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거물 ‘라이벌 혈전’도 후끈
  • 채은하│프레시안 기자 ()
  • 승인 2011.06.07 21: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방상훈 사장·중앙 홍석현 회장, 종편 사업에서 역전·재역전 거듭…2세들의 대결로 이어져

 

▲ 종편 채널 사업에서 맞붙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오른쪽)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왼쪽). ⓒ시사저널 박은숙

 

 종합편성 채널의 성공적인 도입이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의 명운을 건 승부라면 그 대결의 중심에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각각 1위를 다투는 경쟁 업체이지만 두 회사를 이끄는 이들 역시 나이도 경력도 비슷해 미디어업계에서는 항상 숙명의 ‘라이벌’로 묘사된다.

방일영 전 회장의 장남이자 방우영 현 회장의 조카인 방상훈 사장은 1948년생이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돈인 홍진기 전 법무부장관의 장남인 홍석현 회장은 1949년생이다. 또 둘 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방사장은 오하이오 대학 경영학 학사와 매스컴학 명예박사를, 홍회장은 스탠포드 대학 산업공학 석사와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사장에 취임한 연도도 비슷해서 방사장은 1970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외신부 기자, 주미 특파원, 기획관리실장, 이사, 상무 등을 거쳐 1993년 사장 자리에 올랐고, 홍회장은 1986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삼성코닝 상무로 발탁된 이후 1994년 중앙일보 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1999년부터 중앙일보 회장을 맡고 있다.

양대 보수 신문을 이끄는 두 사람의 대결은 항상 고비마다 눈길을 끌어왔다. 이번 종편 추진 사업에서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적극적인 도전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방어적인 태도가 대조를 이루었다. 한나라당이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언론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치리하던 2009년 7월 전후가 그렇다.

조선, ‘홍회장 고액 주식 배당’ 기사로 견제구

홍석현 회장은 당시 9월에 열렸던 창간 44주년 기념사에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종합 미디어 그룹의 골격을 갖춘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라며 당시 예상한 종편 준비금의 30%인 1천5백억원을 사재에서 출연하겠다는 뜻까지 밝힌 반면, 방상훈 사장은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신문사는 서서히 망하지만 방송 하면 더 빨리 망한다”라고 말하는 등 좀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방상훈 사장은 2011년 신년사에서 “기회는 우리의 노력에 따라 축복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조선일보의 뛰어난 경영 능력과 우수한 인적 자원을 총동원해 비상한 각오로 종편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또 실제로 종편 희망 사업자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법인 설립 절차를 완료해 전세를 뒤집었다.

지금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연내 개국’을 목표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 중앙일보가 종편 사업자 가운데 유일하게 주철환 중앙일보 방송제작본부장의 주도 아래 예능 PD들을 영입하는 데 속속 성공하면서 다시 재역전하는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조선일보에는 아직 ‘조선TV’로 이적하는 PD가 없다.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자본금 차이를 이유로 짐작하기도 한다.

이 와중에 얼마 전 조선일보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9일 ‘이건희보다 배당 많은 홍석현’이라는 기사에서 “증시에 상장되지 않은 비상장사 중 최고액을 배당받은 사람은  삼성코닝 지분 7.32%를 가진 홍석현 회장이다. 홍회장의 배당금은 2천4백64억원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상장·비상장사에서 받은 배당 총액 1천3백46억원보다 1천억원이나 많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 기사는 ‘대주주의 지나친 이익 확보이다’라는 지적도 보탰다. 종편 추진 사업자 가운데 가장 많은 자본금으로 승부하는 중앙일보에 대한 견제구로 읽힐 만한 기사이다. 이 기사를 접한 홍회장과 중앙일보측이 상당히 불쾌해했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이다. 미디어계 주변에는 조선일보와 방사장을 둘러싼 의혹을 살펴보고 있다는 얘기들이 확 퍼지기도 했다.

