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지 않은 상처… 일본 센다이의 울부짖음
  • 이병용│사진작가 ()
  • 승인 2011.05.1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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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24일 이시노마키. 오카와 초등학교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누구의 눈물일까? (2011.3.11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 시 오카와(大川)초등학교 전교생 1백8명 가운데 64명 사망, 10명 행방불명) ⓒ 이병용│사진작가

 4월 초 어느 날. 한 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일본 센다이 도호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가다오카 류 교수였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조심스럽지만 일본으로 와주었으면 한다는, 아니 ‘꼭’ 와주어야겠다는 강한 부탁이 담겨 있었다.

가다오카 류 교수는 고통에 신음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현장의 실상을, 그리고 아픔을, 세계 각국과 공유해서 향후 발생할 피해를 줄이고, 피해 복구 정보를 공유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같은 아픔을 겪은 인도네시아에, 칠레에, 체르노빌에, 그리고 아직 사고를 겪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겪을 수도 있을 세계 곳곳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 사진 작업을 내게 간절히 부탁한 것이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짐을 쌌다. 그렇지 않아도 사진을 찍으러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진작가는 사진으로 말을 한다지만 사진작가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사람으로서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본 센다이 피해 지역으로 향했고, 사진을 찍었다.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내려서 버스로 센다이 지역까지 6시간을 넘게 달렸다. 그렇게 우리 일행 3명(가다오카 류 교수, 선지수 도호쿠 대학 박사 과정)은 4월12일부터 5월4일까지 23일 동안 일본 현지에서 피난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모습과 현장의 참혹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우리는 대피소에서 그들과 똑같이 숙식을 하며 함께 생활했다. 하루에 두 번 배급이 되고 있었다. 빵과 삼각김밥 그리고 된장국 등이 제공되었다. 이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피해 복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 보이지 않는 ‘미래’가 그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더군다나 곧 여름이 온다는 공포감이 엄습하는 듯했다. 환경은 이미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나마 일본 사회의 관심조차도 온통 원전 쪽으로 쏠리다 보니, 허탈함까지 밀려드는 듯했다. 이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쓰나미 여진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세상은 많이 변한 듯이 보이지만 이곳은 변한 것이 없었다.

게센누마·이시노마키·아라하마·가마이시 등의 도시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일찍이 이처럼 참혹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도시 전체가 완전히 폐허가 된 채로 그냥 방치된 상태. 인적 하나 없는 그곳은 ‘유령 도시’였다. 이런 끔찍한 상황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폐허 위에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에 그만 나도 모르게 내 가슴을 쳤다. 

▲ 4월16일 가마이시. 지진만큼이나 내 가슴이 요동을 쳤다. 50여 일이 지났는데…. ⓒ이병용│사진작가

 

▲ 4월17일 아라하마. 자동차를 타고 피난 가던 사람들 대다수는 쓰나미에 쓸려갔고, 뛰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간 사람은 살고…. ⓒ이병용│사진작가

 

▲ 4월16일 가마이시. 실종자 1만3천여 명, 육지에서만 찾지 말고,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던 실종자 가족의 절규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병용│사진작가

▲ 4월24일 이시노마키. 활짝 핀 벚꽃만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병용│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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