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파 아닌 ‘민생파’를 원한다
  • 김재태 기자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1.05.10 05: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강남 좌파’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합니다. 몸은 우파인데, 마음은 좌파라는 뜻이랍니다. 사는 지역이 강남이고 고액 연봉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리고 있으니 몸이 우파라는 말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마음이 좌파라는 주장에는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실제 정체성을 표현했다기보다는, 삶의 형태는 그럴지라도 마음만은 좌파로 남고 싶다는 희망 사항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교수뿐만 아니라 과거 운동권 출신으로서 현재는 풍족한 삶을 사는 이들 가운데 스스로를 ‘강남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이 주변에 꽤 많습니다. 학계에서도 ‘강남 좌파’의 정체성을 놓고 간간이 논의가 이어져왔지만, 그것이 실체적인 존재인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지난 4·27 분당 을 재선거에서도 일부에서 이 ‘강남 좌파’를 언급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강남 좌파의 반란’ 같은 과도한 표현도 나왔습니다. 사실 선거 결과로만 따지면 전통적인 한나라당의 텃밭에서 야당 후보가 승리한 것을 ‘우파의 패배’라고 보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뒤집어서 ‘좌파의 승리’라고 해석하는 것은 곤란해 보입니다. 분당 을에서 나타난 민심을 들여다보면 유권자들의 선택은 그런 이념적 지향과는 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여론조사 결과 등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지난 선거에 나타난 유권자들의 표심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한마디로 ‘분노’였습니다.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라는 경고입니다. <시사저널>이 선거 후 분당 을 투표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명박 정권에 경고를 주기 위해서 투표했다’라는 응답이 39.7%로 가장 많았습니다. 실제로 분당 을 투표자 가운데는 선거 직전에 불거진 부산저축은행의 예금 불법 인출(16쪽 커버스토리 참조)에 화가 치밀어 투표했다거나 기름값 등 고물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투표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민심을 집권 여당이 끝내 읽지 못한 것입니다. 선거에 패배한 한나라당 후보는 분당 을을 누비며 “좌파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라며 생뚱맞은 색깔론을 띄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해묵은 색깔론 공세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시대착오적 전략은 휴전선이 인근해 있는 강원도에서조차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선거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입증된 것입니다. 가뜩이나 먹고살기도 힘든 판국에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념의 편 가르기가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 민심의 목소리였는데, 그것을 듣지 못한 것이지요.

정치의 근간은 뭐니 뭐니 해도 ‘민생’입니다. 정치에 민생이 녹아들고, 민생에 정치가 녹아들어야 국민들의 삶에 온기가 돌게 되는 것입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얼마 전에 한 말처럼 “대통령이 처삼촌 묘 벌초하듯이” 정치를 하면, 그래서 정치와 민생이 따로 움직이면 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인 사람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는 것은 스포츠에서만 적용되는 이치가 아닙니다. 다음 선거에서는 제발 좌파니 우파니 하는 말을 그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내놓은 바람입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