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평 개발’ 착공식은 쇼였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7.1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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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평 경제 지대 공동 개발의 실상’ 문건 단독 입수 / “착공식 끝나고 공사 장비들 모두 철수”

▲ 지난 6월8일 열린 ‘황금평ㆍ위화도 경제 지대 북ㆍ중 공동 개발 및 관리 대상 착공식’. ⓒ연합뉴스

압록강 하류에 있는 섬, ‘황금평(黃金坪)’. 평안북도 신의주시 인근에 있는 곡창 지대인 황금평은 그야말로 비옥한 ‘황금 평야’이다. 공식 지명은 평안북도 신도군 황금평리이다. 신의주시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접경한 중국 단둥(丹東) 시에서 승용차로 20여 분 가면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지난 6월8일 이곳에서 ‘황금평 경제 지대’ 착공식이 열렸다. 온갖 추측이 난무했던 황금평 개발의 첫 삽이 떠진 셈이다. 착공식에는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이철 합영투자위원장 등과 천더밍(陣德銘) 중국 상무부장 등 북·중 경제 실세를 비롯한 1천여 명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착공식에서 북한과 중국 양국은 ‘황금평 공동 개발’을 공식 선언했다. 그렇다면 과연 ‘황금평 개발’ 사업이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 경제를 살려낼 구세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시사저널>은 최근 황금평 개발 사업 실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정부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이 작성한 ‘북·중 간 ‘황금평 경제 지대’ 공동 개발의 실상’이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A4 용지 여섯 장 분량인 이 문건은 △황금평 개발 사업의 실상 △북한과 중국의 경제 관계 △중국의 투자 여력 △황금평 개발이 중국에게 주는 의미 △향후 개발 전망 등 다섯 개 소주제로 구분되어 있다. <시사저널>은 이 문건을 토대로 정부의 핵심 관계자와 대북 소식통, 정보 당국자, 대북 사업가, 중국 단둥 현지 관계자 등을 다각도로 접촉했다.

북·중 양국은 2010년 12월 ‘공동 개발 계획 요강’을 작성했다. 요강에 따르면, 양국은 황금평에 정보, 관광 문화, 현대 시설의 농업, 경공업 등 4대 산업을 육성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여객·화물 부두와 황금평 지대 안에 그물망 형태의 도로를 구축하고, 황금평과 중국 단둥 신구(新區) 간에 두 개의 출입도로 등을 건설할 계획이라는 야심찬 청사진을 내놓았다.

하지만 본지가 입수한 문건에서는 ‘6·8 황금평 착공식’에 대해 ‘북·중, 그들만의 착공식이며 그들만의 잔치’라고 폄하하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우리나라 언론과 일부 인사들이 ‘우리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달려드는 상황에서 우리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라면서 우리도 황금평 개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황금평) 선점을 우려한 과도한 반응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6·8 착공식’이 황금평 개발 붐을 조성하기 위한 ‘분위기 띄우기용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북한 동향에 밝은 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7월12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착공식이 끝나고 도열해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포크레인, 트럭 등 공사 장비들이 모두 철수했다. 행사를 위해 잠시 개방되었던 북한 쪽 철조망은 다시 원래대로 복구되었다”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가에서 활동하는 한 인사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황금평은 중국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사업이다. 하지만 북한을 달래기 위해 부득이하게 추진한 것이다’라는 반응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중국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분위기 띄우기용 이벤트’였다는 정황 관측

▲ 중국 랴오닝 성 북동쪽 단동 외곽의 황금평은 중국과 맞닿은 비옥한 땅으로 북한의 곡창 지역이다. ⓒ시사저널 유장훈

문건에서도 ‘6·8 착공식이 지난 5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성과를 선전하기 위한 전시용 행사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중국이 2009년 10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 방북 당시 합의했던 신(新)압록강 대교 건설을 미루다 ‘북·중 갈등설’이 불거지자 2010년 12월31일 부랴부랴 착공식을 개최하고, 정작 공사는 지난 5월부터 시작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북한과 중국 간의 경제 관계는 과연 우호적일까. 이 문건은 ‘최근 1년 동안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세 차례나 방문했다. 동북 3성 지역을 둘러보는 등 양국 간 친선 관계를 대외에 과시했다. 하지만 경제 관계에서 만큼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는 모양새이다’라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중국 상무부가 자국 기업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발간하는 ‘대북 투자 지침서’ 등에 적시된 내용을 인용했다. 이 문건 속의 ‘대북 투자 지침서’에 따르면, ‘북한의 △투자 환경 열악 △경제 통계 미공개 △투자금 회수 리스크 △분쟁 해결 곤란 △에너지·수송 난으로 화물 운송 어려움 등으로 인한 투자 위험성 등을 적시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6·8 착공식 이후 중국의 유명 컨설팅사인 안방쯔쉰(安邦資訊)이 “중국의 대북 투자는 북한의 경제 개발 진정성 결여와 정치·사회 불안정 등에 따른 리스크가 커서 주의해야 한다”라고 경고했던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6월6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황금평·위화도 경제 지대 설치’에 대한 정령을 발표하면서 “전통적인 조·중 친선을 더욱 강화하고, 대외 경제 관계를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황금평·위화도 경제 지대가 중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조치임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면서 “이 (황금평·위화도) 지대에는 공화국 주권이 행사된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문건에서는 이와 관련해 ‘이는 입법·사법·행정권을 행정 특구 장관에게 위임한 ‘신의주 특구’식 개방이 아니라, 기존 나선(나진·선봉) 경제 무역 지대와 유사한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영토권과 개방에 대한 우려로 인해 최소한의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개방 조치로는 북한이 바라는 중국의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보았다.

