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일본 기업에 ‘백업’ 숨통 틔운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06.0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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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2백개 회사 데이터를 고국으로 들여오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1957년 일본 사가 현 도스 시 출생미국 캘리포니아 살레몬테고 졸업미국 캘리포니아버클리 대학 경제학과 컴퓨터과학 전공 1981년 소프트뱅크 설립 ⓒ뉴스뱅크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이 ‘구원 투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손회장은 일본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할 때마다 방향을 제시해왔다. 이번에도 손회장은 해답을 제시했다. 지진·해일 피해 걱정 없이 세계 최고 ICT 기술과 산업 기반을 갖춘 이웃 나라에 백업 데이터센터를 설립한다는 발상이 손회장으로부터 나왔다. 손회장은 지난 5월30일 한국 KT와 손잡고 1천2백개 일본 기업 데이터를 보관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를 경남 김해에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소프트뱅크가 KT와 함께 설립하는 김해 데이터센터에는 서버 1만대가량이 설치되어 한·일 해저 케이블(10GB 전용선)을 통해 들어오는 일본 기업 데이터를 저장한다.

일본 내 잦은 전력 송출 중단으로 데이터 파괴될 수도 있어

지진·해일과 원전 사고 탓에 올여름 일본 내 전력 공급이 15%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잦은 전력 송출 중단은 일본 기업이 자체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데이터를 파괴할 수 있다. 일본 내에서 백업 데이터센터를 갖춘 기업은 17%에 불과하다. 도호쿠 지방 지진·해일은 일본 기업에게 백업 데이터센터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지금 일본 기업 77%가 도쿄에서 먼 곳에 백업 데이터센터를 설립할 뜻을 밝히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지난 5월30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김해 데이터센터 관련 설명회에는 현지 기업인 2천5백명이 참석할 정도로 성황을 보였다.

손회장은 단지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임시방편으로 김해 데이터센터 설립 계획을 추진하지 않았다. 손회장은 김해 데이터센터를 클라우딩 컴퓨팅 산업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전초 기지로 활용할 뜻을 밝히고 있다. 백업 데이터센터는 ICT 부문 핵심 생산 기반으로 떠오른 클라우드 컴퓨팅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 시설이다. 손회장은 일본 경제 주간지 <슈칸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자원이 풍부한 나라에게는 이기지 못한다. 이 점에서 매우 불리하다. 그럴수록 메카트로닉스(기계·전자 공학)의 연장이 아니라 세계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연마해나가야 한다. 교육이나 의료 같은 중점 분야에서 일본을 클라우드 컴퓨팅의 중심지로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보면 소프트뱅크와 KT가 공동 설립하는 김해 데이터센터가 동북아시아 클라우딩 컴퓨팅 산업의 기반 시설로 활용될 소지가 커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손정의 회장을 ‘사카모토 료마의 화신’에 비유한다. 료마는 1860년대 일본에서 활약한 사무라이이다. 일본 최초로 흑선(철선) 제조를 주도해 조선 기술을 근대화해 일본이 해양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료마는 지금 근대 일본의 길을 연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료마가 낡은 막부 체제를 붕괴시키고 중앙 집권 국가의 길을 닦은 것처럼 손회장이 일본의 산업 구조를 정보통신 기술과 지식 산업 영역으로 확장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손회장도 자신이 료마에 비유되는 것을 즐기고 있다.

손회장은 일본 경제 주간지 <슈칸 다이아몬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연히 잘되었다는 말이 싫다. 랭킹 상위에 들어가기를 노리고 찬스 한 번에 뭔가를 해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이 있는 형태로 일을 해내고 싶다. 이것은 시마 료타로 작 <료마가 간다>에서 료마가 언급한 ‘세상에 산다는 것은 일을 해내는 것이다’의 정신이다”라고 말했다. 손회장은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에 료마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손회장은 1957년 8월 일본 남단 규슈에서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온 한국인이었다. 손회장은 1974년 미국으로 건너가 고교 3년 과정을 2주일 만에 돌파하고 버클리 대학 경제학부에 진학했다. 1981년 직원 두 명과 함께 자본금 1억 엔으로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야후, 킹스턴테크놀로지, 지프데이비스 같은 미국 정보통신기술 업체에 투자하며 ‘인터넷 재벌’로 떠올랐다. 소프트뱅크는 한국 소프트웨어 업체까지 인수했다. 보안 전문 업체 시큐어소프트, 알리바바코리아, 헤이아니타코리아, 소프트뱅크웹인스티튜트 같은 한국 인터넷 업체에 1백9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세계 톱10 기업 만들려는 야망 불 지펴

▲ 손정의 회장은 지난 1999년 2월 일본 에도 시대 말기 개혁가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에서 료마 역을 맡아 열연했다. ⓒ로이터

손회장은 지난 1998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가상 공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0명’ 가운데 17위에 올랐다. <포브스>는 2000년 12월 손회장을 ‘올해의 사업가’로 선정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사업 거품이 꺼지면서 소프트뱅크가 적자에 허덕일 때도 손회장은 사업을 확장했다. 2004년 휴대전화 사업에도 진출한 손회장은 자신의 재산을 차압당하면서도 무리하게 ‘보다폰재팬’을 인수했다.

이처럼 무리한 사업을 두고 그가 곧 망할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팽배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지난 2009년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며 영업이익 순위에서 일본 내 3위에 올랐다. 소프트뱅크보다 영업이익(연결 재무제표 기준)을 많이 낸 곳은 NTT와 그 자회사 NTT도코모밖에 없다. NTT도코모가 NTT의 자회사이다 보니 NTT 매출 안에는 도코모 매출이 포함되어 있다. 소프트뱅크가 실질적으로 2위에 오른 것이다. 

손회장은 19세에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다. 1쪽 분량의 계획서에는 ‘20대에 이름을 알린다, 30대에 사업 자금 1천억 엔을 모은다, 40대에 일대 승부를 건다, 50대에 사업을 완성한다(매출 1조 엔), 60대에 다음 세대에게 사업을 물려준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직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젊은이가 만든 50년 인생 계획치고는 허황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손회장은 인생 계획서에 적힌 목표들을 하나씩 실현했다. 손회장은 지난해 6월 창립 30주년을 맞아 ‘신 30년 비전’을 발표했다.

신 30년 비전에는 ‘30년 후 시가총액 2백조 엔, 세계 톱10, 그룹 계열사 5천개’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소프트뱅크 시가총액이 2조7엔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2040년 시가총액 2백조 엔이라는 목표는 얼핏 황당해 보인다. 지금보다 100배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앞으로 30년 동안 매년 17% 성장해야 도달할 수 있다. 허풍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손회장은 지금까지 허풍을 현실로 만들어가며 일본 최고 ICT 전문 경영인으로 성장했다. 손회장은 최근 도호쿠 지진·해일 피해자들을 위해 개인 재산 100억 엔을 기부하면서 ‘리더십의 귀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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