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사관의 ‘소셜 미디어’ 정치
  • 유창선│시사평론가 ()
  • 승인 2011.03.2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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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들과 실질적인 쌍방향 소통 추구해…스티븐스 대사 블로그 ‘심은경의 한국이야기’도 화제

 

▲ 지난해 9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리차드 데일리 미국 시카고 시장 초청 조찬간담회’에 참석한 리차드 데일리 시장(앞줄 왼쪽)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앞줄 오른쪽). ⓒ뉴시스

“튀니지에서 시작해서 이집트, 요르단, 예멘 그리고 이제는 이란, 바레인까지 확산된 중동 지역 시위에 대한 원인과 이유는 역사학자들이 앞으로 논하겠지만, 한 가지 사실에는 일반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젊은 층의 정보 접근력과 새로운 미디어 및 기술을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이들 노력의 속도와 힘의 핵심이었습니다.” -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의 블로그 ‘심은경의 한국이야기’ 2월24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는 이집트 시민 혁명으로 무바라크가 퇴진한 뒤 자신의 블로그에 ‘민주화, 정보 그리고 소통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녀는 이 글을 통해 중동 지역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하고 있는 역할을 강조하며, SNS를 통한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은 한국 정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SNS는 “이집트 시위, 월드컵 붉은악마 응원단 등 자신들에게 중요한 가치관에 대해 토론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모아준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스티븐스 대사의 SNS 예찬론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6·2 지방선거가 끝나고 지난해 6월7일 역시 블로그에 올린 ‘좋은 선거’라는 글을 통해 ‘관심과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통신 기술의 창의적인 활용’을 자신이 지켜본 6·2 선거의 긍정적인 면으로 평가했다.

이처럼 스티븐스 대사는 SNS 혹은 소셜 미디어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현직 주한 미국 대사로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종종 자신의 여러 생각과 의견들을 올리곤 한다. 가끔은 여기에 올린 글이 한국 언론의 기삿거리가 되기도 한다. 스티븐스 대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모아 최근 <내 이름은 심은경입니다>를 출간하고 지난 3월26일 서울 시내 대형 서점에서 공개적으로 북사인회를 갖기도 했다. 주재국 국민들을 상대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나 그 연장선에서 오프라인 북사인회를 갖는 것이나 모두 개방적으로 변화된 외교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스티븐스 대사는 이번에 출간된 책의 서문에서 ‘중요한 점은, 블로그를 통하지 않고는 평소 만나기 어려운 수많은 보통 사람들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장의 역할을 ‘심은경의 한국이야기’가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자신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실제로 그녀는 역대 주한 미국 대사 가운데 한국 속으로 가장 가까이 다가선 인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시사 분야의 파워블로거와 지속적 만남

▲ 주한 미국 대사 캐슬린 스티븐스(한국명 심은경)의 블로그 ‘심은경의 한국이야기’.

대사가 소셜 미디어에 대해 일가견이 있어서일까. 한국에서 소셜 미디어에 대한 미국 대사관의 적극적인 관심은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현재 홈페이지 이외에 운영하고 있는 SNS에는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이 망라되어 있다. 미국 대사관측은 이들 SNS를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한국민들에게 알리고 주요 사안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 일단 SNS를 통해 한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인프라는 구축되어 있는 셈이다. 다만 아직까지 이들 SNS를 통해 한국민들과 실질적인 쌍방향 소통을 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한 상태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한국민들 사이에 미국 대사관이 운영하는 이들 서비스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미국 대사관측도 손이 많이 가는 쌍방향 소통을 위한 인력까지 준비되어 있는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내 파워블로거들에 대한 미국 대사관측의 관심이다. 필자는 스티븐스 대사가 한국에 온 이후 미국 대사관측과 여러 차례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필자의 경우 미국 대사관측이 시사평론가나 방송인으로 분류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시사 분야의 파워블로거로 만난다는 사실이다. 미국 대사관 정치과에서 필자를 만나 여러 얘기를 듣자고 했을 때 그들이 주로 물었던 것은 한국에서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나 전망 같은 것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들의 관심사가 주로 한국의 정국이나 선거 같은 전통적 주제이리라 예상했던 필자로서는, 미국 대사관측이 한국의 소셜 미디어라는 새 영역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미국 대사관측이 밝힌 것은 아니지만, 필자 이외의 다른 몇몇 파워블로거들도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을 만났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바 있다. 주류 미디어에 속해 있는 기성 언론인 이외에도 정치적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블로거들도 미국 대사관이 얘기를 듣고 자신들의 견해를 전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의 시사 블로거들이 대체로 정부에 대해 비판적 성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음을 감안하면, 이들에 대한 미국 대사관의 관심은 SNS 시대를 맞아 그들의 활동 반경도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파워블로거들에 대한 관심은 미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행사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 9월 스티븐스 대사가 한국 각계의 젊은 리더들을 초청해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을 때, 정계·학계·언론계 등 각 분야의 인사들과 함께 필자는 파워블로거 자격으로 초대받아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때 필자 이외의 다른 인사도 파워블로거 자격으로 함께 참석했다. 지난 3월22일에 마련된 리 브래너와의 간담회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소셜 미디어 각 분야의 인물들이 초청을 받고 참석해 소셜 미디어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적극적인 관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지난해 있었던 스티븐스 대사와의 만남에서는 필자와 다른 블로거들은 천안함 사고 원인에 대해 미국 정부는 어째서 한국 정부의 결론을 쉽게 받아들이는지,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지 등, 공격적인 질문을 해 분위기를 굳어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스티븐스 대사는 이들 블로거들을 다시 초청하도록 직접 챙긴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소셜 미디어에 기반을 둔 평론가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가 소통의 상징으로 떠오른 지금, 이에 대한 주한 미국 대사관의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관심은 일단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정부가 소셜 미디어에서의 비판적 의견들에 대해서는 문을 닫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면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에 대한 미국 대사관의 활발한 움직임들이 단지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한국민들과의 실질적인 쌍방향 소통이 되도록 발전시키는 것은 그들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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