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오너 3세들 ‘분가’하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1.07.1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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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보고서에서 가능성 제기…지선·교선 형제 지분 이동에 이목 집중

▲ 지난해 8월26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현대백화점 킨텍스점 개점식에 나란히 선 정지선 회장(왼쪽 두 번째)과 정교선 사장(오른쪽 두 번째). ⓒ뉴스뱅크이미지

현대백화점그룹의 지배 구조에 조만간 변화가 일어날 조짐이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계열사 상장과 합병을 거치면서 오너 3세들의 소유 구조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정몽근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지선 회장은 백화점 부문의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차남인 정교선 현대홈쇼핑 사장은 식품과 방송(홈쇼핑 포함) 부문의 지분을 계속해서 높여나가고 있다. 그룹측은 “복잡하게 얽힌 형제간 지분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기존의 공동 경영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그룹 분할을 위한 수순이 아니냐”라는 관측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1999년 일찌감치 현대그룹에서 분가했다. 정몽근 명예회장은 지난 2004년 보유한 지분을 대거 아들들에게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정지선 회장은 현재 현대백화점의 지분 16.8%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다. 정교선 사장은 핵심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와 현대홈쇼핑의 지분을 각각 15.3%와 9.91%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두 형제가 나란히 회장과 사장으로 승진했다. 때문에 두 형제의 분가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도 지난 6월13일 보고서에서 “장기적으로 장남인 정지선 회장과 차남인 정교선 사장이 독립적으로 경영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현대백화점의 최근 행보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지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현대백화점은 소극적인 경영을 했다. 경쟁사인 롯데쇼핑이나 신세계는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웠다. 반면 현대백화점은 오히려 구조조정을 통해 점포 수를 줄였다. 직원 수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경영 기조가 바뀌었다. 공격 경영을 선언했다. 2조원 이상을 투자해 2015년까지 여섯 개 점포를 추가로 열겠다고 밝혔다. 알짜배기 비상장 계열사를 잇달아 상장시켰다.

지난 2009년 상장한 현대푸드시스템(현 현대그린푸드)이 시작이었다. 이 회사는 정지선 회장이 3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10년 9월과 12월에는 현대홈쇼핑과 MSO(복수유선방송사업자)인 현대HCN을 상장시켰다. 두 회사는 정교선 사장이 각각 13%와 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던 계열사의 정리 작업에 나섰다. 지난 2010년 7월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사장이 최대 주주인 현대푸드시스템과 현대H&S를 합병한 현대그린푸드가 탄생했다. 정규선 회장의 지분은 17%대로 높아졌다. 

비슷한 시기 현대백화점은 울산의 현대백화점을 운영하는 현대DSF를 흡수 합병했다. 합병 과정에서 일부 주주들의 반대가 나왔다. 지나치게 헐값으로 인수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회사의 합병이 성사되면서 정지선 회장의 유통 부문 장악력이 더욱 높아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이투자증권 박종대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현대DSF와의 합병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게 되었다. 관리 비용을 절감하는 것과 함께 경영 효율 증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백화점측 “형제간 얽힌 지분 해소 과정일 뿐”

▲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시사저널 유장훈

일련의 과정이 분가를 위한 정지 작업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7월 현대H&S와 현대푸드시스템의 합병을 앞두고 설화를 겪었다. 정사장이 현대H&S 지분 비율을 26%대까지 끌어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매입 대상이 정회장이 최대 주주인 현대쇼핑이라는 점에서 계열 분리를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두 형제가 독립 경영을 선언할 경우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통해 지배 구조를 정리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대그린푸드가 보유한 백화점 지분 12%의 처리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형제간 지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얽힌 지분을 해소해야 한다. 이 경우 정지선 회장이 보유한 다른 회사의 지분을 정리해야 한다. 정회장은 현재 현대그린푸드 지분 12.7%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지분을 높이기 위해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몽근 명예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추가로 증여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정명예회장은 지난 2005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한무쇼핑 지분을 두 아들에게 증여했다. 한무쇼핑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과 목동점을 운영하는 알짜배기 계열사이다.

두 아들은 다시 현대백화점에 한무쇼핑 지분을 매각해서 현금화했다. 채이배 연구원은 “지난 2005년을 전후로 한무쇼핑 지분을 증여하는 과정에서 일부 논란이 일었다. 때문에 비상장 주식보다는 상장 주식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은 지난 2002년 계열 IT회사를 설립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현대백화점, 현대쇼핑 등 그룹 내 주요 계열사의 전산시스템을 관리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정지선 회장이 이 회사 지분의 70%를 보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너 일가 밀어주기 논란이 일었다. 정회장은 과감하게 회사를 청산하고, 투자 원금을 포함한 청산 소득 전액을 복지재단에 출연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백화점측은 “분가는 없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유통업 특성상 계열사 간의 시너지 효과가 크다. 형제끼리 공동 경영하기로 이미 합의한 상태인 만큼 분가 가능성은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룹 경영은 정지선 회장이 총괄하고, 정교선 사장이 정회장의 지휘하에 기획조정본부 사장과 홈쇼핑 사장을 겸하는 형태가 유지될 것으로 본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뒷말이 나오고 있다. 지분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3세들의 나이 역시 30대 후반이어서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분가 가능성 역시 계속해서 거론되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지분을 사거나 팔기 위해서는 거래 타이밍이 중요하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장기적으로 분가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재계에서 가장 빨리 오너 3세 체제를 구축했다. 형제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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