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상반기부터 이상 징후 보였다”
  • 정리·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1.07.1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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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 관계자가 증언하는 승부 조작 실상 / “스포츠토토에서 나와 ‘베팅 금지’ 교육 실시해”

▲ 지난 7월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FC서울상주 상무의 경기에서 2-3으로 패한 상무 선수들이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상무는 승부 조작 혐의로 골키퍼들이 검찰에 소환되는 바람에 수비수 이윤의(가운데)가 골키퍼로 출전했다. ⓒ연합뉴스

한국 프로축구가 휘청거리고 있다. 승부 조작 사건으로 뿌리까지 고사할 위기에 처해 있다. <시사저널>은 축구계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축구계 인사를 만나 ‘한국 축구의 승부 조작 실태와 개선 방안’에 대해 들었다. 이 인사는 사안의 민감성 때문인지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내용을 증언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축구계에 불법 사이트 베팅 이야기가 나돈 것은 2~3년 정도 전이다. 외국에 서버를 두고 있는 불법 베팅 사이트는 들킬 만하면 닫고, 그러다 다시 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 사이트라 수사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선수들이 먼저 의식을 바꾸지 않는 한 뿌리 뽑기가 힘들다. 지금까지 도박과 관련된 승부 조작으로부터 한국 선수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당한 것이다.

승부 조작에 대한 이야기에 K리그 관련설이 나돈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지난해 정규 리그 경기 가운데 8~9월께에 스코어가 이상하게 많이 나온 경기가 있었다. 이때부터 ‘이상하다’라는 반응이 나왔지만 설로만 떠돌았지 구체적인 감은 잡지 못했다. 대부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선수들이 프로토나 불법 사이트에서 베팅을 한다’라는 정도의 이야기였다. 내셔널리그의 경우 2009년에도 그런 소리가 나돈 적이 있었다. 하지만 K리그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지난해 상반기에 스포츠토토에서 나와서 선수나 심판 등 축구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베팅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했다. 하반기에도 교육이 있었고 서약서도 쓰게 했다. 축구계 내부에서 이미 이상 현상을 감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비주전’ 많이 출전하는 컵 대회가 ‘먹잇감’

이번에 승부 조작에 휘말린 컵 대회는 4~6월에 개최되는 경기이다. 각 구단 감독들은 수요일에 개최되는 경기 특성상 주전이 아닌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배려한다. 대회 상금이나 상징적인 면에서 주말에 열리는 K리그가 더 중요하기에 주중에 열리는 컵 대회에는 주전이 아닌 선수들을 주로 기용한다. 바로 그것이 승부 조작에 휘말리는 단초가 되었다. 그래서 프로축구연맹에서는 컵 대회를 아예 없애든가 아니면 시즌 전으로 옮기자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컵 대회에서의 승부 조작설도 물증이 없으니까 ‘설’로 끝났다. 다만 연맹에서는 지난해 하반기에 선수나 관계자를 대상으로 ‘프로토를 하지 말아라’라는 교육을 시켰다.

일부 선수들이 승부 조작에 가담한 이유는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드래프트에서 뽑힌 선수는 1순위일 경우 5천만원, 2순위일 경우는 4천4백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구단에서는 6순위까지 다 뽑지 않고 연습생을 뽑는 경우도 있다. 연습생은 1년 연봉이 1천2백만원이다. 이 돈만 받고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연봉이 적은 비주전 선수가 타깃이 된 듯하다. 그런 선수가 많이 출전하는 컵 대회의 경기 결과가 승부 조작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번 사건에 상무 출신 선수가 조작에 제일 많이 가담했다. 상무 선수는 뛰어도 돈을 많이 못 받는다. 프로구단에서 뛰던 선수가 입대하면 원 소속팀에서 연봉의 10% 정도를 보조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용돈 정도 주는 것이다. 게다가 군 생활이라는 것이 2년만 지나면 제대하게 되어 있다. 목표 의식도 없다. ‘군 생활에서 이기면 뭐하나, 져도 되지 않나’, 그런 식으로 선수를 유혹한다. 고참이 ‘천천히 뛰어!’ 그러면 그 말 안 듣겠나. 군대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다. 그래서 상무에서 단순 가담자가 많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경기를 마치고 나오면 3백만~4백만원 정도의 ‘용돈’도 받고…. 이런 식으로 흘러간 것이다. 이런 단순 가담자들은 안타깝다. 프로구단에서 돈 많이 받는 고액 연봉 선수들은 이번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다. 또, 프로구단에서는 컵 대회에 우승해봐야 상금이 1억원밖에 안 되니까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승부 조작 청부사가 그런 빈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전에 축구 선수를 했던지라 선수들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선후배이고, 또 우리나라 사람이 유독 정에 약하니까 몇 번 만나도 보고 용돈 주면 이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고 쉽게 넘어간 것이다. 그래서 상무에 있을 때 말려든 친구들이 많다.

