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배경으로 전라도 남자와 경상도 여자의 사랑을 그린 코미디 <위험한 상견례>
  • 황진미│영화평론가 ()
  • 승인 2011.03.2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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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87년, 제대하는 현준을 마중 나온 다홍. 군대에서 펜팔로 사귄 연인의 눈에는 하트가 가득하다. 그로부터 2년 후, 광주나이트클럽 사장의 아들인 현준과 부산예식장 사장의 딸인 다홍은 서울에서 ‘몰래’ 데이트를 한다. 왜냐고?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서, 이들의 결혼이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인기 가수 박남정이라도 광주에서 ‘부산 갈매기’를 씨불였다가는 뭇매를 맞을 만큼 지역 감정이 극심했으니까.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쳐 얻어낸 대통령 직선제가 양 김의 분열로 ‘죽 쑤어 개 준 꼴’이 되었고, 광주 민주화운동의 상흔은 청문회를 통해 터져나왔지만 권좌에는 여전히 ‘개’가 앉아 있는 상황에서, 오직 프로야구만이 대중의 울분을 실어나르던 시대였다.    

다홍이 선 봐서 결혼해야 할 지경에 이르자, 현준은 다홍의 집에 인사를 하러 간다. 물론 서울 사람으로 위장하고서. 현준은 출신지 이외에 또 다른 비밀이 있다. 순정만화로 뭇 팬들을 울린 ‘현지님’이신 것. 영화는 단순히 지역 감정을 희화화한 코미디에 머무르지 않고, 젠더를 뛰어넘는 취향의 정체성을 말한다.

<위험한 상견례>는 숨겨진 정체성에 관한 영화이자, 동일성의 틈에 관한 영화이다. 지역 감정 측면에서 보면 경상도와 전라도 두 진영 내부는 완전히 동일해 보이지만, 그들 내부에는 틈이 있다. 김수미의 폭발력 있는 변신은 그 틈을 정확히 보여준다. 다홍 오빠 역시 젠더의 틈을 대변한다. 영화는 예상보다 훌륭하다. 막장 드라마 콘셉트에서 출발해 대립을 넘어서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영화는 매 장면 쉬지 않고 웃기는 데다, 풍부하게 활용된 198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최대 공로는 배우에게 있다. 송새벽·이시영의 매력은 이들의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하도록 몰입시키고, 김수미의 맛깔 연기는 입이 딱 벌어지게 한다. 유쾌하고 따뜻한 코미디로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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