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관리’ 진화에는 마침표가 없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05.2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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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컨설팅에서 럭셔리 건강검진까지…


 고액 자산가는 금융 자산 10억~30억원을 가진 고객군이다. 미국 투자은행 메릴린치가 컨설팅업체 캡제미니와 함께 해마다 조사·발표하는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10억원 이상 투자할 수 있는 초고액 자산가는 14만명가량이다. 이 수치는 해마다 3~4% 늘어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하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금융 자산 10억~30억원을 가진 초고액 자산가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초고액 자산가 상당수는 서울 강남·서초·송파, 이른바 강남 3구에 살고 있다. 시중 은행은 초고액 자산가를 유치하고자 강남 3구에 프라이빗뱅커(PB)센터 100곳가량을 운영하고 있다. PB센터는 고액 자산가 고객을 상대로 종합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중 은행이 서울에서 운영하는 PB센터는 1백 50곳가량이다. 시중 은행 PB센터 3분의 2가 강남 3구에 밀집해 있는 것이다. PB 고객은 증권사에게도 VIP이다. 삼성증권은 ‘예탁 자산이 30억원을 넘는 초고액 자산가가 증권사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1.3%’라
고 추정했다. 초고액 자산가의 전체 증권사 자산 기여도는 35.6%까지 치솟는다. 수적으로는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은행과 증권사 수익 구조에서 자산 관리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다 보니 자산 관리 사업 부문을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초고액 자산가 유치전에서는 은행과 증권사가 업종을 가리지 않고 경쟁한다. 고객 접근성이나 영업망에서 앞선 곳은 은행이다. 은행은 PB 브랜드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내고 초고액 자산가 고객군에게 재무, 세무, 법률, 여가 생활까지 컨설팅하는 종합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한은행은 초고액 자산가를 상대로 하는 전문 PB 채널을 신설한다. 지금까지는 5억원 이상 자산가에게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번에 PB 고객군을 세분해 30억원 이상 자산가를 상대로 한 고급 서비스를 새로 만든 것이다. PB센터에는 공인회계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가 다수가 상주한다. 신한은행은 강북 지역에 초고액 자산가를 상대로 하는 PB센터 한 곳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올해 안에 전국 3~4곳에 PB센터를 추가로 개장할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지금까지 PB센터 20개를 운영하고 있다.

▲ 신한은행이 개최한 투자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진지한 자세로 설명을 듣고 있다. ⓒ신한은행 제공

은행들, PB센터 확대하며 고객 유치 경쟁

 하나은행은 PB 서비스를 전방위적으로 확대한다. 전국 1백53개 영업점에서 관리하는 VIP 고객에게도 PB센터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나은행은 PB센터 17개까지 합쳐 전국 1백70개 영업망을 초고액 자산가 유치에 활용하고자 한다. 하나은행은 PB 사업을 해외까지 확대하려 한다. 지금 중국 길림은행이나 초상은행과 손잡고 중국시장에서 PB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외환은행은 PB 사업에 늦게 진입했다. 해외 점포망이 많고 외국환 업무에 전문성을 갖다 보니 해외 상품 투자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보이고 있다. 외환은행 PB영업본부는 12개 자산 관리 센터(WMC)와 76개 일반PB 점포로 구성되어 있다. 강남·분당·목동·부산 같은 주요 거점 지역에는 영업망을 추가적으로 늘리고 있다. 외환은행 PB영업본 부가 관리하는 자산(올해 상반기 기준)은 7조원가량이다.

우리은행은 올해 ‘종합 자산 관리 1등’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PB 사업을 중·장기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혔다. 우리은행은 ‘투체어스’라는 PB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 네 곳에 불과한 PB센터를 올해 안에 부산, 대구, 대전 지역에도 열 계획이다. PB 고객에게는 우리금융지주 계열사 소속 전문가를 총동원해 은행, 증권, 보험까지 아우르는 복합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은행은 올해 초고액 자산가 를 상대로 별도 자산 관리(WM)팀을 구성했다. 이에 필요한 PB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PB사관학교까지 개설했다.

국민은행도 올해 초고액 자산가를 관리하는 PB센터를 연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빌딩에 있는 PB센터를 지금의 두 배로 늘린다. 국민은행은 PB센터 24개와 별도로 초고액 자산가를 상대로 한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증권사는 자산 관리 영역에서 전문성을 내세워 초고액 자산가 유치에 나서고 있다. 증권사 수입원은 주식 중개(브로커리지)와 자산 관리(WM) 수수료이다. 투자자는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증권사에 중개 수
수료를 지불한다. 중개 수수료는 증권사에게 천수답이다. 시황이나 거래량에 따라 수입액 편차가 크다. 주식 시장이 활황을 맞아 개미 투자자가 자주 주식을 사고팔면 주식 중개 수수료는 커진다. 반대로 주식시장이 위축되어 거래량이 줄어들면 수입은 형편없어진다. 인터넷 투자 관행이 정착되면서 주식 중개 수수료는 떨어지고 있다. 지난 1999년 0.424%에서 지난 2009년에는 0.118%까지 떨어졌다. 증권사마다 지난 10년 동안 경쟁적으로 수수료를 낮추었다. 개미 투자자 상당수는 조금이라도 낮은 수수료를 찾아 증권사를 바꾸었다. 그런 만큼 주식 중개 수수료가 증권사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졌다.

