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화·정’ 전성기 저물고 있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8.0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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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열 한국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 운영1팀장 “괜찮은 이익 내고도 주가 하락된 종목이 대안”

▲ “단기적인 변수보다는 장기적인 경쟁력, 펀더멘탈을 보고 가는 것이 맞다. 업황이 전반적으로 부진하면 경쟁력이 높은 기업도 소외가 된다. 소외가 되면 저평가 국면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런 종목을 사서 모으다 보면 업황이 호전되는 구간이 찾아오고 그때 가장 먼저 높은 수익률을 올리게 된다.” ⓒ시사저널 이종현

삼성그룹주 펀드라는 것이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 주식에만 투자해 수익률을 얻는 펀드로 한국투신운용이 지난 2004년 10월 말 설정한 이래 누적 수익률 3백%를 달성하며 시장에서 5조원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이런저런 모방 상품도 많이 등장했지만, 지금도 원조로서 위엄을 잃지 않고 있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이는 백재열 한국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 운용1팀장이다. 그는 삼성그룹주 펀드 외에 현대차 리딩플러스 펀드(2008년 9월 설정),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펀드(2008년 말 설정) 운용도 맡고 있다. 총 운용 규모는 5조5천억원 정도이다. 웬만한 자산운용사보다 더 큰돈을 굴리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룹주 펀드, 업종 많이 가져 분산 투자 효과”

백팀장이 삼성그룹주 펀드를 맡은 것은 지난 2007년 7월부터다. 그가 맡을 당시 수탁고는 2조원 정도였다. 사회책임펀드는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공개하지 못하는 규정상 정확한 운용 내역을 알 수 없지만 규모가 5천2백억원으로 불어난 데는 수익률이 좋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삼성그룹주 펀드나 삼성그룹리딩플러스 펀드는 코스피 평균보다 두 배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리딩플러스 펀드는 코스피가 53.7% 오를 동안 1백42.6%의 수익률을 기록하는 등 펀드 사이즈는 제일 작지만 수익률에서는 단연 발군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는 “현대차리딩플러스는 현대차 계열사 30%와 현대차그룹이 영위하지 않는 업종의 대표 주식 70%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올해 들어선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이 좋다 보니 성적이 잘 나오고 있다”라고 밝혔다.

삼성그룹주 펀드라는 것이 혹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라는 전통적인 포트폴리오 원칙에 위반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백팀장은 “삼성그룹은 은행을 뺀 금융 업종과 IT 업종이 주력이고 건설·조선·서비스업 등 업종이 비교적 고르게 분산되어 있어 획일적인 포트폴리오는 아니다. 두세 개 섹터에 집중되어 있는 다른 그룹과는 다르다. 게다가 각 계열사의 업종 내 경쟁력도 괜찮은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그룹의 기둥은 삼성전자이다. 하지만 요즘 IT 종목은 시장에서 찬밥이다. 백팀장은 “IT 관련 분야의 업황이 전반적으로 부진한 것은 맞다. 주가에도 이것이 반영되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더욱 강해지고 확대되었다. 업황 회복의 시그널이 나타나면 삼성전자가 가장 먼저 솟구칠 것이고, 가장 좋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경제적인 변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소모성 자재 납품 사업을 둘러싸고 삼성이 IMK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예상치 못한 정치·사회적인 변수가 돌출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이다. 그는 “IMK는 기본적으로 고평가 논란이 있었던 종목이라 펀드에서 많은 비중을 가져가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해당 기업의 펀더멘탈이 제일 중요하다. 때문에 펀드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라고 설명했다. 3세 경영권 세습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계열사의 경영권 이관이나 사업 영역 조정에 대해서도 그는 “2세 경영이든 뭐든 사업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재편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개별 계열사 입장에서는 플러스나 마이너스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기업 가치 제고라는 측면에서 따져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경쟁력이 강화되는 쪽으로의 사업 조정이라면 하락장에서도 덜 빠지고, 상승장에서 먼저 오르므로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라는 대한민국의 양대 제조회사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특별히 이 회사들의 장단점을 더 잘 알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삼성그룹의 장점은 경쟁력이고, 위기 때마다 경쟁력을 확보하는 실력을 보였다. 다만 최근 애플과의 관계에서 보듯 외부 경쟁자들의 견제가 심해지고 있다. 이것을 극복해나가는 것이 리스크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제품의 질이 좋아지면서 점유율이 함께 높아졌다. 추가 성장을 하려면 브랜드 가치가 함께 높아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잘해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요즘 변동장은 과도기이자 공백기”

올해 들어서는 삼성그룹주 펀드보다 현대차리딩플러스 펀드의 수익률이 훨씬 더 좋았다. 그 이유는 올해 2분기 상승장을 주도한 차·화·정 오름세 효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시장에서 촤·화·정 전성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시그널이 나오고 있다. 정말 차·화·정의 시대는 끝일까.

