현대적인 전자전이 시작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통상적인 전쟁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2차 대전에서도 전자전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럽 전장에서 독일 공군의 폭격은 영국의 전자전 공격으로 인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영국군이 전선 곳곳에 전파 방해 장비를 배치해 독일 공군기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했기 때문이다. 또한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에 무려 6백여 개의 전파 방해 장비를 해상과 공중 등에 배치해 독일군의 레이더와 전투기 무선 통신을 교란함으로써 독일군 방어 체계를 교란했다. 연합군은 전자전으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실패를 예방했다. 

전자전은 현대 전쟁의 핵심 분야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유효한 전자전이 가장 빛났던 것은 걸프전이었다. 당시 이라크군은 옛 소련과 그 위성 국가들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러시아제 방공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평가되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의 전자전 공격으로 인해 이라크군의 방어 시스템은 허무하게 붕괴되었다. 이라크군은 장님이 되어 지상과 공중에서 계속되는 다국적군의 공격에 대응할 수 없었다.

전자 공격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는 전자 보호 체계도 크게 발전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GPS만 해도, 민간 GPS와는 달리 군용 GPS는 별도의 주파수와 암호화된 통신을 통해 전파 방해가 있어도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에서 러시아제 GPS 재머(Jammer: 전파 방해 장치)를 활용하면서 JDAM과 같은 GPS 기반의 무기를 무력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전쟁에서 강한 전파를 발생시키는 GPS 재머는 오히려 손쉬운 공격 대상이 되었다. 북한의 GPS 재머 공격도 마찬가지다. 실제 전쟁이라면 우리 군은 북한의 공격 시설을 손쉽게 찾아내 흔적도 남지 않게 격파할 수 있다.

신종 무기 ‘EMP 폭탄’ 대비책 마련도 시급

▲ 전자 장비를 무력화시키는 EMP 폭탄에 대응해 방호 능력을 실험 중인 E-4B 국가공중작전사령부 항공기. ⓒUS Department of Defense

그러나 문제는 지금이다. 현재는 전시가 아닌 평시이기에 우리 군은 북한의 GPS 재머에 대해 포격이나 폭격을 할 수 없다. 북한의 방해 전파에 대항해 우리가 특정 전파를 쏘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군을 향한 전자전 공격으로 오히려 민간이 막대한 피해를 보는 상황이 전개된다.

휴대전화나 방송의 전파가 교란되었을 때에 민간에서 입을 경제적인 손실은 액수만으로 산정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여기에 더해 최악의 시나리오는 바로 EMP(Electromagnetic Pulse: 전자기 펄스) 폭탄이다.

EMP 폭탄은 전자기파를 발생시켜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고 상대방의 전자 장비를 무력화하는 신종 무기를 가리킨다. 이런 EMP 폭탄이 도시에서 폭발하면 컴퓨터·휴대전화·텔레비전·형광등·자동차 등 반도체로 작동하는 모든 전자 기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폭발로 발생하는 강력한 전자기파가 안테나와 전력선을 타고 이동해 민간·군사용 가리지 않고 수백m 내의 전자 장치를 모두 파괴한다. 폭탄 한 발로 인해 우리의 생활이 100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EMP 폭탄은 이미 우리 군에서 전력화가 가능한 단계까지 개발되어 있다는 사실이 지난 3월7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확인되었다. 반대로 최근 다양한 무기 체계의 개발을 자랑해 온 북한도 EMP 폭탄에 관한 제조 기술을 상당한 정도로 습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북한은 핵무기를 EMP 폭탄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 북한이 동해 상공 40~60km에서 20㏏의 핵폭발을 일으킬 경우, 남한 전체의 전자 장비는 먹통이 된다는 KIDA(한국국방연구원)의 분석도 있다. 그야말로 암흑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해 8월1일 ‘상용 무기(재래식 무기)에 의한 전면 전쟁이든, 전자전이든, 핵전쟁이든 우리(북)는 모든 것에 준비되어 있다’라고 강조했다.

전자전을 포함한 다양한 공격에 대해 군은 하나 둘씩 대비하고 있다. 문제는 민간이다. 국방부의 임무는 전쟁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지만, 평시에 우리 사회에 대한 전자전 공격을 하는 데 대해 국방부 혼자서는 대비할 수 없다. 북한의 DDoS(Distributed Denial of Service: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을 정보통신부나 국정원 등 유관 기관에서 적극 대비하듯이 전파 공격에도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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