이와 함께 북·중 양국이 경제 협력을 하는 데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투자금 상환에 있어 중국은 투자 보호 협정 체결과 광산 투자에 대한 경영권·개발권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현물 상환의 구상 무역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또한 투자 조건과 시기에 대해서도 중국은 투자 대상에 대해 정밀 실사 후 정부 주도하에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투자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중국의 선(先)투자와 양국 정부가 투자를 주도하자는 입장이다. 이러한 양국 간 이견은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진단했다. 정보 당국의 한 관계자는 “황금평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투자안을 마련하려면 더 많은 시일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라고 말했다.

“중국 속셈은 나진항 통한 동해 출해구 확보”

▲ 지난 5월25일 중국을 방문 중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베이징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이 황금평에 투자할 여력은 있는 것일까. 문건에서는 ‘단둥에 이미 대규모 공단이 개발되어 있고 황금평의 기반 시설 조성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 중국이 적극적으로 (황금평 개발에) 투자할 가능성이 작다’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중국이 현재 전 국토의 71.4%를 차지하고 12개 성(省)·시(市)가 포함되는 ‘서부(西部) 대개발(大開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 중앙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여력도 많지 않아 보인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처지에 있는 중국이 북한과 황금평 공동 개발에 나선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문건에서는 ‘무엇보다 (중국의 북한) 나진항 활용을 위한 일종의 ‘패키지 딜’이다. 중국의 동북 3성 개발 사업의 핵심인 동해 출해구(出海口)인 나진항 1호 부두는 중국에 고작 10년밖에 사용권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도 중국 정부가 아닌 일반 기업이 맺은 상태이다. 이 사업의 완료 시점이 2020년경인데, 중국으로서는 자칫 북한이 몽니를 부려 사용권을 취소하면 동해 출해구를 잃는 심각한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중국 입장에서는 황금평 사업 참여가 ‘동해 출해구’ 확보를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이를 활용해 중국의 투자를 이끌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황금평 개발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 된다’라고 이 문건은 결론 내리고 있다.


 단둥 현지 관계자들이 바라본 ‘황금평 개발’

“지금, 황금평은 ‘적막’하다.” 지난 6월8일 ‘황금평 경제 지대’ 착공식이 성대하게 끝난 후 현재까지 황금평에서는 ‘삽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전언이다.

기자는 지난 7월14일 중국 단둥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 주재원과 대북 무역상, 현지 언론인 등과 국제 통화를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착공식만 했을 뿐 공사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모내기가 이미 끝난 상태라는 것이다.

단둥의 한 한국 주재원은 “북·중 모두 착공식이 끝나자마자 공사 장비들을 다 철수시킨 것으로 안다. 그래서 중국이 북한의 경제 협력 요구를 달래기 위해 착공식만 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착공식까지 했으니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개발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단둥 현지 관계자들은 ‘황금평 개발’이 단둥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였다. 단둥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언론인은 “단둥 사람들은 황금평 개발에 내심 ‘황금평이 개발되면 단둥 경제에 ‘떡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겠느냐’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당장 집값이라도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윤달생 재중단둥한인회장은 “황금평 사업이 시작되면서 조·중 관계가 더 업(up)되어 있는 것 같다. 장성택(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이 (착공식에) 참석했다면 조선(북한)에서도 이 사업을 비중 있게 보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본격적인 개발은 내년쯤에나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단둥 지역에서는 대규모 공단과 아파트 단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이 지역 전체가 ‘공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전언이다. 중국 기업뿐 아니라 홍콩과 싱가포르 등지의 기업들도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단둥에서 대북 무역을 하는 우리 무역상들은 여전히 ‘패닉 상태’라고 한다. 지난해 천안함 사태 후 우리 정부가 취한 ‘5·24 대북 경제 제재’ 조치로 ‘밥줄’이었던 북한과의 교역이 완전히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단둥에서 10년 이상 대북 무역을 하고 있는 한 무역상은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한테는 너무 신경을 안 쓰고 있다. 무역상들의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 일부 무역상들이 라오스나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로 떠났는데, 이들 대부분이 사업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라고 침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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