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 특급 호텔’, 누가 높이 날까
  • 이 은 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1.04.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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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창훈 대한항공 총괄사장·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 가격 경쟁 의미 없어져 명품 전략으로 승부

 

▲ 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 ⓒ연합뉴스

하늘 위에서 명품 전쟁이 한창이다. 대한항공은 5월부터 ‘하늘 위의 특급 호텔’로 불리는 A380의 운항을 시작한다. 그러자 그동안 도입을 망설여왔던 아시아나항공도 2014년부터 A380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명품 전략에 불이 붙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가 항공사의 등장으로 가격 경쟁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인 데다가 소비의 양극화가 항공 수요에 반영되면서 차별화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그 중심에는 닮은 듯 다른 지창훈 대한항공 총괄사장과 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이 있다.

지사장과 윤사장은 서울대 71학번 동기로 사회 첫발을 내디딘 시기가 똑같다. 1977년도에 지사장은 대한항공에, 윤사장은 금호실업에 입사해 회사 업무에 대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시기도 비슷하다. 윤사장이 2008년 12월에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고, 1년 뒤인 2009년 말에 지사장이 대한항공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걸어온 길은 확연히 다르다. 지사장은 대한항공에서 30여 년간 외길을 걸어왔다. 반면 윤사장은 금호실업과 금호타이어에서 28년을 근무한 뒤, 2005년에서야 아시아나항공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항공사 경영 경험은 윤사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도 부사장 직급에는 윤사장이 4년이나 먼저 올랐다. 2005년 12월, 윤사장이 금호타이어 구주본부장에서 아시아나항공 부사장으로 옮겨왔을 때만 해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윤사장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항공업계는 용어도 다르고 문화도 달라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라고 소회를 밝힐 만큼 한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 아시아나 A-380 ⓒ연합뉴스

지사장, 항공 전문가로서 업무 추진력 탁월

반면 지사장은 여객 영업과 화물 사업을 모두 경험하며 전천후 항공 전문가로 성장했다. 이전까지 항공사 대표이사는 여객사업 쪽에서만 경험을 쌓아왔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5년 연속 화물 분야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화물 사업이 대한항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자 화물 사업에 대한 이해가 대표이사의 필수 덕목으로 부각되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08년에 지사장을 화물사업본부장으로 발령 내자 궁극적으로 그가 총괄사장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업계에 나돌았다. 1년 뒤, 지사장이 화물사업본부장 겸 나보이 프로젝트 사업추진단장 부사장이 되면서 이런 예상에 힘이 더해졌다. 대한항공은 우즈베키스탄 나보이 공항을 중앙아시아 물류 허브로 변모시키기 위해 공항 현대화와 배후 복합단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나보이 프로젝트는 화물 사업과 함께 대한항공의 미래 성장 사업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뒤에 지사장은 대한항공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항공 업무 경험이 없는 윤사장이 부사장이라는 직책으로 집중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았다면 지사장은 업무 전반을 두루두루 경험하며 내공을 쌓았다.

윤사장, 영업이익률에서 앞서나가

▲ 지창훈 대한항공 총괄사장 ⓒ연합뉴스

경영 성적표는 어떨까? 윤사장이 대표이사로 온 다음 해인, 2009년에는 항공업계 전반이 암울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데다 신종인플루엔자 여파로 여객 수요가 더욱 감소해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국적기인 대한항공은 2007년 4분기부터 2009년 2분기까지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덩치가 작은 아시아나항공의 타격은 더욱 컸다. 2008년 5백20억원이던 영업적자는 2009년 2천3백60억원으로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났다. 매출액은 4조2천억원에서 3조8천억원으로 10% 가까이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윤사장의 경영 능력은 여객 수요가 살아나는 2010년에서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영업이익 6천3백57억원을 기록하며 영업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같은 해 대한항공은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어서는 대기록을 달성했지만 성장세로 따져보면 적자의 늪에서 흑자로 전환한 것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매출액 상승률 역시 윤사장이 앞섰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매출액은 5조7백26억원으로 2009년(3조8천8백72억원)보다 30.5% 증가했다. 창사 이후 처음으로 5조원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매출액은 11조4천5백92억원으로 2009년에 비해 22% 증가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영업이익률에서도 대한항공을 앞섰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2%로, 9.77%를 기록한 대한항공보다 월등히 높았다. 영업이익률은 영업 활동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윤사장은 영업이익률 상승에 사활을 걸고 있다. 1백30대를 보유한 대한항공과 비교해 절반 수준인 70대를 가진 아시아나항공 입장에서 규모 경쟁을 하면 지는 싸움이 될 것이 뻔하다. 이런 판단이 들자 윤사장은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하려는 심산으로 영업이익률 상승을 지상 최대 과제로 내세웠다. 윤사장은 2015년까지 20%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공격적인 경영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일 노선의 성장성이 크다고 보고 도쿄로 갈 수 있는 세 번째 공항으로 이바라키 공항을 지목해 단독 취항하고 있다. 국내 지방 공항처럼 일본 지방 공항 역시 운영이 날로 악화하는 가운데 새로운 노선에 단독 취항한다는 것은 결단이 필요한 선택이다.

▲ 대한항공 A-380 ⓒ연합뉴스

윤사장이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이익률 상승에 심혈을 기울이는 반면, 지사장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항공업계의 새 역사를 써가는 굵직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0년 앞을 미리 내다보고 장기 투자하고 있는 나보이 프로젝트 사업이 대표적이다. 대한항공은 2009년 1월부터 나보이 공항 위탁 경영을 맡아 신시장 개척과 선점권 획득을 동시에 노리며 장기 투자에 나섰다. 지사장은 2008년부터 나보이 프로젝트를 위해 1년 반 동안 30여 차례나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올 정도로 열성을 보이고 있다. 국내 1위가 아닌 세계 최고의 항공사로 거듭나기 위해 명품 서비스 전략으로 방향을 잡고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배경에는 꼼꼼하면서도 완벽을 지향하는 지사장의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 지사장을 가까이에서 접한 임직원들은 그를 완벽주의자라고 말한다. 권욱민 대한항공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지사장에게 올라가는 결재 문서에는 유난히 ‘설명 요’가 많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완전히 파악하고 납득한 후에야 결재가 내려진다. 현장에서 계획대로 진행되는지도 수시로 직접 확인한다”라고 말했다. 

올해 항공사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일본 대지진의 여파와 고공 비행을 하는 유가가 발목을 잡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대한항공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7.2% 줄어든 1천3백82억원이고, 아시아나항공 역시 40% 감소한 7백9억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해야 진가가 나타나는 법이다. 올해 예상하지 못한 대외 환경 변화에 누가,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에 따라 항공업계 두 CEO 가운데 누가 웃을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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