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M&A 라이벌 ‘하이닉스 목장의 결투’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1.08.03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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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STX그룹,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회사 인수 경쟁 / 결과 따라 재계 판도에 상당한 변화 예상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 또다시 맞붙었다. 올해 M&A(합병·매수) 시장의 최대어로 꼽히는 하이닉스를 두고서다. 두 사람은 그동안 여러 차례 대결을 벌였다. 지난 2005년 인천정유 인수전에 나란히 참여했다. 1차전에서는 최회장이 승리했다. 2차전은 2007년에 벌어졌다. SK는 SK인천정유를 앞세워 타이거오일 인수에 나섰다. 그러자 STX는 ‘대항마’로 STX에너지를 내세웠다. 인수전은 치열했다. SK인천정유와 STX에너지가 공동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정도였다. 치열한 경합 끝에 STX에너지가 타이거오일을 품에 안았다. 서로 한 번씩 승패를 주고받은 셈이 되었다.  

▲ ⓒ시사저널 유장훈

두 그룹 총수들의 ‘리턴 매치’로 주목

이번 하이닉스 인수전이 주목되는 것도 두 사람의 이런 전력 때문이다. 인수전 자체가 두 그룹 총수들의 ‘리턴 매치’가 될 수도 있다. 특히 SK와 STX그룹은 M&A를 통해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SK텔레콤(이하 SKT)과 SK에너지는 M&A를 통해 SK그룹 계열사에 편입되었다. STX그룹 역시 M&A를 통해 덩치를 키웠다. 2천6백억원이던 매출액이 10년 만에 22조원까지 성장했다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인수 의지 또한 확고하다. 두 그룹은 “예비 실사 결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겠다”라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오너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 SK그룹은 주요 사업이 에너지와 통신 등 내수에 묶여 있다. 수출 제조 기업에 대한 최회장의 인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1년 이상 검토했다. 최회장 역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STX 역시 조선과 에너지가 주요 사업군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 발굴이 시급하다. 이종철 STX 부회장은 지난 7월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합리적인 수준의 인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조건만 맞으면 좋은 기회라고 (강덕수 회장은) 판단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수전으로 적지 않은 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의 메모리 반도체 회사이다. SK그룹이 인수하면 재계 2위인 현대차를 턱밑까지 추격할 수 있다. STX의 재계 순위도 14위에서 9위까지 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최회장이 앞서 있다는 평가이다. 하이닉스 지분 15%를 인수하는 데 드는 자금은 2조4천억~3조원 정도이다. 지난해 SK그룹의 총 매출은 1백12조30억원을 기록했다.

규모 면에서 18조3천6백억원인 STX보다 다섯 배 이상 앞서 있다. 인수 주체인 SKT 역시 1조3천4백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단기 금융 상품까지 포함하면 2조원대로 평가된다. KT 경제경영연구소는 7월 3주차 주간 보고서를 통해 “SK그룹은 최근 엠텍비전과 함께 중국 심천에 시스템 반도체 전문 업체인 ‘SK엠텍’을 설립했다. 하이닉스가 최근 시스템 반도체 부문 역량을 강화하는 만큼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라고 전망했다.

강덕수 회장의 저력도 만만치가 않다. 재계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M&A를 여러 차례 성사시켰다. STX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3조4천억원 규모이다. 인수 자금의 49%를 투자하기로 중동 아부다비 펀드와 합의를 본 상태이다. 인수 자금에 대한 부담은 어느 정도 덜었다. 무엇보다 조선과 기계 위주의 사업 구도를 탈피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종철 부회장도 “그룹의 주요 사업이 동일한 경기 사이클에 의존해왔다. 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 또한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하이닉스 인수로 생기는 시너지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하이닉스의 경우 인수 이후에도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향후 10년간 60조원 이상이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지난 7월6일 ROI(인수 의향서) 접수를 하루 앞두고 인수를 철회한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수출 사업의 경기 사이클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조선과 반도체가 상호 보완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둘 다 안 좋을 때는 치명적이 된다. 이런 문제가 인수 철회 결정을 내리는 데에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 ⓒ시사저널 윤성호

지속적인 투자 필요… ‘승자의 저주’ 우려도

실제로 한국거래소는 지난 7월6일 이례적으로 SKT와 STX 등에 조회 공시를 요구했다. 두 그룹이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자 주가가 급락했다. 곽현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산업의 경우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해마다 수조 원의 현금이 필요하다는 점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라고 평가했다. SKT에 대한 해외 신용평가 기관의 반발이 유독 거셌다. 스탠더스앤드푸어스(S&P)에 이어 무디스도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난 7월26일 기준으로 SKT의 외국인 비중은 49%에서 47.8%로 1.2%나 하락했다. 이후에도 외국인 비중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STX 역시 상황이 녹록지가 않다. 지난해 하이닉스의 순자산 규모는 8조1천억원에 달한다. STX그룹 내 주요 상장사들의 순자산 규모 총합인 5조5천억원보다도 많다. 차입금 역시 10조원대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단기성이다. 이자 비용을 갚기도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시장 일각에서는 ‘STX가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니냐’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이닉스 인수 가격을 높이기 위한 ‘페이스 메이커’ 역할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STX그룹측은 “인수 자금에는 문제가 없다. 100% 무차입 인수가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STX그룹의 한 관계자는 “처분 가능한 우량 계열사를 매각해 추가로 매입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추후 구체적인 일정을 밝히겠다”라고 설명했다. IBK투자증권도 지난 7월21일 보고서를 통해 “하이닉스 주가가 지난 2010년 이후 하락하면서 인수자측의 가격 부담을 줄였다. 중동의 국부 펀드와의 컨소시엄을 구성한 점은 긍정적이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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