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와 ‘조율사’의 자존심 대결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
  • 승인 2011.07.1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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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대 KB금융 회장·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묘한 긴장 관계 연출하며 ‘최고 은행’ 경쟁


지난 7월 초 서울 강남 신한아트홀에서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한회장은 이 자리에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4대 천황이니 뭐니 불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CEO는 리스크 관리 등을 통한 경영 실적과 주가로 평가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한금융처럼 천황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정도(正道)이다”라고 했다.

금융계에서 회자되는 ‘4대 천황’은 어윤대 KB금융 회장과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을 일컫는다. 이 가운데 어회장, 김회장, 이회장 등 세 명의 민간 금융지주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다. 금융계에서는 “서울대 출신인 한회장이 ‘금융회사 CEO라면 정치적인 배경이나 영향력보다 경영 능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라고 일침을 가했다”라고 해석했다.

어윤대 회장은 그 며칠 후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를 의식한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못난 고려대를 나와서 문제되는 것인가”라며 이런 문제 제기에 서운함을 표시했다. 어회장은 “정부하고 친하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4대 천황)이라며 주위에서 내 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여기에 오기 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라고 답답해했다. 그는 “(대학 출신을 떠나) 얼마나 도덕성을 갖고 철저하게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내 대표적인 금융지주회사인 KB금융과 신한금융의 수장들이 묘한 긴장 관계를 보이고 있다. 두 금융 그룹이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존심 싸움에 나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고객 수 1등 KB냐, 리스크 관리의 신한이냐

영국의 금융 전문지 <더 뱅커>는 7월 최신호에서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신한금융이 지난해 말 총자산 기준으로 아시아권 25위에 올라 KB금융(26위)을 한끝 차이로 제쳤다는 것이다. 1년 전인 2009년에는 KB금융이 22위, 신한금융이 23위였다. 신한금융 총자산은 2천3백44억 달러, KB금융 총자산은 2천3백9억 달러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기본 자본 면에서는 조금 달랐다. KB금융이 1백56억1천만 달러로 아시아 24위, 신한금융이 1백45억2백만 달러로 25위를 각각 기록했다. 국내 대표적인 두 금융지주가 여러 지표에서 엎치락뒤치락 순위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가총액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14일을 기준으로 신한금융의 시가총액이 23조5천2백억원, KB금융이 20조3천6백억원이다. 코스피에서는 나란히 8위와 9위로 기록되었다. KB금융이 신한금융과의 간격을 계속 좁혀가고 있다.

영업 스타일 면에서는 매우 다른 편이다. KB금융의 강점은 소매 금융이다. 원래 국민은행이 소매 금융으로 출발한 데다 주택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을 통합해서다. 국민은행 고객 수는 전국 2천6백17만명으로 부동의 1위이다. 점포 수도 1천1백41개로 농협을 제외하고는 시중 은행 가운데 가장 많다. 이런 전국망을 바탕으로 은행 상품뿐만 아니라 다른 KB금융 계열사들의 금융 상품을 교차 판매할 수 있다. 신한금융이 따라오기 힘든 부분이다. 직원 수도 2만1천여 명에 달하고 시장 점유율이 높아 금융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런 점에서는 신한은행이 열세이다. 고객 수가 1천9백만명, 점포 수가 9백58개이다. 하지만 신한금융은 지난해 2조3천8백3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금융권 최고 수준이다. 반면 KB금융은 8백80억원의 순익만을 냈을 뿐이다. 비결은 리스크 관리였다. 신한금융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하기 1년여 전부터 전 계열사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신규 대출을 제한했다. 다른 금융사들이 금융 위기가 터진 이후에야 대출을 줄이기 시작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부동산 PF 중 부실화 비율도 신한은행이 가장 낮은 편이다. 신한은행의 PF 부실 채권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4.97%로, 국민은행(12.16%)에 비해 절반 이하이다. 신한금융의 1분기 기준 고정 이하 여신 비율은 1.59%로 KB금융(2.02%)보다 낮다.

잘 짜인 포트폴리오도 신한금융이 한 발짝 앞서는 부분이다. KB금융 내 은행 비중은 80~90%(이익 기여도 기준)에 달하지만, 신한금융은 이것을 50% 수준까지 낮추었다. 카드, 증권, 보험 등 비(非)은행 부문의 수익성을 지속적으로 개선한 결과이다. 은행 영업이 여의치 않더라도 비은행 부문에서 이를 충분히 메울 수 있는 구조이다.

