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가 3세들, 부실 계열사에 손실 떠넘겨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1.06.2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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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고소한 금호알에이시 소장 단독 입수 / 그룹 차원으로 수사 확대할 수 있어

▲ 최근 금호알에이시(옛 금호렌터카) 청산 과정에서 전 경영진이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고소되었다. ⓒ시사저널 박은숙

금호가 3세들이 지난 2009년 7월 자본 잠식 상태인 한 계열사에 금호산업 지분을 대거 떠넘긴 사실이 <시사저널> 취재에서 드러났다. 이 회사는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 남아 있는 주식마저도 대부분 무상 소각되면서 경영난이 가중되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반해 오너 3세들은 금호산업 지분을 매각한 돈으로 경영권 분쟁 중이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사들였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금호산업 지분은 현재 진행 중인 금호가 ‘형제 분쟁’의 핵으로 지목되고 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지난 2009년 6월 100억원 규모의 금호산업 지분을 매도했다. 검찰은 박회장이 대우건설 매각에 따른 손실을 피하기 위해 사내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박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오너 3세들이 금호산업 주식을 매각했고, 계열사에 거액의 손실마저 입혔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 쪽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같은 사실은 금호알에이시(옛 금호렌터카) 청산인인 문 아무개씨가 지난 5월 말 전 경영진을 검찰에 고소하면서 불거졌다. 문씨는 지난 6월16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회사 청산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 경영진의 문제가 발견되었다. 이삼섭 전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 네 명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라고 밝혔다. 본지가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이 회사는 국내 렌터카업계 1위를 고수해왔다. 지난 2007년 말 기준으로 매출 2천8백96억원, 영업이익 1백23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3월 대한통운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거액의 손실을 보았다. 한 해 매출보다 많은 돈을 대한통운 지분 매입에 쏟아부으면서 재무 상황이 악화되었다. 2008년 12월에는 유일한 사업 부문인 렌터카 사업마저 대한통운에 양도했다. 부채만 남은 빈껍데기 회사로 전락한 상황에서 오너 3세들의 지분을 매입한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지난 2009년 7월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전무로부터 금호산업 주식 44만9천2백70주를 66억원(주당 1만3천8백43원)에 인수했다.

비슷한 시기 고 박정구 전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보에게서도 1백8억원어치의 주식을 매입했다. 청산인 문씨는 고소장에서 “당시 회사는 자산보다 부채가 2백76억원이나 많은 자본 잠식 상태로, 금호산업 지분을 매입할 이유가 없었다. 오너 3세들이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매입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모종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금호그룹, “경영상의 판단이었다” 의혹 일축

▲ 지난해 5월12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모친의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오른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왼쪽). ⓒ뉴시스

금호그룹측은 현재 공식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잘못 대응할 경우 또 다른 ‘형제 분쟁’의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호그룹의 한 관계자는 “고소 사건에 대해 일절 대응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검찰 조사에서 사실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짧게 답했다. 그러면서도 계열사에 주식을 넘긴 것은 “경영상의 판단이었다”라고 강조한다. 당시 박찬구 회장은 형제간 균등 지분 원칙을 깨고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매입했다. 그룹 입장에서도 추가로 지분을 매입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입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작정 금호산업 지분을 매도할 경우 소액주주가 동요할 수 있다. 적대적 M&A(합병·매수) 위험에도 처할 수 있다. 이런 파장을 차단하기 위해 계열사에게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그룹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이미 반박 자료를 만들어놓았다.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혹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금호알에이시가 오너 3세들의 주식을 매입한 경위가 석연치 않다. 일례로 이 회사는 지난 2009년 6월 보유 중인 금호오토리스(현 글로벌리스앤캐피탈) 주식 100%를 부산저축은행과 대전저축은행에 매각한다. ‘형제의 난’이 한창일 때였다. 현행법상 저축은행은 비상장 회사 주식의 10%만 보유할 수 있다. 금호알에이시는 2차례에 걸친 계약 변경을 통해 편법적으로 지분을 매각했다. 금호석유화학의 한 관계자는 “금호알에이시와 부산저축은행 등은 ‘잔금은 예치금으로 입금한다’라는 식으로 변경된 계약서를 체결했다. 이 돈으로 박세창 전무 등에게 금호산업 지분을 매입하는 자금을 지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경영상판단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라고 꼬집었다.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우량 회사가 빈껍데기로 전락한 과정도 의문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대한통운의 인수 주체는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이었다. 금호알에이시의 경우 4.36%의 지분만을 취득했다. 그럼에도 경영권 프리미엄 명목으로 1천1백43억원을 추가로 지급했다. 적정 시가보다도 56.88%나 높은 금액이었다. 심지어 인수 주체가 부담해야 할 SI(전략적 투자자)의 풋옵션 의무마저 금호알에이시가 모두 떠안았다. 이 회사는 지난 2008년 12월 유일한 사업 부문인 렌터카 사업을 대한통운에 양도하면서 대한통운 주식도 같이 넘겼다. 양도 가격은 주당 9만5천원이었다.

 매입 가격이 17만1천원임을 감안할 때 6개월 만에 1천3백25억원의 손실이 난 것이다. 금호알에이시 청산인은 현재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이다. 그는 “대한통운 주식 인수 대금은 회사가 부담할 수 있는 규모를 훨씬 넘어섰다. 회사 경영진이 그룹의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박세창 전무와 박철완 상무보의 금호산업 주식 매각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부실 계열사에 주식 매입을 떠넘긴 데는 오너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사의 2010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오너 3세로부터 금호산업 주식을 매입하면서 1백27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6개월 후인 2010년 1월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금호산업 지분 대부분이 무상 소각되었기 때문이다. 오너 3세들이 이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거액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사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서 계열사에 주식을 빼돌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금호그룹의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 박삼구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도 어떤 식으로든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라고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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