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쳐? 마음은 굴뚝, 현실은 자갈밭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06.2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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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정당 통합, 민노-진보신당 ‘소통합론’과 참여당 포함시킨 ‘중통합론’ 맞서는 양상

 

▲ (왼쪽부터 순서대로)이정희 민노당 대표, 강기갑 민노당 의원, 권영길 민노당 의원.

새로운 진보 정당의 출범을 향한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과정은 지난하기만 하고, 전망은 불투명하다. 진보 정당의 대통합이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권의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각각의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일단 6월 들어 통합 논의에 속도는 붙었다. 지난 6월1일 12개 정당·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진보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을 위한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통합 작업을 위한 합의문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고, 민주노동당은 6월19일 당 정책전당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연석회의의 최종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절차상 공은 이제 진보신당 쪽으로 넘어갔다.    

▲ (왼쪽부터 순서대로)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전 의원, 심상정 진보신당 전 의원.

 △원래 한 당이었던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다시 합쳐야 한다는 주장(소통합론) △민노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이 합쳐야 한다는 주장(중통합론) △민주당까지 포함해 야당 모두가 합쳐야 한다는 주장(대통합론) 등이 백가쟁명식으로 나열되었다. 여기에는 독자적으로 가자는 의견도 하나의 별도 안으로 포함된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합당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원래 한 지붕 아래 살던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최종 합의안’이라는 공을 넘겨받은 진보신당 내에서는 통합파와 독자파가 합의안 승인을 두고 날 선 대결을 펼치고 있다.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는 “언어로 정리된 합의안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떠나 통합을 하고 말고의 문제로 단순화되었다”라고 말했다. 

외곽 모임 중심으로 제3 연합 신당 나올 수도

조대표는 원래 2008년 2월 민노당과 갈라설 당시에는 대표적인 탈당파였다. 하지만 2010년 10월 진보신당 대표로 당선된 뒤 그는 통합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는 시대의 변화를 말했다. “정세가 변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실망해서 국민이 새로운 대안 세력을 찾고 있는데, 지금은 전적으로 제1 야당에 쏠려가지 않는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진보 세력과의 선거 연대를 통해서 적정하게 배분하려고 할 수밖에 없다.”

조대표가 통합을 추진하면서 노회찬 진보신당 고문도 다시 전면에 나섰다.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 추진위원회’(약칭 새진추) 위원장으로 노고문을 인준했다. 원래 노회찬 위원장 인준 여부는 불투명했다. 오히려 통합파로 분류되는 한 당직자는 “통합파 당원들 사이에서도 ‘원만한 통합을 위해서는 독자파에서 비토가 강한 노고문을 추천하는 것이 곤란하지 않느냐’라며 염려하는 분위기가 많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대표는 노고문의 위원장 인준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문제는 이후의 행보이다. 노회찬 고문은 현재 ‘진보의 합창’이라는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을 바라는 모임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일종의 통합파 외곽 조직인 셈이다. 여기에는 심상정 진보신당 고문도 활동 중이지만, 민노당의 강기갑·권영길 의원 등 옛 민노당 동지들도 함께하고 있다.

독자파는 이런 모습을 좋게 보지 않는다. 통합파 당원들 중에서도 이런 외곽 활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진보신당의 한 당직자는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고 당원들을 설득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외곽에서 협상 당사자들과 모임을 갖는 것은 당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세 만들기로 오해받을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의원급 지도부들에 대한 당원들의 불신도 적지 않다. 한 통합파 관계자는 “진보 정치 세력의 발전보다는 선거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냐는 당원들의 의심은 매번 나온다. 이런 분위기가 통합론을 반대하는 분위기를 키우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위로부터 추진되는 통합 흐름과 당 외곽에서의 교류에 대한 거부감이 뒤엉켜 있다.   

▲ 민주노동당이 지난 6월19일 경기 고양시 일산 서구 킨텍스에서 진보신당과의 합당 등 안건들에 찬반 투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정희-유시민 밀월 움직임, 강한 반발 불러

만장일치로 합의문을 통과시킨 민노당도 복잡하기는 매한가지다. 노회찬 새진추위원장의 협상 상대는 민노당 진보정치대통합 추진위원회(약칭 통추위)를 맡고 있는 강기갑 의원이다. 민노당 내에서는 강의원과 권영길 의원이 적극적인 통합파로 분류된다.

