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범죄에 흔들리는 ‘둥지’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5.0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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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가정 폭력 실태 조사 보고서 분석 / ‘부부 싸움은 집안일’이라는 사회적 인식도 문제

 

▲ 지난해 9월9일 ‘한국 여성의 전화’는 가정 폭력 희생자 및 생존자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규탄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거리 행진을 벌였다. ⓒ한국여성의 전화 제공

남편이 아내를,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핏줄’마저 저버린 잔혹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발생한 존속살인은 2008년도에 44건, 2009년도에 58건, 2010년도에 66건으로 집계되었다. 2년 사이에 50%가 늘어난 수치이다. 이처럼 천륜을 저버린 ‘가족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데에는 일상화된 가정 폭력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가정 폭력이 결국 가족 간에 서로 ‘죽고 죽이는’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정 폭력에서 가장 흔한 유형이 ‘부부 폭력’인데, 지난해 부부 폭력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이들만 해도 50여 명에 달한다. ‘한국 여성의 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집계한 결과, 지난해 남편에 의해 살해된 아내는 57명에 달했다. 남편이 죽이려고 했으나 살아남은 아내는 32명이었다.

두 쌍 가운데 한 쌍꼴로 부부간 폭력 경험

심각한 문제는 가정 폭력이 점점 만연해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0년 가정 폭력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만 19세 이상 65세 미만 기혼 남녀 2천6백59명 중 부부간 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53.8%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04년(44.6%)과 2007년(40.3%)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이다. 부부 폭력 유형 가운데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16.7%로 나타났다. 

일상화된 폭력에 대한 대응은 속수무책이었다. 아내의 경우 부부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33.7%가 ‘그냥 당하고 있었다’라고 답했다. 그 밖에 ‘자리를 피하거나 집 밖으로 도망간다’라는 답변이 29%, ‘함께 폭력을 행사한다’가 27.5%,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다’가 5.4%로 나타났다. 부부 폭력에 대한 남편의 대응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남편의 경우에도 ‘그냥 당하고 있었다’라는 답변이 38.5%로 가장 높았다. 가정 폭력을 당하고 가정폭력상담소나 쉼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아내는 2.3%, 남편은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국 여성의 전화’ 김홍미리 가정 폭력상담부장은 “쉼터를 찾는 이들 가운데는 목숨을 위협당할 정도로 급박한 경우가 많다. 지난 2004년도에 쉼터를 찾은 한 여성의 경우 쉼터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남편에게 발각되어 결국 황산 테러를 당하기까지 했다. 현재는 실명한 상태인데, 지난해 남편이 출소를 해서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산다”라고 말했다.

김부장은 가정 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미국에서는 가정 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보복을 두려워할 입장을 고려해)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바로 가해자를 현장에서 체포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경찰이 찾아와도 ‘부부 싸움은 집안일이니 서로 잘 해결하라’라는 식으로 말하고 그냥 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현실에서 가정 폭력은 가해자나 피해자 가운데 누군가 죽어야만 끝이 난다. 가정 폭력은 ‘부부 문제’가 아니라 ‘강력 범죄’로 번질 수 있는 사안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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