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노출된 아이들 통해 성찰하는 ‘보복의 역사’
  • 이지선│영화평론가 ()
  • 승인 2011.06.15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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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리뷰 <인 어 베러 월드>

▲ ⓒ씨너스AT9 제공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어른의 세계 어딘가에서는 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집단 따돌림과 구타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아이들의 세계 역시 평화롭지 못하다. 갈등과 충돌이 반복되는 속에 복수가 이어지고, 폭력은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폭력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인 어 베러 월드>는 바로 그 폭력적 역사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아프리카와 덴마크를 오간다. 안톤이 일하는 아프리카의 임시 진료소에는 환자가 넘쳐난다.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의 성별을 맞추는 게임이 벌어지는 그곳에서, 폭력에 반대하는 안톤의 가치관은 매순간 시험에 빠진다. 안톤의 아들 엘리어스가 있는 덴마크도 마찬가지다. 천막뿐인 진료소에 의지하는 아프리카보다는 훨씬 문명화되었지만, 스웨덴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유럽연합(EU) 체제 이후의 덴마크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야만적이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엘리어스는 자신을 도와 준 전학생 크리스티앙과 급속도로 친해지지만 아이들은 일상적 폭력에 노출된 채 분노를 쌓아간다.

영화는 두 공간에 놓인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이는 어른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은 아이를 돕지 못한다. 각자의 고민과 갈등 속에 그들은 고립되어 있을 뿐이다. 반복되는 폭력 앞에 이들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어가고, 그 과정을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한다. 보복의 역사를 멈추고 ‘더 나은 세상(in a better world)’으로 가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지금 용서가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가? 남겨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관객의 몫이다.

감독 수잔 비에르의 차분한 연출은 역설적으로 이야기에 힘을 싣고, 목가적이라고 할 만큼 덤덤한 영화의 리듬은 긴 여운을 남긴다. 다소 아쉬운 것은 이야기를 위해 극단적 장치가 쉽게 동원된다는 점. 결말의 반성이 다소 성급해 보이는 결과를 낳았다.

덴마크 원제는 <Hævnen>으로 ‘보복’을 뜻한다. 2011년 열린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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