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물부터 맑아야 군대가 산다
  • 소종섭 편집장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1.07.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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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91년이니 20년 전 군에 근무할 때 일입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옛일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해병대 대원의 총기 사망 사건을 보며 어쩌면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 군 지휘관들의 무능과 무사안일함 말입니다.

당시 전방 철책부대에서 한 사병이 동료를 쏘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병이 근무하던 소대의 소대장은 저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만난 소대장은 제게 충격적인 얘기를 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면담일지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는 사건 수습은 뒷전으로 미루고 먼저 소대장실로 달려가 미친 듯이 자살한 병사와 평소 꾸준하게 면담을 했던 것처럼 면담일지를 꾸몄다고 말했습니다.

상부에서 사건에 대해 조사를 나왔을 때 본인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문제 병사’를 그동안 성실하게 ‘관리’해왔다는 입증 자료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해병대 총기 사고를 보며 그때의 소대장을 떠올렸던 것은 지휘관들이 평소 병사들과 ‘면담’을 하는 등 실질적인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번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국방부는 이미 올 초부터 해병대 내에 광범위하게 가혹 행위와 왕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건을 일으킨 김 아무개 상병 또한 이른바 ‘특별 관리 대상’이었음에도 관리가 되지 않고 네 명을 사망케 하는 대형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렇게 될 때까지 해병대 지휘부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요.

최근 상황을 보면 ‘최고의 강한 군대’라는 해병대는 윗물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해병대 사단장이 취임 한 달도 안 되어 사령관을 음해한 혐의로 보직 해임된 뒤 구속되었습니다. 해병대 영관 장교 등 10여 명은 물론 해병대 사령관까지 군 검찰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아랫물이 맑을 리 없습니다. 병장이 이병을 폭행해 전치 5주의 상처를 입혔음에도 축구를 하다가 다친 것으로 꾸미는가 하면, 해당 대대장은 이런 사실을 상급 부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해병대’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꽃다운 청춘을 군에서 보내던 아들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다면 눈이 뒤집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는 군에서 근무할 때 이러저러한 사고로 죽은 병사들의 장례식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아수라장도 그런 아수라장이 없습니다. 사고로 숨진 병사의 친·인척들의 울부짖음이 얼마나 처절한지 가슴을 후빕니다. 당사자가 자살한 사고도 이러한데 하물며 이번 사건처럼 졸지에 사고로 목숨을 잃은 자식을 둔 부모들의 마음이 어떠할지는 짐작이 갑니다. 당시의 장면이 떠올라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군은 이번 기회에 ‘윗물’부터 기강을 엄정히 해야 합니다. 상급자들은 모범을 보이고 일선 부대 지휘관들은 정성 어린 마음으로 부대원을 관리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국민과 국가를 지키는 보루인 군이 신뢰를 잃는다면 우리 모두의 불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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