“차·화·정은 돈의 힘(유동성 증가)만으로 오른 것이 아니다. 시장 기대 심리를 만족시킬 만한 실적(기업 가치 상승)을 연이어 내놓으며 시장 오름세를 주도했다. 연초 대비 차·화·정은 코스피가 오른 것보다 30%나 더 올랐다. 시장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이 계속 나와야 이런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는데 이제는 그것이 좀 힘겨운 상황이 온 듯하다. 이익 증가율 둔화 시그널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이 시장에서 아직 반영되지 않고 있어서 리스크가 되고 있다.”

그러면 투자자들에게 차·화·정을 대신할 만한 투자 대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는 먼저 ‘괜찮은 이익을 내면서도 주가가 하락된 종목의 재발견’을 꼽았다. 예를 들어 은행이나 보험 등의 금융 업종, 음식료 등 내수 관련 종목이 그동안 실적이 괜찮았음에도 시장에서 소외받았던 종목이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투자 대안은 IT 종목이다. “업황이 안 좋았던 IT는 기대치 자체가 낮아져서 조금만 실적이 좋아져도 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수익률을 크게 올리는 종목이 나올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가 수익률을 올리는 비결은 따로 있는 것일까.

“단기적인 변수보다는 장기적인 경쟁력, 펀더멘탈을 보고 가는 것이 맞다.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것은 결국 시장 점유율로 나타난다. 업황이 전반적으로 부진하면 경쟁력이 높은 기업도 소외가 된다. 소외가 되면 저평가 국면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런 종목을 사서 모으다 보면 업황이 호전되는 구간이 찾아오고 그때 가장 먼저 높은 수익률을 올리게 된다”라는 ‘상식’을 그는 다시 강조했다.

요즘 같은 변동성 장세에 임하는 그의 자세는 무엇일까. 그는 “주가는 항상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3년 이하의 단기적인 전망을 갖고 저점에 사서 고점에 매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투자하면 성공하기 힘들다”라는 단서부터 달았다.

그는 “요즘의 변동장은 유럽이나 미국보다는 중국이나 이머징 국가에서 경기가 좋아질 만한 시그널이 나와야 안정을 찾을 것이다. 지금은 일종의 과도기이자 공백기이다. 연말이나 가야 시장이 안정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바닥이 더 깊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지수 2천이 살짝 깨지는 선에서 추가적인 하락은 없을 것이다. 다시 올라가려면 계기가 주어져야 하는데 그 계기가 당분간 공백일 것 같다. 그래서 바닥을 다지는 기간이 이어질 것 같다. 3분기 어디쯤에서는 반등이 예상되는데, 그것이 중국 상황이 호전되었다는 시그널일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올해 고점이 4분기에 올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장세에 대해서는 “위로도 가기 어렵고 아래로 가기도 어려울 때 시장에 변동성이 커진다. 내년이 그런 장이 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투자관을 묻는 질문에 “우리 회사에서는 ‘꾸준한 3할 타자’가 되자는 말을 많이 한다. 이것이 운용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절제된 리스크 테이킹!”이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그는 개인적인 재테크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부동산 재테크를 매력 없어 하는 그는 한 달에 30만원씩 적립식 개인연금 펀드에 넣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목돈으로 주식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틀렸다. 내 생각에는 펀드로 적금을 들고 그것이 어느 정도 모였을 때 은행이나 부동산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다”라는 것이다. 

고려대 행정학과 85학번인 그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거쳐 공군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덕분에 또래보다 늦은 1995년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국민주의 소득 분배 효과’라는 대학원 논문 때문에 투자신탁회사라는 존재를 알고 첫 직장 한국투신운용을 선택했다. 1999년부터 리서치 쪽에서 일하다가 2003년부터 운용 매니저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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