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성수기는 왜 ‘고무줄’인가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5.1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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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일이라고 정해놓고 실제로는 1년의 절반가량…“적자 메우기 위해 늘려잡을 수밖에 없다” 강변
▲ 수학여행 떠나는 학생들이 공항에서 줄을 서 있다. ⓒ시사저널 자료

항공사가 정한 올해 성수기는 76일이다. 성수기는 명절, 휴가철, 연말연시 등 비행기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많은 시기이다. 이 기간에는 기본 항공 요금보다 10% 정도 비싼 값에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1년 중 비수기인 2백89일은 기본 요금으로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시사저널>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요금 체계를 분석한 결과, 1년 중 1백80일은 기본 요금보다 비싼 요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중에 절반은 성수기에 해당하는 비행기 요금을 내야 하는 구조가 숨어 있다.  

같은 주말이라도 시간에 따라 요금 달라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 아무개씨가 5월 주말을 이용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고 가정하자. 금요일 오후에 제주로 출발하고 일요일 오후에 서울로 돌아올 계획이다. 비수기이므로 주말 항공기 기본 요금은 8만4천4백원(항공 이용료, 유류 할증료를 제외한 인터넷 예약 요금)이다. 그러나 김씨는 성수기 요금에 해당하는 9만2천9백원을 내야 한다. 같은 주말이라도 시간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탄력 할증제 때문이다. 지난해 7월부터 제주에 도착하거나 제주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에 적용된 제도이다.

금요일과 토요일 오전 11시59분 이전에 제주로 출발하려면 기본 요금에 10%를 더 내야 한다. 또 일요일 오후 12시 이후에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요금도 마찬가지다. 직장인 이재욱씨는 “사실, 주말 금·토·일 3일 중 이틀은 성수기 요금이 적용된다. 비수기 요금은 토요일 오후 12시 이후에 제주에 가서 일요일 오전에 서울로 돌아오는 항공편에만 국한된다. 이 24시간 중에 자고 먹고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 등을 제외하면 여행할 시간이 없다. 결국 비수기라도 주말에 제주를 여행하려면 성수기 요금을 지급해야 한다. 4인 가족이 주말을 이용해 제주를 여행하려면 주말 기본 요금보다 왕복 6만8천원을 더 내야 하는 구조이다”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런 기간이 1주일에 이틀씩, 1년에 모두 1백4일이다. 기본 성수기 76일과 합하면 1백80일 동안에는 비수기라도 성수기 요금을 내야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12개월 중에 6개월이 성수기인 셈이다. 게다가 국제선은 두 나라의 성수기를 모두 적용한다. 예를 들어, 한국-미국(뉴욕) 국제선의 경우, 기본 성수기만 한국의 성수기(60일)와 미국의 성수기(65일)를 합쳐 모두 1백25일이다. 해외 유학생의 방학과 귀국 일정 등을 성수기에 추가한 것이다. 

지난해 항공사들은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대한항공은 매출 11조4천억원, 영업이익 1조1천억원을 기록했고, 아시아나항공도 매출 5조원, 영업이익 6천억원을 올렸다. 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올해 3월 제주를 찾는 여행객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세 배가량 늘어났다. 그러나 항공사들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성수기를 늘려잡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토요일 오전에 서울에서 100명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가지만, 같은 시각에 서울로 오는 비행기에는 20명 정도만 타고 있다.

게다가 지난 수년 동안 물가와 유류가격이 올랐지만 항공요금은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이런 구조여서 항공사는 수년 동안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이다. 직장인 이성준씨는 “항공사 손실을 소비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성수기는 항공 요금을 편법으로 인상한 기간이다”라고 지적했다. 
 

 
요금·성수기, 해마다 항공사 마음대로 정해

성수기는 어떻게 정해질까? 한마디로 항공사 마음대로이다. 해마다 달라지는 법정 공휴일에 맞춰 성수기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57일이던 성수기를 올해 76일로 늘려잡은 배경이다. 공휴일뿐만 아니라 징검다리 연휴 사이에 낀 평일까지 성수기로 잡아도 무방하다. 이번 어린이날 연휴에도 6일과 9일이 성수기로 계산되었다.

서울에 있는 한 여행사 관계자는 “항공사는 짧게는 6개월, 길면 1년 후의 성수기와 비성수기를 정해서 미리 각 여행사로 내려보낸다. 성수기는 학사 일정, 공휴일, 샌드위치 휴일 등을 고려해서 항공사가 정한다. 이에 따라 요금이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고무줄 성수기’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요금과 성수기는 항공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지난 1999년에 결정했기 때문이다. 항공사는 요금 인상을 정부에 신고하거나 승인받을 필요가 없다. 국토해양부 항공산업과 관계자는 “국제선은 국제 규약 등이 있어서 신고나 승인 관련 절차가 있지만, 국내선은 요금과 성수기를 항공사가 정하고 20일 전에 예고만 하면 된다.

정부가 이를 제재할 근거가 없다. 이를 통제하면 기본 요금 자체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항공사들은 공공연히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주부 박찬희씨는 “민간 항공사가 자율 경쟁에 따라 요금과 성수기를 정하는 시장구조는 바람직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정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소비자가 이해할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성수기 논란은 마일리지 이용과 요금 담합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서울-제주 노선을 이용하면 성수기와 비수기에 관계없이 2백60~2백80마일을 받는다. 그러나 서울-제주 노선을 마일리지로 이용하려면 성수기와 비수기를 따진다. 비수기에는 5천 마일, 성수기에는 50% 할증된 7천5백 마일을 내야 한다. 또, 서울-제주 노선 요금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모두 똑같다. 성수기 일수도 같은 데다 요금도 100원 단위까지 같은 상황이어서 담합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같은 거리를 운항하기 때문에 요금이 우연히 같은 것일뿐이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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