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신수종’이 삼성 앞길 밝혀줄까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1.08.03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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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전지 사업 등, 선두 업체들의 선점 효과와 경쟁 과열 탓에 진입 장벽 높아져 성과 불투명

▲ 삼성LED의 한 연구원이 LED 패널을 검사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꺼낸 승부수인 5대 신수종 사업이 진입 초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5월 태양전지, 자동차용 2차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 제약, 의료 기기 분야를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정했다. 2020년까지 23조3천억원을 투자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투자에 나선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터라 아직 결과를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사업 구상 단계에서 예상치 못했던 ‘달갑지 않은’ 변수들이 나타나고 있다. 신수종 사업마다 선발 업체가 철옹성에 가까운 진입 장벽을 쌓고 있거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벌써부터 ‘치킨 게임’에 들어간 업종이 생겨나고 있다. LED는 일본 니치아와 한국 서울반도체가, 자동차용 2차전지는 LG화학이, 바이오시밀러는 셀트리온이, 태양전지 소재는 세계 4대 업체가 생산 라인을 크게 늘리며 후발 업체가 참여할 여지를 없애고 있다. 

신수종 사업 가운데 투자 규모가 가장 큰 부문이 LED이다. LED는 갈륨비소 같은 화합물에 전류를 흘려 빛을 발산하는 반도체 소자이다. 백열등이나 형광등에 비해 수명이 길고 전력 소비량이 아주 작아 친환경 광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업 초기 LED는 TV, 노트북, 휴대전화 액정표시장치(LCD) 뒷면에서 빛을 내는 백라이트유닛(BLU)에 들어갔다. LCD는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어 뒷면에서 빛을 쐬어주어야 한다. LED가 도입되기 전까지 형광등이 탑재되었다. 형광등은 LED보다 수명이 짧고 부피가 크다. 이에 따라 LED·LCD 패널은 수명이 길고 얇게 만들 수 있다. 삼성은 LED BLU 시장이 지난해 20%에서 올해 50%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올해 LED BLU 시장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TV 판매가 감소하다 보니 LED BLU 수요도 함께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TV용 BLU는 기대에 못 미치나 조명용 LED 시장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도호쿠 지방 대지진으로 전력난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LED 전구 판매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5월 LED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백90% 증가했다. 사상 처음으로 LED 조명 점유율이 백열전구를 넘어선 것이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스트래티지언리미티드’는 LED 조명 시장의 규모가 2013년 1백79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LED 선두 업체 서울반도체는 BLU 매출 부진을 조명 부문 실적으로 만회하고 있다.

삼성의 5대 신수종 사업   (투자·매출·고용 목표는 2020년까지, 자료: 삼성그룹) 

신사업 분야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주력 계열사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LED

삼성전자,
삼성의료원 

삼성전자,
삼성테크윈 

투자금액 

6조원 

5조4,000억원 

8조6,000억원 

2조1,000억원 

1조2,000억원 

매출 목표 

10조원 

10조2,000억원 

17조8,000억원 

1조8,000억원 

10조원 

고용 인원 

1만명 

7,600명

1만7,000명 

710명 

9,500명 


삼성LED는 LCD 패널에 들어가는 BLU를 생산하는 업체이다. 삼성LED 2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4.4%나 줄어들었다. BLU에 치중하다 보니 수익성이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삼성LED가 조명용 LED를 수출하려면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LED 업계 관계자는 “BLU는 삼성전자가 최종 소비자라서 특허 유무를 따지지 않으나 세계 조명 업체는 특허 문제가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지 않으려 한다. 삼성LED가 조명용 LED를 수출하려면 특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명용 LED 부문은 일본 니치아 같은 소수 선진 업체가 원천기술을 장악하고 있다. 서울반도체는 니치아와 특허를 공유하면서 수출 길을 열었다.

BLU에 치중한 삼성LED도 고전

삼성SDI는 2015년까지 태양전지 사업에 2조2천억원을 투자하고 매출 3조5천억원을 올려 세계 태양전지 시장의 8%를 차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은 태양전지 사업을 시작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연구소 수준인 1백50메가와트(MW)급 생산 라인을 갖춘 것이 전부이다. 삼성은 폴리실리콘(삼성정밀화학), 잉곳·웨이퍼(삼성코닝정밀소재), 태양전지 모듈(삼성SDI), 태양광 발전소(삼성에버랜드·삼성물산)로 이어지는 태양전지 분야에서 수직 계열화 체계를 갖추고자 한다. 하지만 수직 계열화 첫 단계인 폴리실리콘 시장에서 진입 장벽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폴리실리콘값은 올해 상반기 폭락하고 있다. 박연주 대우증권 연구원은 “태양광 산업은 재고 수준이 높고 생산 설비가 늘어나므로 짧은 시간 안에 업황이 상승 반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폴리실리콘 세계 4대 업체인 햄록, 왜커, OCI, GCL폴리는 폴리실리콘 생산 설비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빅4’는 2013년까지 생산 라인을 앞다투어 증설하고 있다. 폴리실리콘값은 2012년 40달러 초반까지 떨어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후발 업체들은 시장에서 퇴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뒤늦게 시장에 진입하는 삼성이 빅4가 쌓은 진입 장벽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삼성SDI가 태양전지 사업과 함께 추진하는 것은 전기차용 2차전지 사업이다. 삼성SDI는 독일 보쉬와 손잡고 전기차용 2차전지 개발업체 SB리모티브를 설립했다. 지난해 말 GM의 전기차 볼트와 닛산 리프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전기자동차 시장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43만6천대가량이던 세계 전기자동차 시장은 2015년에는 3백45만6천대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자동차 시장에서는 하이브리드 차량인 캄리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볼트, 순수 전기차 리프가 경쟁하고 있다. LG화학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제품에 탑재되는 2차전지를 양산하고 있다. 자동차용 2차전지 업체로서 세계에서 가장 앞선 양산 기술을 갖고 있다. 이와 달리 삼성SDI는 순수전기차용 2차전지를 개발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 (왼쪽)전기차용 2차전지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는 LG화학의 공장 내부.(오른쪽)국내 바이오시밀러 선두 업체인 셀트리온의 의약품 생산 설비. ⓒLG화학 제공(왼쪽), ⓒ연합뉴스(오른쪽)

삼성전자는 삼성의료원, 삼성종합기술원과 함께 바이오시밀러 분야에 진출했다. 바이오시밀러는 생물 세포나 조직에서 추출한 유효물질로 만들어낸 바이오 의약품이다. 바이오시밀러 분야 국내 선두 업체는 셀트리온이다. 국내 코스닥 1위 업체(시가총액 기준)인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를 계약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가 양산하는 유방암 치료제 CT-P06(허셉틴 바이오시밀러)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하반기에는 관절염 치료제 CT-P13(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이 나온다. 두 약품은 4분기 세계 20개 국가에서 임상시험을 마치고 2012년 상반기 한국, 인도, 남미 등에 출시된다. 2013년 동유럽, 2014년 유럽연합으로 판매 시장이 확대된다. 삼성은 비호지킨림프종 치료제 SAIT101(리툭산 바이오시밀러) 임상실험을 시작했다. 임상실험을 마치고 양산 체제를 갖추려면 지금부터 5년은 걸린다. 삼성은 선두 업체가 5년 동안 쌓아올릴 높은 진입 장벽에 맞닥뜨려야 한다. 공성전(攻城戰)에서는 수비 진영보다 공격 진영이 입는 피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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