두 금융회사의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연초부터 사사건건 부딪혀왔다. 한 은행 지점장은 “은행들끼리 출혈 경쟁을 벌인다는 얘기가 들리는 곳에는 반드시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있다”라고 말했다. 선제공격은 지난해 말 신한은행이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신한금융이 경영진 내분 사태로 혼란을 빚자, 내부적으로는 흔들림 없는 영업력을 보여주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올 1월 서진원 신한은행장과 3월 한동우 회장이 연달아 취임하면서 고삐가 더욱 조여졌다.

업계 1위 국민은행도 맞불 놓기에 나섰다. 지난해 ‘빅배스(big bath: 새로 취임한 CEO가 자신의 성과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이전의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것)’로 공격 경영의 토대를 마련한 어윤대 회장과 민병덕 국민은행장이 자산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연내 중소기업 대출 2조원 확대를 목표로 내걸고 있는 국민은행은 어회장이 직접 임원들을 이끌고 지방을 돌며 대출 유치를 진행했다. 중소기업 대출 시장에서는 신한은행이 공격하고 국민은행이 방어하는 형국이며, 자영업자 시장에서는 그 반대라는 것이 금융계의 얘기이다.

두 금융 그룹의 선봉장인 어윤대 회장과 한동우 회장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도 관심거리이다. 두 회장의 스타일이 매우 달라서다. 어회장은 학자 출신이다. 반면 한회장은 정통 ‘금융맨’이다. 금융업을 보는 시각 자체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전혀 다른 경영 스타일이라 맞대결 ‘주목’

어회장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금융권 최고위직 인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단골’이다. 2003~06년 고려대 총장을 맡았는데 이때 ‘CEO형 총장’으로 불리면서 고려대 변신을 주도했다. 각계에서 1천억원이 넘는 발전기금을 받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고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금융계에 발이 넓다. 어회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직후부터 KB금융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 효율화를 이루어냈다는 평가이다. 국내외 투자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룹 비전을 공유하는 등 외부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KB금융 주가가 어회장 취임 후 20% 이상 상승한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라는 해석이다.

어회장은 요즘 그룹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은행 비중이 지나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2월 KB국민카드를 분사한 데 이어 KB투자증권과 KB선물의 통합을 추진했다. 어회장은 “3년 내에 비은행 계열사의 수익 비중을 30%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그는 ‘메가뱅크’ 신봉자이기도 하다. 어회장은 직접 대기업 돈을 유치하는 데에도 발 벗고 나섰다. 국내 15대 대기업 총수들과 연달아 면담을 갖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한 대기업과는 외환 거래를 새로 텄다는 후문이다.

반면 한동우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내부 추스르기’에 온 힘을 쏟아왔다. 지난해 말 불거졌던 경영진 내분 사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회장은 3개월여 동안 심사숙고해 그룹 운영 체계 개선안을 마련했다. 새로 선임되는 CEO 연령을 만 67세 미만으로 제한했다. ‘지배 구조 및 회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신설하기도 했다. 이전 최고경영자들과 달리 임직원과의 접촉 폭을 늘렸다. 신한금융의 한 임원은 “라응찬 전 회장이 외부와 내부 접촉 비중을 8 대 2 정도로 두었다면, 한회장은 이를 4 대 6 정도로 역전시켰다. 외부에서는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내부 평가는 상당히 좋다”라고 말했다.

한회장은 신한은행 창립 멤버이다. 1982년부터 ‘신한’ 역사와 함께했다. 1990년 신한생명을 세울 때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신한금융 회장을 맡기 전까지 신한생명 부회장을 역임했다. 신한생명 CEO 이전 누적 적자가 3천억원에 달하던 회사를 3년여 만에 흑자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내실 경영 덕에 신한생명은 요즘 연간 2천2백억원 이상의 이익을 내고 있다. 한회장은 온화하지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리스크 관리는 금융업의 기본이다”라는 말을 항상 달고 다닌다.

경영 스타일이 매우 다른 어회장과 한회장은 최근 ‘덩치 키우기’ 경쟁에 뛰어들었다. 둘 다 타 보험이나 증권사를 인수·합병(M&A)하고 싶어 한다. 비은행 부문을 키우기 위해서다. 해외 수익 비중을 대폭 높여야 한다는 지론도 공유하고 있다. 대형화 측면에서 보면 어회장이 한 발짝 앞서 있다. 우선 ‘실탄’이 넉넉하다. KB금융은 내부적으로 6조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이에 반해 신한금융은 아직 ‘빚’이 더 많다. 과거 LG카드 인수 대금을 다 갚지 못해서다. 1조원이 넘는 대형 M&A를 추진하려면 2년쯤 지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승부사’ 어회장과 ‘조율사’ 한회장 간 맞대결에 금융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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