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사람 없애는 ‘자존감’ 교육의 지침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1.07.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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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 교수의 자아 존중감 키워주는 양육법 소개


최근 해병대 병사가 동료 사병들을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 해병대 총기 참사 사건을 접하면서 오래전 미국에서 벌어진 ‘조승희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버드 대학 교육대학원 교수이자 정신건강 상담사인 조세핀 킴 교수가 이번 사건을 전해 들었다면 아마 많은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실제로 그녀는 조승희 사건과 관련해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되자마자 학부모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우리 아이 자존감의 비밀>에서도 조승희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대학 내 폭력 문제 전문가라는 타이틀도 가진 킴 교수는 이 책에서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해 4월, 미국에서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버지니아 공대에 다니는 한인 남학생이었다. 자문위원으로서 사건을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나는 그 과정에서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한 남학생 속에 잠재된 무서운 감정의 실체를 목격했다. 오랜 기간 외면받고 방치되어온 한 청년의 응어리진 정서가 초래한 돌이킬 수 없는 참변에 한동안 가슴이 아팠고 몸을 떨어야 했다. 비단 나뿐만 아니었다. 조승희 사건 이후 미국에서 유학 중인 우리나라 학생들의 동요는 지켜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들은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 불안과 죄책감으로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나를 붙잡고 통곡을 하거나 또 다른 조승희가 되어 폭발할 듯이 보였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건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힘든 상황을 토로하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라고 회고했다.

킴 교수는 다시는 조승희 사건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고민을 털어놓을 데가 마땅치 않은 한인 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과 상담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한국인의 특징을 발견했다. 한국의 부모와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방법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상담가에게조차 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아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계속 만나고 설득하기를 반복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찾았는데, 시간을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 어린 시절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킴 교수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아주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계속 덧나는 상태로 살아왔다. 엄마 아빠로부터 상처 입은 자리에 친구 문제로 인한 상처가 덧나는가 하면,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성적이나 입시 문제로 또다시 상처 부위가 곪는 격이었다’라고 분석했다.

킴 교수는 15년째 전세계 여러 나라의 부모와 아이들을 상담해오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똑같은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극심한 스트레스와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누군가는 좌절감에 휩싸여 무너져버리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오뚝이처럼 훌훌 털고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교수는 어떤 상황에 대한 개개인의 반응 차이는 바로 자아 존중감, 즉 자존감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킴 교수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과 사랑인 자존감은, 그래서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학습적으로 필요한 교육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엄마를 대신할 수 있고 그렇게 했을 때 오히려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자존감 교육은 아이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엄마와 자식 사이가 아니고는 이토록 귀한 감정이 아이 안에 차곡차곡 쌓이게 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진심으로 아이의 성적보다 자존감을 더욱 신경 써서 챙겨주길 당부한다’라고 자존감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여든을 앞둔 시인이 물었다. <내 변방은 어디 갔나>(창비 펴냄).

시인은 변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람 같고 폭포 같은 목소리로 이 시대의 한복판에 서서 시대와 맞서고 시대를 넘어서는 시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현세를 초탈한 달관의 경지가 아니다. 부당한 시대를 향해 화살이 되어 꽂히는 시를 토해내었던 시인은 여전히 시대의 한복판에서 조금도 비켜서지 않고 시대와 맞서고 있다. 해설을 쓴 평론가 도정일은 시인 고은을 이렇게 말한다. “폭포가 제 소리를 감추지 않고 태풍이 제 소리의 볼륨을 일부러 낮추지 않듯 고은은 감추지 않는 시인, 감추는 것이 불편한 시인이다. 그는 언제나 자기 시대의 한복판에 서서 시대에 맞서고 시대를 넘어서는 시인이며 그 맞섬과 넘어섬의 방법으로 시대를 ‘위하고자’ 하는 시인이다. 나는 이것이 고은의 시를 고은의 시이게 하는 발성법, 고은이 만든 ‘고은의 시적 전통’이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삼천리강산이 모조리 서울이 되어간다 / 오, 휘황한 이벤트의 나라 / 너도나도 / 모조리 모조리 / 뉴욕이 되어간다 / 그놈의 허브 내지 허브 짝퉁이 되어간다 // 말하겠다 / 가장 흉측망측하고 뻔뻔한 중심이라는 것 그것이 되어 간다 // 서러웠던 곳 / 어디서도 먼 곳 / 못 떠나는 곳 / 못 떠나다 / 못 떠나다 / 기어이 떠나는 곳 / 내 마음의 개펄 바닥 / 해거리 명자꽃이 똑똑하던 곳 / 10년 전과 / 10년 후가 같았던 곳 / (중략) / 두고 온 그곳 // 내 변방은 어디 갔나’

모두가 중심을 향한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시인은 시대의 변방을 찾아간다. 변방은 곧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곳, 사람들이 오래전에 떠나온 곳이다. 하지만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고향이며, 그곳을 통해서만 우리는 중심을 향해 비뚤어진 이 시대를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변방의 시선을 지닌 시인이 바라보는 이 시대는 ‘흉측망측’하기 이를 데 없어, 시인은 한탄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삼천리강산을 초토화시키는 4대강 사업’이라며 비판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변방에 서 있어서 더욱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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