연석회의 합의문이 발표된 뒤인 6월9일 강의원은 국민참여당에 러브콜을 보낸 이정희 민노당 대표를 향해 “합의를 흔들고 있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강의원의 발언은 민노당 내에서 통합에 소극적인 세력 혹은 반대하는 세력의 움직임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해석되었다.

이정희 대표도 통합론자이다. 하지만 통합의 범주는 다르다. 이대표는 6월7일 국회 본회의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묻지 않겠다. 우리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한 열망과 가치를 공유한다면 폭넓고 과감하게 손잡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참여당과의 통합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날린 셈이었다. 진보 정당 간의 ‘소통합’보다 ‘중통합’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겨우 열어젖힌 진보신당과의 통합 논의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도 했다. 진보신당 내에는 참여당과의 통합에 매우 부정적인 기류가 강한 때문이다.

문제는 시점이었다. 민노당의 한 관계자는 “(이대표측은) 오비이락이라고 하면서 각종 해석을 모두 억측이고 낡은 문법이라고 말하지만, 오해를 받을 것까지 계산하고 말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라고 인정했다. 실제로 이대표의 발언은 당장 진보신당 내부를 흔들었다. “(통합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 “이렇게까지 해서 민노당과 통합을 진행해야 하나”라는 부정적 평가들이 쏟아져나왔다.

진보신당 쪽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진보신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정희 대표가 참여당과 그런 논의를 할 것이라는 것은 진보신당 내에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6월 이전에는 우리와, 6월 이후에는 참여당과 통합을 논의하는 투 트랙 전략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노당 내 비당권파의 경우는 우리와 적극적으로 통합하자는 자세이다. 반면 당권파는 여러 가지 조건을 내세우고, 심지어 어떤 이는 통합을 안 해도 괜찮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6월22일 권영길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은 그래서 주목받을 만하다. 권의원은 “진보 통합에 몸을 던지며 백의종군하기 위한 것이다. 민노당 당원들이 작은 기득권에 연연하지 말고 더 큰 진보 정당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할 것을 당부드린다”라고 말했다. 권의원은 참여당과의 통합 문제에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군사 독재 때보다 더 많은 노동자와 진보 정치 운동가들이 구속되었다. 이런 문제들이 반드시 논의되고 청산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권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통합의 초석이자 내부 경고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의원 배지를 던져야 할 만큼 민노당 내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처럼 민노당과 진보신당 양측의 명망가급 정치인들은 모두 ‘통합’을 말한다. 양당의 통합 작업이 지지부진하거나 무산될 경우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통합파는 새로운 프레임을 고민할 가능성도 있다. 일종의 새로운 진보 정당론이다. 앞서 언급한 ‘진보의 합창’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안팎의 반발 탓에 ‘민노-참여’ 통합은 물 건너가려나

국민참여당 때문에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코너에 몰렸다. 지난 6월12일 열린 민노당 최고위원회에서는 이대표의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속기록을 살펴보면 최고위원회에 참석한 지도부들 중 일부는 이대표의 발언을 놓고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 그렇게 해석될 것을 몰랐는가” “당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나서 하는 것이 맞다”라며 일제히 비판했다.

이대표는 자신의 발언이 갖가지 해석을 낳자 “낡은 정치 문법을 적용하지 마라”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가 현장을 훑으며 진보신당 당원들을 통합 쪽으로 설득하는 시점에 굳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을 그냥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이대표도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당초 예정되어 있던 유시민 참여당 대표와의 ‘미래의 진보’ 공동 출판기념회도 당내 반발을 고려해 6월21일에서 7월로 미루었다. 하지만 취소가 아니라 연기였다.

진보 정당 간의 통합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민노당과 진보신당 내의 통합파는 내년 4월 총선에서의 선거 연대에 방점을 두고 있는 반면, 이대표 등 민노당 당권파는 내년 12월 대선을 바라보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전자가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목표로 한다면, 후자는 민주당과의 연립 내각을 꿈꾼다는 것이 서로 지향점이 다른 부분이다.

그러나 ‘민노-참여 통합안’은 갈수록 통과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일단 반발이 거세다. 민노당의 가장 큰 지지 세력인 민주노총은 이미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민주노총 산별대표자 회의는 “진보 정당의 통합을 앞둔 엄중한 시기에 참여당과 관련된 논란은 부적절한 것임을 확인한다”라고 결정했다. 진보신당과의 통합 작업이 선행될 경우에도 당권파가 상대적으로 약화되면서 참여당과의 통합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물론 참여당 내부에서도 “노무현 정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라며 민노당과의 통합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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