다른 친구들을 꼬여들게 한 ㄱ선수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질이 안 좋다. 고액 연봉자가 가담한 경우는 돈이 궁해서라기보다는 크게 죄의식이 없이, ‘한 게임 져도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ㅇ선수는 연봉을 3억~4억원 정도 받았는데 전에 있던 구단에서 뛸 때 브로커로부터 2천만원을 받았다고 하더라. ㅇ선수를 ‘승부 조작 전염균’에 감염시킨 인물은 상무에서 제대해 그 구단에 입단한 ㅈ선수로 알려졌다. 

부자 구단인 이 구단에 속한 ㅇ선수 등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조작에 가담한 데는 ㅈ선수가 연결 고리가 된 셈이다. 선수들은 승부 조작 대가로 갑자기 외제차를 장만하는 등 전과는 씀씀이가 달라졌다. 선수 브로커 역할을 한 ㅈ은 ㅊ선수, ㄱ선수, ㄷ선수와 상무 동기이다. 이들은 모두 이번 사건에 연루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상무에서 브로커에게 포섭된 뒤 제대하고 원 소속팀에 복귀하면서 승부 조작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이들의 승부 조작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축구계에 설로 떠돌기 시작했음에도 꼬리를 잡히지 않았다. 설만 있었지, 연맹이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맹은 선수들에게 승부 조작이나 불법 베팅을 하지 말라고 교육 정도만 시킬 수 있을 뿐이다. 이번에 사건이 터진 것도 조직폭력배의 알력 다툼을 수사하던 검찰이 조폭으로부터 자금이 불법 베팅하는 쪽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수의 연봉을 현실화시켜주는 것도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주전이 아닌 선수는 고액 연봉 선수와는 차원이 다른 처우를 받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이다. 재정이 빈약한 도민 구단이나 시민 구단에는 연습생이 많다. 지난해에 경남구단에는 연습생만 20명 정도였다. 이들은 연봉이 1천2백만원 정도이다. 한 경기만 ‘잘 성사’(승부 조작)되면 몇 개월의 급여가 생기고 승리 수당보다 많은 돈을 받으니 선수들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컵 대회 후반이나 리그 후반전으로 갈수록 승부 조작이 심해진다. 리그 우승에서 멀어져도 구단이 손해 볼 것이 없으니 선수들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여기에 ‘져주면 돈까지 준다’라는 브로커가 파고든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K리그에 승강제를 도입해야 한다. 1부 리그 꼴찌를 2부 리그로 내려보내야 한다. 2부 리그에 속하면 스폰서도 나가 떨어지고 연봉도 자동적으로 적어진다. 그렇게 해서 선수들에게 끝까지 열심히 하게 만들 수 있다.

브로커들이 심판진에 줄을 못 댄 까닭

그동안 축구계 승부 조작 또는 승부 개입의 통로로 알려졌던 심판진이 이번 사건에서 거론되지 않는 것도 눈길을 끈다. 연봉 3천만~6천만원 수준인 심판이 이번 사태에 연루되지 않았던 것은 시간적으로 브로커가 손을 대기에는 짧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번 사건 브로커들은 선수 출신이고 대부분 40대 미만이다. 세대가 다르고 노는 물이 다르기에 브로커가 줄을 못 댄 듯하다.

또 이는 승부 조작이 기본적으로 ‘이기는 팀에 베팅하는 것이 아니라, 지는 쪽에 베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박사들은 지는 팀에 작업을 건다. ‘이기게 해달라’가 아니라 ‘져줘라’인 것이다. ‘져주기 게임’을 할 때 심판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오히려 져주는 게임의 핵심은 수비수와 골키퍼에 달려 있다. 상대편 선수가 드리블하고 달려가면 수비수는 따라가는 시늉만 하고 골키퍼는 그냥 통과시켜주면 되는 것이다. 심판을 매수해서는 승패를 좌지우지 못해도 수비수 3~4명과 골키퍼 한 명이면 충분히 승부를 좌우한다.

