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 떠오른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9.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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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 지형도로 본 대권 판도 / 숫적으로는 박근혜 ‘단연 최고’…문재인 팬도 1만여 명 넘어
▲ ‘정치인 팬클럽’ 문화를 주도해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왼쪽)의 아성을 급성장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오른쪽)의 팬클럽이 위협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팬클럽 정치’의 바람이 다시 불 것인가. 지난 2000년에 생겨난 실질적인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팬클럽 정치’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도 박근혜 후보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를 비롯해 정동영 후보의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과 이명박 후보의 ‘명사랑’이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다. 정치인 팬클럽이 선거 판도를 예상할 수 있게 하는 명실상부한 지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시사저널>의 취재 결과, 최근 몇몇 정치인들의 팬클럽들 사이에서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도 포착되었다.  

팬클럽의 규모와 활동력은 대선 주자의 지지율과 민감한 비례 관계를 나타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정치인 팬클럽’ 문화를 주도했던 양대 산맥은 ‘박근혜계’와 ‘유시민계’였다. 특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국내 최대·최다 규모의 팬클럽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팬클럽 지형도에서 최근 눈에 띄게 변화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급부상하는 것과 함께 ‘문재인계’가 뛰어들어 3파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성장 속도나 활동력 면에서 보면 오히려 ‘문재인계’가 ‘유시민계’를 추월해서 ‘박근혜 대 문재인’이라는 새로운 여야 대결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박근혜 팬클럽 수는 수백여 개 달해

▲ 지난 8월28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4개 팬클럽 회원 100여 명이 ‘사랑의 김장 담그기 배추 모종 심기’ 행사를 가졌다. ⓒ호박가족 사진제공

한때 ‘안풍(안철수 바람)’에 휘청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동의 1위’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팬클럽은 규모 면에서나 활동력 면에서 단연 두드러진다. 지난 2002년 12월에 모습을 나타낸 ‘근혜사랑’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박 전 대표의 이름으로 똘똘 뭉쳐 있는 팬클럽 수는 수백여 개에 이른다.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지지자들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홈페이지 ‘호박넷’에는 ‘박사모’ ‘근혜사랑’ ‘호박가족’ ‘근혜동산’ ‘뉴박사모’ 등 16개 팬클럽 단체의 홈페이지가 링크되어 있다. 이 가운데 ‘박사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된 공식적 회원 수가 6만5천여 명이다. 여기에 비공식적 회원까지 포함하면 회원 수가 10만명 가까이에 이른다. 

덩치로 볼 때 박 전 대표의 팬클럽은 정치인 팬클럽 가운데 ‘절대 강자’로 불릴 만하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가 제값을 하려면 그만큼의 ‘결집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박 전 대표의 팬클럽은 제각각 흩어져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팬클럽들이 똘똘 뭉쳐 행동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결국 지난 2008년 12월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10개 모임이 연대해 ‘호박가족’이라는 조직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호박가족’은 박 전 대표의 공식적인 팬클럽으로 활동하고 있다. 회원 수는 총 6만~7만명 정도로 ‘박사모’와 비슷하다. 하지만 ‘호박가족’ 회원 가운데에는 다른 팬클럽에 중복되어 가입한 이들이 많아 ‘박사모’에 비해서는 뭉치는 힘이 약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표의 팬클럽들은 여전히 통합을 위한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호박가족과 박사모, 근혜동산, 근혜사랑, 뉴박사모를 포함한 5대 주요 단체는 매달 모여서 대표자 회의 및 실무자 회의를 열고 있다. 아직까지 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현재 이들 5개 단체는 ‘김장 담그기’ 행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등 연대 활동에 나서고 있다.



정치권에서 박 전 대표를 제외하고 가장 충성도 강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던 이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였다. ‘시민광장’이 대표적이다. 이 팬클럽의 한 관계자는 “시민광장이 (유대표의) 거의 모든 팬클럽 활동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지난 2007년에 시민광장이 생겼을 때 팬클럽 ‘시민사랑’과 ‘시민마을’ 그리고 유시민 대표의 사이트였던 ‘인터넷 진지’의 회원들이 대거 가입했다. 현재 다른 팬클럽들과 운영진은 모두 다르지만 회원은 대부분 중복되어 있다. 2009년에 생긴 ‘시미니즘’은 좀 예외이기는 하다”라고 설명했다.

