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휘젓는 중국 무허가 어선들
  • 모종혁│중국 충칭 통신원 ()
  • 승인 2011.04.1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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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남획에 중국 근해 어장 망치자 한국 수역 몰려…금어기 단속 무시하고 제주도에까지 ‘출몰’

 

▲ 중국의 어선들이 촘촘한 어망을 사용해 물고기의 씨를 말리고 있다. ⓒ모종혁

“중국 근해에는 물고기가 없어요. 한국 영해로 가야 할당된 어획량을 겨우 채울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중순 중국 산둥(山東) 성 웨이하이(威海) 시 스다오(石島) 항. 이른 아침 중국 북방 최대의 어항답지 않게 스다오항은 활기가 없었다. 수백 척의 어선이 부두에 정박해 있을 뿐 입·출항하는 어선은 단 10여 척에 불과했다. 어선 3척이 갓 입항해 바다에서 잡아올린 물고기를 내리느라 분주했다. 꽃게, 오징어, 멸치, 날치 등 여러 어류가 눈에 띄었지만, 조기가 가장 많았다. 늦겨울과 초봄에는 서해에서 조기가 많이 잡힌다.

어느 해역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오느냐는 질문에 선장과 선원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한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EEZ)에서 조업해 온다”라는 것이었다. 한 선원은 “중국 영해에는 어족 자원이 아주 적다. 멀리 제주도까지 가서 물고기를 잡아 온다”라고 말했다. 선장 량샤오천(가명)은 “선주가 할당해준 어획량을 채우지 못하면 선장이 유류비, 선원 임금 등 운항에 들어간 손실분을 물어주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량 선장은 “20여 년간 지속된 남획과 해양 오염으로 중국 근해에는 물고기의 씨가 말랐다. 요즘 스다오 항에서는 한국 영해에서 조업할 수 있는 허가증을 가진 배가 아니면 출항조차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스다오 항이 속한 웨이하이 시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수교 이전 한·중 교류의 물꼬를 튼 곳이 바로 웨이하이였다. 1990년 9월 위동항운 카페리선 골든브릿지 호가 인천에서 웨이하이로 출발하면서 한·중 양국은 40년 가까운 단절 관계를 종식시켰다. 웨이하이는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했다. 카페리 항로가 개설되기 이전 웨이하이는 인구 20만명인 작은 항구 도시에 불과했다. 견직과 면직, 수산 가공 등 소규모 제조 공장들만 들어서 있을 뿐 변변한 산업 기반조차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웨이하이는 환골탈태하듯 변했다. 2009년 현재 인구는 3백만명을 넘어섰다. 지역 총생산은 1천9백69.3억 위안(약 33조4천7백81억원)으로, 20년 전에 비해 40배나 늘어났다. 탄탄한 도시 인프라와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갖추어 중국에서 살기 좋은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스다오 항, 한국 영해 조업 어선들 집결지

변신의 원동력은 한국이 투자를 한 것에서 나왔다. 지난 20년간 웨이하이는 한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해 한국 기업 1천3백92곳을 유치했다. 이는 전체 외국 투자 기업의 70%를 차지한다. 투자 금액도 총 18억 달러(약 2조억원)를 돌파했다.

웨이하이에 사는 우리 교민 수는 4만여 명. 전체 외국인 거주자의 90%를 넘는다. 연간 60만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찾아와 막대한 돈을 뿌리고 간다. 주로 골프를 치기 위해 찾지만, 빠뜨리지 않고 찾는 장소가 있다. 바로 웨이하이 남부 룽청(榮成) 츠산(赤山)에 있는 장보고(張保皐) 기념관이다. 823년 신라 해상왕 장보고는 츠산 기슭에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을 세웠다. 당시 이 일대에 거주하던 신라인의 단합 장소이자 위안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였다. 츠산 앞바다에 드넓게 펼쳐진 항구가 스다오 항이다.

