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 기간 맞아 ‘중동의 봄’은 멀어지나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8.0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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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리비아에서는 정부군이 ‘반군 소탕’ 기회 삼아

세계 10억명의 무슬림들은 8월1일부터 한 달 동안 금식 기도에 들어갔다. 이슬람에서 ‘성월(聖月)’로 불리는 8월에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일체의 음식을 금하고, 알라 신의 축복을 비는 기도가 모든 사원에서 열린다. 올해 라마단은 중동 민주화 봉기와 맞물려 이 기간 중에 혹시 이변이 생기지 않을까 모두가 전전긍긍한다. 시위대는 이 기간 중에 사원에 모이는 대규모 군중을 동원해 정권 타도 압력을 강화할 작정이다. 정부군은 나름대로 라마단을 계기로 반군을 소탕할 태세이다. 그러나 예년의 라마단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돈다. 반군이나 정부군이나 모두 피로감에 젖은 듯하다. 6개월을 계속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혁명의 에너지는 거의 소진되었다. 반군을 소탕하는 정부군도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시리아가 라마단을 전후해 주요 도시에서 탱크를 동원한 무자비한 학살에 나서 국제 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 잔혹한 소탕 작전 벌여

시리아 국민들은 5개월째 접어든 민주 시위를 라마단 기간에 ‘종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주간의 금식이 끝나고 밤에 시작되는 식사와 축제를 반정부 시위로 전환할 작정이다. 그러나 정부가 선수를 쳤다. 알 아사드 대통령에 충성하는 정부군은 8월1일을 전후해 반군에 대한 잔혹한 소탕에 나섰다. 특히 1982년 자신의 아버지가 집권에 반대하는 수니파 이슬람 신도 1만명(2만명이라는 설도 있다)을 학살한 원한의 도시 하마에서 탱크를 동원해 반군에게 발포했다. 2일간의 소탕 작전에서 대략 1백40명이 죽어 지난 5개월 동안의 총 사망자는 1천6백명에 이르렀다.

▲ 지난 8월3일 파키스탄 라호르의 한 이슬람 사원 앞 광장에서 한 가족이 음식을 펼쳐 놓고 라마단 금식 기도가 끝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AP연합

신도들은 라마단 의식에 따라 하루 종일 굶어 녹초가 되었다. 이들이 지쳐 누워 있는 사원에 매 10초 간격으로 포탄이 떨어졌다고 한 목격자는 전했다. 학살이 얼마나 잔혹했으면 오바마 대통령은 “전율했다(appalled)”라고 말했다. 탱크를 이용한 양민 학살은 하마 시 외에도 시리아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진행되고 있다. 서방은 일제히 이같은 반인륜적 범죄를 규탄했다. 평소 시리아 편을 들던 러시아까지 규탄 대열에 가담했다. 유엔 안보리는 긴급회의를 열고 시리아에 대한 제재 방안을 토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번 리비아에 대한 공습을 승인한 안보리 결의가 효과를 내지 못하자 시리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에 반대하는 나라들이 많아 합의가 도출될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시리아 사태마저 안보리에 상정되었다는 것은 아랍의 민주화 혁명이 긴박한 고비를 맞았다는 증거이다.

리비아 반군은 힘 잃고, 카다피는 기세등등

▲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열린 지난 8월3일 시위자들이 무바라크의 합성 사진을 들고 있다. ⓒAP연합

또 다른 장애물은 리비아이다. 리비아의 강자 무하마드 카다피는 수천 명의 국민을 죽이면서도 물러날 기미가 없다. 반군은 서부를 장악하고 정부군은 동부를 장악한 가운데 국토는 사실상 반분되었다. 반군은 언젠가는 수도 트리폴리로 진격한다고 벼르고 있으나 무기도 떨어지고 돈도 바닥이 났다. 카다피 정권 타도를 위해서는 최소한 34억 달러의 작전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동결된 카다피의 재산 중 3억4천만 달러를 인출해 반군에 주기로 했으나 현금이 언제 반군의 손에 들어갈지는 모른다. 카다피의 재산은 미국에서 동결된 34억 달러를 포함해 세계 주요 은행에 총 1천40억 달러가 은닉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나토는 이 중 일부를 대거 인출해 반군에 넘겨줄 작정이지만, 이 과정에서 자칫 돈이 카다피의 수중으로 넘어갈 위험이 있어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카다피가 완강하게 버티는 것도 따지고 보면 돈의 힘이다. 그는 거액을 들여 용병을 모집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세력에게 돈 폭탄을 퍼붓는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서방은 카다피를 국제형사재판(ICC)에 회부하지 않고 리비아이든 외국이든 그가 선택하는 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굴욕적 협상 카드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이 카드는 다른 독재자들에게 나쁜 선례가 되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리비아 반군 사령관이 내부 반목으로 피살되었다. 이래저래 카다피는 의기양양하고 반군은 풀이 죽었다. 지난 6월 나토 지도자들은 브뤼셀에서 만나 아랍의 봄을 ‘완결’하기로 다짐했으나 혁명의 완결은 멀어지는 모습이다.

 이집트는 지난 2월 실각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과 그의 두 아들 그리고 7명의 측근들에 대한 재판을 곧 시작할 예정이다. 무바라크에 대한 재판 일정이 순탄하게 잡힌 것은 아니다. 이집트는 군부가 임시정부 권한을 대행하고 있다. 무바라크 집권 시절 국방장관이 이끄는 임시 군사 정부는 전 정권 인사들의 처벌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이를 보다 못한 수천 명의 군중들이 타흐히르(자유) 광장에 모여 3주간 연좌 농성을 벌였다. 이들의 압력에 굴복한 군부는 결국 무바라크에 대한 재판 일정을 잡고 진행 과정을 TV로 중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군중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군부와 시위대가 여러 차례 충돌해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시위대는 그들대로 분열되었다. 종교 지도자들과 세속주의자들 그리고 무슬림형제단과 보수적인 이슬람 세력은 주도권 다툼으로 사분오열되었다. 그러다 보니 혁명은 지지부진하다. 무엇보다 경제 침체로 실업자가 늘어나고 경기가 부양될 전망은 없다. 무바라크 시절 그나마 다니던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은 이런 혁명을 왜 했을까 하고 반문한다. 혁명의 열기는 충천하고 그 이상은 장밋빛이었으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딴판이다. 심지어 무바라크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다. 

 무바라크와 비슷한 시기에 실각한 튀니지의 벤 알리 전 대통령은 궐석 재판에서 마약·총기·골동품 밀수 혐의로 15년 이상의 징역에 7만2천 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그의 아내는 공금 횡령 협의로 지난 6월 35년 징역에 6천4백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 밖에도  91건의 추가 혐의에 대한 민사 재판도 예정되어 있다. 튀니지를 20년 통치한 벤 알리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망명 중인데 사우디는 그의 송환을 거부하고 있다. 이 나라도 경제가 나빠 실업자들이 득실거린다. 정부가 경기 부양 정책을 펴야 하지만 돈이 없다. 혁명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는 이집트인들과 마찬가지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민주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떠올렸다. 그러나 중동의 혁명은 냉전 종식을 가져온 베를린 혁명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거기에는 독재에 대한 염증은 있었지만 타도할 이념은 없었다. 단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안 젊은이들의 열정만 있었다. 게다가 혁명을 조직적으로 이끌 지도자도 없다. 이에 반해 리비아, 시리아, 예멘, 요르단 등의 독재자들은 돈으로 충성 분자들을 매수해 이들의 보호 속에 권좌를 잘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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