‘시민광장’에는 매일 전국 지부의 지역 단위 모임 공지 글이 게시되는 등 여전히 활동은 왕성한 편이다. 물론 ‘시민광장’에도 한계는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확장할 수 있느냐의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민광장’의 회원 수가 크게 늘어났을 때는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였다. 서거 이후 두세 달 사이에 회원 수가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지난 2009년 중순에는 1만명에 불과하던 것이 같은 해 말에는 2만명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최근까지 거의 ‘답보 상태’나 다름없다. 대권 주자로서 유대표의 가능성과 지지율 추이가 답보 또는 하락하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현재 ‘시민광장’의 회원 수는 2만3천여 명이다.

▲ 지난 7월29일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러한 가운데 최근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키우고 있는 팬클럽이 바로 범야권 대선 주자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팬클럽이다. 문이사장의 팬클럽으로는 지난 2004년 2월에 만들어진 ‘문사모(문재인 변호사를 사랑하는 모임)’와 지난해 7월에 생겨난 ‘젠틀재인’이 대표적이다. ‘젠틀재인’의 탄생은 박근혜 전 대표의 수많은 팬클럽이 탄생한 배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 팬카페 운영 방침의 차이로 ‘문사모’의 일부 회원들이 나와 새롭게 꾸린 모임이 바로 ‘젠틀재인’이다. 이는 ‘박사모’에서 ‘뉴박사모’가 떨어져나온 과정과 비슷하다. 현재 ‘문사모’의 회원 수는 7천100명을 넘어섰고, ‘젠틀재인’은 3천5백명 정도이다.

최근 문이사장의 팬클럽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9월 초부터 ‘문사모’와 ‘젠틀재인’의 게시판이 ‘통합 논란’으로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사모’는 온라인 커뮤니티상에서 지난 9월3일부터 10일까지 ‘젠틀재인’과의 통합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는 ‘통합 찬성’이었다. 유사한 시기에 ‘젠틀재인’의 게시판에는 ‘통합이 아닌 연대’를 원한다는 요지의 운영진의 공고문이 올라왔다.

지난 9월14일 ‘젠틀재인’의 토론게시판에 올라온 운영진의 최종 공지 글에는 카페 통합 추진에 대한 문재인 이사장의 답변도 실려 있었다. 게시 글에는 문이사장과 카페 운영진의 통화 내용을 옮겨 적은 부분이 있었다. 게시 글에 따르면 문이사장은 젠틀재인의 카페 운영진에게 “정치권에서나 하는 연대냐 통합이냐를 놓고 카페에서까지 이렇게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느냐. 카페를 정치에 이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연대든 통합이든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무엇보다 카페 활동을 즐겁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라고 전했다고 한다.   

▲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유명 정치인들의 팬클럽 카페들.

최근 문이사장의 팬클럽 사이에서 벌어진 ‘통합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기보다 일종의 ‘성장통’에 가까워 보인다. 아직 정치 참여 의사를 밝히지도 않은 상태에서 거의 1만명에 가까운 팬클럽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 대목이다. 앞으로 ‘정치인 팬클럽’의 지형도가 ‘박근혜 대 유시민’ 구도를 깨고 ‘박근혜 대 문재인’으로 옮겨질 가능성도 크다.

이에 대해 윤희웅 사회여론연구소 실장은 “문재인 이사장 지지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개인에 대한 단순한 호감만으로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팬클럽이 어마어마한 것도 결국 정치권 내에서 가지고 있는 힘이 반영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이사장의 지지층 가운데 일부는 노사모의 향수를 찾는 이들이다. 지금처럼 적극적 권력 의지를 밝히지 않고 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면 ‘문사모’가 ‘노사모’ 열풍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팬클럽이 바로 ‘안철수 팬클럽’이다. 최근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 이후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떠오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팬클럽으로는 지난 2001년 12월 다음 카페에 개설된 ‘안철수팬클럽’과 지난해 6월 네이버카페에 개설된 ‘러브안’ 등이 있다. 하지만 최근 안원장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오기 시작한 이후 ‘안철수 시장 만들기’ ‘안철수 대선 출마 요구’ 등의 키워드로 수많은 팬카페가 생겨나고 있어 그 파장이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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