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신념이 불러온 ‘광란의 참사’
  • 전우영│충남대 심리학과 교수·<심리학의 힘:P> 저자 ()
  • 승인 2011.08.03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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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총기 테러범 브레이빅 심리 분석 / 비현실적·파괴적 자기 합리화에 빠져 범행 감행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은 이익만 쫓는 10만명의 힘에 맞먹는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했다는 말이다. 세속적이고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지조쯤은 쉽게 포기해버리는, 심지어 아예 처음부터 신념이나 지조 따위는 없었던 사람을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고 칭찬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진 신념을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경외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결국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사람들은 이들의 신념에 자신의 마음을 준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진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늘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신념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사람들 중에는 주위에 불안과 공포를 야기하고, 심지어 악몽을 경험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신념의 내용이다. 신념의 내용이 합리적이고 건강하다면, 이것은 말 그대로 이익만 쫓는 10만명에 맞먹을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념의 내용이 비합리적이고 파괴적이라면, 한 사람의 신념은 10만명의 힘에 맞먹는 재앙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지난 7월22일에 노르웨이에서 연쇄 테러를 일으킨 용의자로 검거된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은 범행을 저지르기 5일 전인 17일에 트위터를 개설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말이 바로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은 이익만 쫓는 10만명의 힘에 맞먹는다’였다. 브레이빅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문구를 트위터에 남기고,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로 향했다.

테러 전까지 ‘평범한 사람’으로 알려져

그는 정부 종합청사 앞에서 폭약을 가득 실은 화물차를 세워놓고 원격 조정 장치를 이용해 폭파시켰다. 오슬로 시내의 건물들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로 인해 정부 종합청사 건물과 주변 건물의 유리창이 박살났다. 여덟 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정부 종합청사 폭파 후에 브레이빅은 준비해둔 차량을 이용해 오슬로에서 북서쪽으로 38km 정도 떨어져 있는 우토야 섬으로 향했다. 브레이빅이 혐오하는 다문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노동당이 주관하는 청소년 캠프가 우토야 섬에서 열리고 있었다.

보트를 이용해 섬으로 들어간 브레이빅은 경찰복을 입고, 오슬로 정부 종합청사 테러 소식을 듣고 불안해하던 청소년들에게 다가갔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모이라”라는 브레이빅의 지시에 따라 청소년들이 모여들자, 그는 바로 소총을 꺼내 난사하기 시작했다. 도망가는 청소년들을 조준 사살했고, 죽은 척 쓰러져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엽총을 머리에 대고 확인 사살까지 했다. 우토야 섬에서만 지금까지 68명이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 지난 7월25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 건물 밖에서 열린 테러 희생자 애도식에서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 있다. ⓒAP연합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불안을 가장 쉽게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범죄자를 악마로 규정하는 것이다. 악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악마는 잡혔으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곧 안전을 되찾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브레이빅의 주위 사람들의 증언은 브레이빅이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이웃들은 브레이빅을 내성적이고, 평범하며, 보수적인 기독교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실제로 교통 법규를 위반했던 것을 빼고는 특별히 사회적 규범을 어기거나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상당히 평범한 부류에 속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사람이 한순간에 수십 명을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인간이,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위대한 이유는 생각할 능력이 있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훨씬 더 잔인할 수 있는 이유 또한 바로 생각할 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만이 옳고, 그래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더 나아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그 결과, 자신의 왜곡된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합리화한다. 우리 팀이 진 이유는 불공정한 심판 판정 때문이고(실제: 심판이 내가 반칙하는 것을 보고 바로 페널티킥을 주었기 때문), 연인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상대방의 바람기 때문이고(실제: 자신의 의심과 집착 때문), 부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내(실제: 상대방) 성격이 좋기 때문인 것이다. 합리화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가끔 합리화가 필요하기도 하다. 만약 전혀 합리화하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한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형편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고, 곧바로 우울증에 빠질지도 모른다.

문제는 비현실적이고 과도한 합리화이다. “내가 한 일은 잔혹하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브레이빅이 체포된 후 했다는 말이다. 살인자와 학살자들이 자기를 합리화하는 전형적인 방법은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속한 집단(넓게는 인류) 또는 역사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피해자들을, 죽어 마땅한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설득하고 나면, 이들에게는 못할 짓이 없어지게 된다. 더구나 집단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합리화가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나치가 6년간 6백만명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행위를 집단 수준에서 합리화시켰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기 위해 ‘열공’ 자랑도

▲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이 웹사이트에 올린 자신의 사진들. ⓒAP연합

브레이빅은 대학에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경영학과 역사학을 1만4천5백 시간, 종교학과 재무학을 3천 시간 독학해 경영학 학사와 역사학 석사를 받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충분히 배우고 익혔으며, 이를 통해 노르웨이와 유럽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을 수행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공부는 그에게 자신의 행동을 정교하게 합리화하기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인간을 파괴적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게 만들 수도 있다. 생각의 힘을 사회적으로 건전한 방향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더 나아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어렸을 때부터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강화하고 정교화시키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만 집중하는 교육은 위대한 철학자를 탄생시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브레이빅처럼 1만5천18쪽짜리 ‘2083: 유럽 독립 선언’이라는 정교한 선언문을 작성할 능력을 갖고 자신의 행위를 “사회 혁명을 위한 거사이다”라고 합리화시킬 수 있는 테러리스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의 어떤 능력을 개발하고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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