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암살 이면 다룬 법정 스릴러…절제된 연출·진지한 연기·탄탄한 이야기가 긴 여운 남겨
  • 이지선│영화평론가 ()
  • 승인 2011.06.28 16:2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주일의 리뷰 <음모자>

다수의 욕망 앞에서 종종 개인의 의견은 무시된다. ‘대의(大義)’에 어긋나는 개인의 욕망은 악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불특정 다수의 ‘알 권리’를 위해 개인의 신상 정보가 아무렇지 않게 공개되거나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의 대상이 되는 일도 벌어진다. ‘인권’이 여전히 전 사회적·전 지구적 이슈인 것은 역설적으로 인권이 무시당하는 순간이 그만큼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법률적으로 인권을 고려한 역사 또한 그리 길지 않다.

미국 역사에서 죄형법정주의와 함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개인의 권리에 대한 성찰을 낳은 것은 16대 대통령 링컨이 암살된 이후였다. 영화 <음모자>가 다루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시작될 줄 알았던 순간,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링컨이 살해당한다. 일사불란한 범인 색출이 시작되고, 암살에 공모한 여덟 명이 체포된다. 그중 한 명은 두 자녀를 둔 평범한 어머니 메리 서랏(로빈 라이트)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사형수가 될지도 모를 메리의 재판은 초미의 관심사가 되지만, 사실 정부가 원한 것은 사태의 빠른 마무리를 위한 ‘처벌’이었다. 유죄임이 상정된 군사 재판이 열리고, ‘전쟁 영웅’ 프레데릭 에이컨(제임스 맥어보이)이 메리의 변호사로 소환된다. 

영화는 프레데릭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북군의 전쟁 영웅은 메리의 유죄 여부를 의심하지 않는다. 영웅 링컨의 사망으로 혼란한 사회가 걱정될 뿐이다. 그러나 메리를 향해 쏟아지는 부당함을 목도하자 그는 울컥 분노한다. 설사 그녀가 유죄일지언정 이런 불합리는 용납될 수 있는가?

링컨 암살이라는 흥분으로 시작한 영화는 시종 차분하게 부당한 재판의 과정을 따라간다. 역사의 순간을 훑어내는 영화의 시선은 차분하고, 당대의 재판 기록부를 샅샅이 조사해 구현했다는 영화의 디테일은 꼼꼼하다. 좋은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를 만난 드라마는 탄탄하고,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출은 늘 그렇듯이 점잖고 묵직하다. 감정을 절제하고 덤덤하게 사건을 따라가는 그의 방식은 꽤 긴 여운을 남긴다.

‘공모자’도 아니고 ‘음모 가담자’도 아니고 ‘음모자’가 되어야 했던 한글 제목의 어정쩡함이 아쉬울 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