스다오 항은 산둥 성의 최동단으로, 한반도까지의 직선 거리는 94해리, 1백74㎞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한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으로 출항하는 어선은 스다오로 몰린다. 멀리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다롄(大連)·잉커우(營口) 등지에서 온 어선을 쉽게 볼 수 있다. 스다오 항 관리위원회의 한 직원은 “랴오닝 성에서 내려온 어선은 스다오에서 기름과 먹을 양식을 공급받고 장비를 재정비한 뒤 출항한다. 주로 한국 영해에서 수산물을 잡아와 북방(北方) 어시장에서 판매한다”라고 밝혔다.

지난 3월14일 웨이하이 시 해양어업국이 발표한 동향 자료는 스다오가 처한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지난 1~2월 웨이하이에 등록된 6천여 척의 어선 중 조업 중인 배는 겨우 3백50척에 불과했다. 시 전체 어획량은 10.8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8%나 줄어들었다. 웨이하이 해양어업국은 “대부분 어선이 거칠게 사용되는데다 생산된 지 오래되어 생산성이 극히 떨어진다. 기름값은 t당 8천60위안(약 1백37만원)에 달해 전년에 비해 20%, 7년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뛰어 조업을 나가도 수지 타산을 맞추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2~3년간 스다오 항을 비롯한 산둥 성 지역 항구에서는 조업을 포기하는 어선이 급증하고 있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남획과 심각한 해양 오염으로 근해 어족 자원이 멸종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량샤오천은 “과도한 남획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행정 당국은 규정을 넘어 촘촘한 어망을 사용할 경우 엄벌에 처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제대로 된 단속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한 선원은 “여름철 금어기 단속은 철저한 편이지만 이를 무시하고 출항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귀띔했다.

남북 관계 긴장 국면에 NLL은 ‘무법천지’

▲ 갓 입항해 잡아들인 수산물을 부두에 내놓는 중국 어선의 선원들. 한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에서 잡아온 것들이 많다. ⓒ모종혁

커지는 중국 정부의 관심에도 해양 오염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국 환경보호부는 2009년 6월 발표한 <중국 근해 환경 질량 공보>에서 “전체 근해 중 18.3%가 어류 자원이 살아가기 힘든 4급수 이상이다”라고 밝혔다. 회생하기 힘든 죽은 바다로 분류되는 ‘열악 급수’는 무려 12%나 되었다. 지난해 3월 산둥 성 해양어업청은 <산둥성 해양 환경 질량 공보>에서 ‘라이저우(萊州) 만은 바다로 버려지는 공업 폐수로 인해 적조 현상이 빈발하는데다 해양 침식과 염적화(鹽積化)가 갈수록 심각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에 산둥 성 정부가 기대는 것은 오직 한·중 어업협정뿐이다. 산둥 성은 더 많은 어선이 한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 내 조업 허가를 받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중국 전체의 등록 어선 가운데 조업 허가를 받은 어선은 1천7백여 척. 이들 어선에 대해서는 허가 쿼터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주기 위해 행정 당국의 감독이 철저한 편이다. 실제로 허가받은 중국 어선이 어획량 허위 기재, 불법 어구 사용 등 한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에서 규정을 위반한 행위는 2008년 3백12척, 2009년 2백23척으로 줄어드는 흐름이다.

그러나 허가받지 않은 불법 조업은 급증하고 있다. 한국 해양경찰청의 단속 통계에 따르면, 무허가 어선의 불법 조업은 2008년 79척, 2009년 1백9척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나 늘어났다. 심지어 지난 3년간 긴장된 남북 관계를 악용해, 모든 중국 어선의 조업이 금지된 NLL(북방한계선)에서의 불법 조업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해양경찰청은 “2005년을 정점으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단속 건수가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중국 연안 어족 자원 감소로 무허가 어선의 불법 조업은 지속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인의 경제 수준이 향상되면서 수산물의 소비량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인의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은 2000년 29.4㎏에서 2008년에는 37.0㎏로 늘어났다. 중국인이 지금보다 수산물을 20%만 더 먹어도 연간 1천만t이 더 필요하다. 이것은 연간 한국 수산물 생산량의 다섯 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왕루이는 “중국 내 소비가 늘어나면서 수산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 몰래 한국 영해로 넘어가 물고기를 싹쓸이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철저한 단속에도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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