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의 진실을 까발리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6.15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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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 입소문 타고 흥행 성공 조짐…방송사와 푸드 컨설턴트의 잘못된 관행 고발해 주목

▲ ⓒB2E 제공

 주말 오전에 방영되는 TV의 맛집 프로그램이나 식도락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메뉴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날 할인점 식품 코너 매진 상품이 결정된다고 할 정도로 음식 관련 프로그램은 국내 시청자들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관광지에든 시내에 새로 생긴 음식점에든 하나같이 ‘TV에 나온 집’이라는 광고물이 하나씩 붙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이런 ‘TV에 나온 맛집’의 찜찜한 구석을 까발린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맛이 아닌 협찬금으로 맛집을 결정’하는 관행을 폭로한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대로 MBC가 상영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이 영화가 ‘공익에 부합한다’라며 MBC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 현안을 신랄하게 파고드는 마이클 무어 식의 다큐멘터리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거의 모든 이들의 관심사인 밥상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트루맛쇼>의 대중적 폭발성은 크다. 때문에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라는 한계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애초 독립영화 상영관 등 소규모의 아홉 개 상영관에서 개봉한 영화는 개봉 2주차에 들어가면서 20여 개로 상영관이 늘어났다. 전일 상영해주는 개봉관도 등장하고 있다.

<트루맛쇼>는 제목을 빌려온 할리우드산 상업영화 <트루먼쇼>와 곧잘 비교된다. <트루먼쇼>는 방송사와 PD가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주인공 트루먼을 속이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방송에 내보낸다. 이 영화는 현대 미디어 사회에 대한 자화상으로 종종 인용된다. <트루맛쇼>의 김재환 감독은 “맛집 관련 프로그램이 진짜라고 믿는 시청자들이 있다. 방송사는 있지도 않은 가짜 메뉴와 동원한 가짜 고객으로 일반 관객(시청자)을 속였다. 여기까지가 <트루먼쇼>의 구도였다. <트루맛쇼>에는 <트루먼쇼>에 없는 가상 세계가 하나 더 있다. 일산에 만든 가짜 식당 ‘맛’이 그것이다. 식당 ‘맛’을 방송에 내보내는 과정에서 관객에게 발가벗은 속내를 드러내는 것은 방송사이다”라고 말했다. 

영화가 지적한 내용, 벌써 방송에 적용되는 등 고발의 위력 보여줘

푸드 컨설턴트와 방송사의 맛집 선정을 둘러싼 짬짜미 행각을 카메라로 담기 위해 김감독은 경기도 일산에 ‘맛’이라는 음식점을 실제 열었고, ‘맛’은 지난 1월 SBS <생방송 투데이>에 맛집으로 소개되었다.

<트루맛쇼>의 고발은 벌써 위력을 나타내고 있다. 맛집 프로그램의 협찬 출연을 위해 맹활약을 하던 방송가의 푸드 컨설턴트가 최근 들어 일제히 잠적했고, 몇몇 프로그램에서는 음식 코너가 없어지거나 포맷이 바뀌고 있다.

더 주목을 받아야 하는 부분은 표현의 자유 문제이다. 김감독은 다큐멘터리 곳곳에 지상파 방송의 맛집 프로그램 꼭지를 삽입했다. 이런 부분이 추후 지상파 방송에서 저작권이나 초상권, 명예훼손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그는 “저작권은 가처분 기각 결정이 날 때 이 영화가 공익적이라는 점을 재판부도 인정했기에 방송사도 문제 삼기 힘들 것이다. 초상권 문제는 이런 방식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경우 모자이크나 음성 변조를 한다면 제작하는 의미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초상권을 어디까지 적용시켜야 할지 선택할 때가 왔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그는 명예훼손 문제에 대해서는 “방송사가 지금 나에게 명예훼손을 거는 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소비자(시청자)의 집단 소송을 걱정하는 것이 순리이다”라고 말했다. “대박이라고 띄웠던 수많은 프랜차이즈 업체 중 망한 프랜차이즈 업체가 굉장히 많다. 이 피해자들이 방송을 보고 프랜차이즈 본사를 찾아가서 계약을 했다면 방송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도 있다. 이것은 폐암 환자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보다 인과 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더 쉽다. 피해 금액이나 방송 시기와 계약 일자는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니까….”

사회 고발성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가 얼마만큼 극장가와 현실에서 위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 ⓒ씨너스AT9 제공
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어른의 세계 어딘가에서는 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집단 따돌림과 구타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아이들의 세계 역시 평화롭지 못하다. 갈등과 충돌이 반복되는 속에 복수가 이어지고, 폭력은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폭력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인 어 베러 월드>는 바로 그 폭력적 역사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아프리카와 덴마크를 오간다. 안톤이 일하는 아프리카의 임시 진료소에는 환자가 넘쳐난다.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의 성별을 맞추는 게임이 벌어지는 그곳에서, 폭력에 반대하는 안톤의 가치관은 매순간 시험에 빠진다. 안톤의 아들 엘리어스가 있는 덴마크도 마찬가지다. 천막뿐인 진료소에 의지하는 아프리카보다는 훨씬 문명화되었지만, 스웨덴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유럽연합(EU) 체제 이후의 덴마크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야만적이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엘리어스는 자신을 도와 준 전학생 크리스티앙과 급속도로 친해지지만 아이들은 일상적 폭력에 노출된 채 분노를 쌓아간다.

영화는 두 공간에 놓인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이는 어른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은 아이를 돕지 못한다. 각자의 고민과 갈등 속에 그들은 고립되어 있을 뿐이다. 반복되는 폭력 앞에 이들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어가고, 그 과정을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한다. 보복의 역사를 멈추고 ‘더 나은 세상(in a better world)’으로 가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지금 용서가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가? 남겨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관객의 몫이다.

감독 수잔 비에르의 차분한 연출은 역설적으로 이야기에 힘을 싣고, 목가적이라고 할 만큼 덤덤한 영화의 리듬은 긴 여운을 남긴다. 다소 아쉬운 것은 이야기를 위해 극단적 장치가 쉽게 동원된다는 점. 결말의 반성이 다소 성급해 보이는 결과를 낳았다.

덴마크 원제는 <Hævnen>으로 ‘보복’을 뜻한다. 2011년 열린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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