방상훈과 홍석현, 두 사람의 대결은 2000년 초부터 신문 시장을 좌지우지하며 계속 이어져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두 신문 간의 구독료 갈등이다. 2003년 11월 조선일보는 신문 원·부자재값 인상 등을 이유로 신문 구독료를 당시 월 1만2천원에서 1만4천원으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당시 신문업계에서는 표면적으로도 ‘구독료 인상은 불가피하다’라는 여론이 높았을 뿐더러 방사장과 홍회장 간에 구독료 인상에 관한 일종의 협의가 있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두 달 뒤 중앙일보는 독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자동 납부할 경우 구독료를 월 1만원으로, 오히려 2천원 내린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중앙일보의 발표 4일 후 방상훈 사장은 구독료를 1만4천원에서 중앙일보와 같은 1만원으로 4천원 내리기로 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방사장이 홍회장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라는 류의 표현이 자주 나왔다.

 

▲ 2011년 5월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대기업의 비상장 주식 배당 관련 기사. ⓒ시사저널 전영기

 

중앙 홍회장, ‘차선론’ 내세우며 차별화 주력

중앙일보가 베를리너 판을 도입할 때에도 두 회사 간의 긴장은 꽤 높아졌다. 2009년 중앙일보가 판형의 크기를 줄인 베를리너 판을 도입하면서 휴대의 편리성을 강조할 당시 신문업계에서는 시장의 반응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판형 변화는 윤전기 교체 등으로 인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조선일보에서는 현재 유지하는 ‘대판’에서 ‘세로는 그대로 두고 가로 길이만 줄이는 식’의 절충안을 제안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베를리너 판의 도입을 밀고 나갔다. 지금은 물론 베를리너 판 도입의 성공 여부를 두고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라는 자평과 “신문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오히려 조선일보는 지면 4개를 엮어 초대형 광고를 실을 수 있는 지면을 내놓는 등 중앙일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결국 지난 10여 년간 중앙일보는 ‘1등 신문’을 자부하는 조선일보를 앞지르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를 해왔던 셈이다. 앞서 홍석현 회장은 2001년 임직원들에게 “조선일보를 보지 마라. 조선일보를 따라가서는 1등이 될 수 없다. 앞차를 추월하려면 차선을 바꿔야 한다”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차선론’은 실제로 지면에서도 상당 부분 반영되어 실제로 중앙일보는 남북 문제에서는 항상 매파 혹은 보수적 시각을 견지하는 조선일보와는 결이 다른 보도를 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방상훈과 홍석현의 대결은, 지금은 2세에게로 넘어가는 분위기이다. ‘방상훈-홍석현’ 간의 대결이 구독료와 지면 개편 등 신문 자체를 두고 이루어졌다면 2세 간의 대결은 종편을 비롯해 뉴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등 향후 두 신문사가 확장하는 신사업 영역에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조선일보는 차남 정오씨(34)를 종합편성 채널 TV조선의 미래전략팀장에 발령했다. 장남인 준오씨(35)가 조선일보 미래전략팀장을 거쳐 경영기획실 부장을 맡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동안 스마트 페이퍼와 텍스토어 등 뉴미디어 관련 사업을 맡아 상당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되는 방정오 팀장이 종편 미래전략팀장을 맡은 것은 2세 간의 일종의 ‘역할 분담’을 예측할 수 있는 지점이다.

중앙일보도 마찬가지로 홍석현 회장의 장남 홍정도씨(34)를 지난 3월 지원총괄 전무 겸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했다. 이는 신문, 방송, 출판·엔터테인먼트, 뉴미디어 4개 사업군 전체를 포괄하는 역할이라 사실상 경영의 전면에 나섰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두 보수 신문 간의 종편 대결은 올해 하반기 누가 먼저 종편 채널을 런칭하느냐에 따라 1차전이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방송 채널을 먼저 런칭하는 것은 광고 시장 선점 효과와 시청자 각인 효과 등 여러 부수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다. 특히 서두르고 있는 쪽은 중앙일보의 종편 ‘jTBC’이다. 중앙일보는 종편 방송에서는 조선일보에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 시장도 ‘거품’일지 모른다는 우려 역시 분명한 상황에서 끝내 살아남는 승자가 누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