주식 중개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다 보니 자산 관리 서비스 비중이 커졌다. 고액 자산가는 랩어카운트 투자에서 상당한 수익을 거두자 투자 자산을 늘리고 있다. 최근 주식 시장에서는 투자 종목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크다. 잦은 거래보다 종목 선정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투자자 성향에 맞추면서 수익률이 높은 종목을 선정해주는 고품질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수수료율보다 서비스 품질이 더 중시되는 흐름이다. 지난 3월 대신증권이 업계 최저 수수료율을 제시했으나 시장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장효선 삼성증권 증권담당 애널리스트는 “증권사 선정 이유가 지점 수, 수수료 같은 단순 플랫폼이 아니라 서비스질로 이동한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과거와 달리 자산 관리 부문에서는 증권사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지난 2007년 자산 운용사가 브랜드파워를 내세워 펀드 열풍을 일으켰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일어나자 주식형 펀드는 폭락했다. 상당수 소비자는 자산운용업계나 무자격 판매 채널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대규모 소송 사태도 빚어졌다. 은행은 펀드 판매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지금 자산 관리 부문에서는 사모펀드 같은 맞춤형 상품 제조와 자문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고액 자산가는 상당한 금융 지식을 갖추고 자기에 맞는 맞춤형 상품을 찾고 있다. 증권사는 자문형 랩을 비롯해 갖가지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들을 유치하고 있다.


증권사들도 ‘초고액 자산가 모시기’ 비지땀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은 ‘자산 관리 시장은 PB 고객 차별화로 초고액 자산가 고객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신한금융투자는 올해 초 초고액 자산가를 위한 VVIP 특화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고객 한 명에게 신한금융그룹 계열사 소속 전문가 10명이 달라붙어 맞춤형 컨설팅을 수행하는 종합 자산 관리 서비스인 ‘닥터에스’를 운영하고 있다.

초고액 자산가 마케팅에서 가장 앞선 곳은 삼성증권이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UHNW사업부를 신설했다. SNI라는 전용브랜드도 만들었다. 강남파이낸스센터, 호텔신라, 인터컨티넨털호텔, 서울파이낸스센
터 등 네 곳에 SNI 점포를 운영한다. 총 예탁 자산은 5조원에 이른다.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은 “초고액 자산가 시장을 포함해 고액 자산가 시장은 향후에도 전략 사업으로 삼고 가용 자원을 집중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SNI 고객에게는 전용 랩 상품 SAA(별도 자문 계좌)가 제공된다. 40명으로 구성된 본사 전문가 컨설팅그룹이 세무, 부동산,가업 승계, 투자까지 컨설팅한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11월 초고액 자산가를 상대로 한 자문 서비스 ‘프리미어블루멤버스’를 개설했다. 금융 컨설팅과 함께 특급호텔 컨시어지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우리투자증권은 서비스 회원에게는 레스토랑, 호텔, 갤러리, 옥션, 수입차, 골프아카데미, 건강검진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대우증권은 오는 7월 UHNW 등급을 신설하고 회원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3월 ‘WM센터원’을 열었다. 한국투자증권도 지난 3월 ‘V Privilege(특권)’라는 초고액 자산가 전용 점포를 열었다. 고객 성향에 맞는 맞춤형 투자 종목군(포트폴리오)을 비롯해 갖가지 맞춤형 상품과 특판 상품을 제공한다.

초고액 자산가 유치는 증권사 성장성까지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헤지펀드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헤지펀드는 100명 미만 투자자들로부터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아 파트너십(partnership)을 만들
고 공격적으로 자금을 운영하는 투자신탁이다. 헤지펀드 수요자는 금융 자식을 갖춘 고액 자산가이다. 글로벌 금융 환경에 대한 감각이 있고 헤지펀드 속성이나 특징을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3월 공청회에서 헤지펀드 투자자를 금융 투자 자산 5억원, 금융 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고액 자산가로 제한할 뜻을 밝혔다. 초고액 자산가는 헤지펀드 시장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 변수인 셈이다.
증권사가 헤지펀드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길은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이다. 이는 헤지펀드에게 대출 결제, 리서치, 컨설팅을 제공하는 종합 서비스이다. 골드만삭스나 JP모건은 프라임 브로커리지를 통해 글
로벌 투자은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서보익 유진증권 애널리스트는 “프라임 브로커리지는 소수 증권사가 지배할 것이다. 초기시장을 선점하는 증권사가 시장 지배력을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증권사 관리 계좌 보유액이나 자기 자본 규모와 함께 고액 자산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핵심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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