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없어도, 2% 부족해도 ‘로코’는 떠올랐다
  •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5.1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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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맞아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잇달아 방영…출발이 순조로운 것은 <최고의 사랑>
▲ SBS ⓒSBS

복수, 원한, 치정으로 음울했던 TV가 유쾌해지고 있다. 꽃 피는 봄을 맞아 로맨틱 코미디가 대거 선을 보인다. 장나라의 <동안미녀>, 윤은혜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공효진과 차승원의 <최고의 사랑>이 먼저 선을 보였다. 이어 성유리의 <로맨스 타운>도 시작되었다.

로맨틱 코미디의 격돌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고, 로맨틱 코미디에서 신화적인 존재인 여배우들의 대결이라는 지점도 흥미롭다. 특히 장나라, 윤은혜, 성유리 같은 경우는 그 스타성에 비해 최근 작품이 빈약했기 때문에 이번 시즌의 성공 여부에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공효진의 경우는 이전 <파스타>의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차승원은 <아테나>의 무거운 이미지를 확실히 ‘세탁’할 수 있을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이다. 일본에서 <미남이시네요>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홍자매의 로맨틱 코미디 불패 신화가 여전히 이어질 수 있을지도 흥미롭다.

‘여주인공 원맨쇼’로 막을 올린 <동안미녀>와 <내게 거짓말을 해봐>

▲ MBC 차승원·공효진 ⓒMBC

아직 극 초반부이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도입부만을 보자면 <동안미녀>와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여주인공의 원맨쇼였다. <동안미녀>에서는 장나라,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는 윤은혜가 취하고, 넘어지고, 망신당하며 좌충우돌을 거듭했다. 마치 ‘이 작품은 코미디입니다’라고 과시라도 하는 것 같았다.

<동안미녀>에서는 장나라의 돌출이 특히 심했다. 여주인공을 망가뜨리려고 작심이라도 한 듯 정신없이 몰아쳤다. 거대한 술잔에 빠지는가 하면, 뛰어가다가 난데없이 치마가 다 벗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좌충우돌이 너무 심한 것이 문제였다. 유쾌함보다 정신없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과거에 <스타일>에서는 이지아가 갖은 곤경에 처하지만 굴하지 않는 불굴의 명랑녀로 나왔었다. 하지만 그 표현이 지나치게 과장되었기 때문에 유쾌함보다 정신없다는 느낌이 더 강했고, 그에 따라 <스타일>도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히 <스타일>에는 김혜수라는 다른 중심이 있었고, 상대 남자 역인 류시원이나 이용우의 매력도 상당했기 때문에 작품이 좌초하지는 않았다.

<스타일>에서의 과도한 좌충우돌이 떠오를 정도로 <동안미녀>에서 장나라도 정신이 없었다. 완급 조절이나 세밀한 표현 없이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에 따라 드라마에 몰입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동안미녀>의 남자 상대 역들은 아직 <스타일>에서와 같은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장나라의 캐릭터를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만드는 것도 문제였다. 이 작품은 장나라를 명랑 콩쥐 이미지로 부각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회사에서 자기보다 어린 직원에게 뺨을 맞는 것은 약과이다. 엄마와 동생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장나라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장나라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씩씩하게 자기 일에 매진한다는 설정인데, 개연성이 너무 떨어져서 공감하기가 힘들다.

장나라가 극단적인 콩쥐가 되기 위해 그 주변 인물이 비정상적인 비호감 캐릭터가 되는 것도 문제이다. 이것은 짜증까지 초래했다. 남녀 주인공 사이에 티격태격하는 우여곡절들이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도 문제였다. <동안미녀>는 도입부에서 보인 이런 문제들을 고쳐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도 윤은혜의 여주인공 원맨쇼가 펼쳐졌지만 <동안미녀>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안정된 구성이었다. 윤은혜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캐릭터를 찾았다는 것도 청신호이다. 이전에 그녀는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초럭셔리 재벌녀’를 연기했는데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서민 집안에서 태어나 억척스럽게 공부하다 남자에게 채이고 새롭게 재벌남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명랑 소녀 캐릭터를 맡았는데, 딱 윤은혜를 위한 역할이었다. 역할이 워낙 어울리다보니 그녀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연기력이나 객관적 미모와 상관없는 윤은혜만의 유쾌한 매력 말이다.

하지만 작품이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윤은혜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작품 자체는 진부한 로맨틱 코미디에 머물렀던 것이다. 까칠 재벌남과 순수 명랑 소녀의 티격태격 러브스토리에서 으레 볼 수 있는 표현들이 이어졌기 때문에 작품의 흡인력이 부족했다. 강지환도 비슷한 캐릭터였던 <시크릿 가든>의 현빈에 비해 (적어도 도입부에서는) 존재감이 떨어졌다. 따라서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아직은 2% 부족한 작품으로 보이고 있다.

‘최고의 호흡’ 맞춘 홍자매·공효진·차승원, 누가 이들을 막을 것인가

▲ KBS ⓒKBS

이에 비해 <최고의 사랑> 초반부는 단연 돋보였다. 물론 기본적인 설정은 이 작품도 진부하다. 불쌍 명랑한 여주인공과 잘나가는 까칠 남자 주인공의 티격태격. 하지만 홍자매의 마법이 그 진부한 설정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것은 <시크릿 가든>에서 김은숙 작가가 보여준 마법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는데, 다만 도입부가 <시크릿 가든>처럼 폭풍 같은 흥미를 유발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에 비하면 발군이었다. 홍자매는 뻔한 설정과 전개 마디마디에 깨알 같은 재미를 심어놓는 데에 성공했다. 예컨대 <동안미녀>나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날 때 상당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최고의 사랑>에서는 자동차의 창문을 사이에 두고 둘이 팔싸움을 벌인다는 정도의 극히 소소한 액션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소소한 액션으로 다른 로맨틱 코미디들의 좌충우돌 해프닝을 뛰어넘는 재미를 만들어냈다. 이야말로 디테일의 승리라고 하겠다.

할리우드 진출에 안달하며 이미지 관리에 총력을 다하는 이중적인 대스타의 모습이라든가, 예능 출연에 목숨 거는 한물간 아이돌 스타라는 캐릭터 묘사의 디테일도 작품의 흥미도를 배가시켰다. 적절하게 배치된 해프닝들도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다른 두 작품에서 여주인공 한 명만 돌출했다면, <최고의 사랑>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그야말로 최고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공효진은 <파스타>에 이어 자신이 ‘로코(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임을 각인시키고 있고, 차승원은 그가 코미디의 귀재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홍자매·공효진·차승원 삼각 편대의 거침없는 질주. 누가 그들을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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