이번 승부 조작 사건의 핵으로 상무 출신 선수가 대거 떠올랐다. 지난해 5월 초까지 상무는 리그전에서 잘나가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뒤로 쳐졌다. 이번에 가담 선수가 많아서 상무 존폐론이 나오지만 상무 축구단을 없애는 것은 축구계의 큰 손실이다. 한창 나이에 2~3년간의 군 입대로 인한 공백은 축구 선수에게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구단 성적이나 승부에 대한 욕구가 없는 군부대 팀은 승부 조작의 타깃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상무는 1부 리그에 있는 것보다 선수 경기력 유지라는 본연의 존재 목적을 위해서 2부 리그로 보내 팀을 존속시키는 것이 옳다. 이번 사태에서 프로축구연맹의 과실이 있다면 리그 팽창이라는 양적 성장에 대한 집착으로 상무를 1부 리그 소속으로 남겨둔 점이다.

리그 운영 방식도 바꿔야 한다. 지금의 방식은 후기 리그로 갈수록 잔여 경기의 승패와 관계없이 순위가 정해져 있어서 경기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 선수가 설렁설렁 하니 보는 관중도 없다. 악순환이다.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는 리그 마지막까지 강등을 우려하며 강팀과의 경기에도 최선을 다한다.

“연습생·드래프트 제도 없애야”

▲ 지난 7월1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승부 조작 예방 대책 및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정몽규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가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승강제는 일본에서도 한참 전에 시작되었다. 일본에는 승부 조작이라는 말이 없다. 일본의 축구 행정을 못 따라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시아축구연맹에서도 K리그가 승강제를 도입하면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네 장 주겠다고 제의했었다. 축구 선진국이 승강제를 도입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기업 후원의 구단 운영 등 우리나라만의 특수 상황을 강조해 축구 선진국의 리그 운영 방식 수용을 거부하다가 빚어진 최악의 사건이다.

선수들이 프로 의식을 상실한 것도 고쳐야 한다. 이번 사건에 심지어 국가대표급까지 연루되었다. 돈도 벌고 명예도 얻은 국가대표급 선수가 연루되었다는 것은 이들이 프로라는 의식이 없고 단지 축구 선수를 생활의 방편 정도로 인식했다는 증거이다.

이런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선수들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고액 연봉 선수라면 검은 유혹에 쉽게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좀 더 나은 경기력을 갖추기 위해 관리에 더욱 공을 들였을 것이다. 프로는 역시 돈이다. 많이 투자하는 팀이 인기와 고수익을 얻는다. 프로뿐만 아니라 실업이나 그 밖의 리그 선수에게도 보상을 확실히 해 축구 그 자체에 올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번 연루자들에게 어떤 조치를 내릴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승부 조작 브로커들은 학연·지연 등의 인간관계를 업고 연루자를 끌어들였다. 1차 수사 때 걸린 선수에게는 영구 제명 조치가 내려졌다. 2차 수사 때는 ‘자진 신고하면 선처해주겠다’라고 했다. 문제는 ‘자진 신고’가 스스로 한 것인지, 수사망이 좁혀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1차 수사 때 걸린 선수와 형평성의 문제도 있다. 상무에서 고참 말을 따르고 용돈 몇 푼 받았다가 축구 인생에서 퇴장당한 어린 선수는 억울할 법도 하다. 선수들도 프로라면 ‘장외의 현실’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각 구단이나 연맹에서도 정기적인 인성 교육을 통해 선수에게 프로 의식을 각인시켜야 한다.

사건이 터진 뒤 연맹에서 선수 최저 연봉을 2천4백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일정 부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습생 제도는 없애야 한다. 드래프트 제도도 없애고 입단 때부터 연봉 협상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의식 변화이다.

승부 조작을 하면 축구도 망하고, 선수도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축구계 전체가 승부 조작 브로커에 놀아난 것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에 기업이 후원하는 전남구단 등이 승부 조작에 휘말렸다. 가난한 구단으로 불리는 경남구단이나 강원구단, 인천유나이티드는 없었다. 오히려 기업이 후원하는 부자 구단에서 사건이 터졌다. 선수들의 의식 변화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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