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기능 마비시키는 ‘블랙아웃’ 막을 방법 없나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10.0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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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정전에도 산업 현장은 아수라장…전력 수요 관리하는 방법이 유일한 대안

▲ 지난 9월8일 미국 캘리포니아 바자 지역에서 일어난 정전 사태로 2백만여 명의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EPA연합

전기가 1초 끊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정에서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산업 현장은 상황이 다르다. 정유나 석유화학 공정은 순간 정전에도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는 대표적 분야이다. 1초 정전에도 공장 파이프라인을 통해 흘러가는 중간 제품들이 곧바로 굳어버린다. 전력 공급이 재개되어도 파이프를 해체하거나 열을 가해 고체화된 제품을 치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토털 블랙아웃 벌어질 가능성, 얼마나 클까

지난 9월15일, 이런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전국적으로 산발적인 정전(停電)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예고 없는 정전 사태로 아파트와 빌딩의 엘리베이터가 서고 공장이 멎었는가 하면, 병원에서는 위급 환자의 수술이 중단될 뻔하는 등 국민들은 큰 혼란을 겪으면서 불안에 떨어야 했다. 비교적 단시간 정전이었음에도 다양한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평소 5% 이상이었어야 할 전력 예비율이 이날은 24만㎾까지 떨어져 0.35%대로 내려가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에 따라 전국적인 동시 정전(블랙아웃)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블랙아웃(Black Out)은 도시나 넓은 지역의 전기가 일시에 끊기는 대규모 정전 사태를 말한다. 보통 현실에서는 전력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나 전력망 설계의 취약성 때문에 정전 도미노 현상이 발생한다. 전기는 저장이 안 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일치해야 하지만, 수요가 공급을 넘는 그 순간 해당 지역은 자칫 정전 사태로 변할 수 있다.

만일 토털 블랙아웃(Total blackout; 완전 대정전) 상태가 된다면 전쟁이나 다름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국에 전력 공급을 재개하는 데 최소한 3일 정도 걸리고, 그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이런 상황까지 치닫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토털 블랙아웃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까? 발전소는 국가의 존립과 관련된 시설인 만큼 삼중, 사중의 정전 방지 대책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발전소가 정전되는 일은 거의 없다. 전력은 산업과 문화를 틀 짓고 돌아가게 하는 국가의 동맥이다. 따라서 예측하지 못하는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예비 전력을 가지고 전력 계통을 운영하고 있다.

만일 전력 예비율이 바닥나 발전 출력에 빨간불이 켜지면 발전기는 작동 능력이 떨어져 정해진 초당 60회의 회전 속도를 돌지 못하고 주파수가 떨어진다. 발전기는 주파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부하가 급감하는 특성이 있다. 주파수는 전력의 실제 가동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열쇠로, 통상 정상 범위의 주파수는 59.8?60.2㎐이다. 그런데 전력 공급량에 비해 수요량이 많으면 주파수가 떨어지고, 59.8㎐ 이하로 내려가면 예비 전력이 ‘0(제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일순간에 전국이 블랙아웃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아무런 대책 없이 이 상태가 계속되면 엔진에 힘이 없어 자동차 시동이 꺼지듯 전국의 발전기가 멈출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책 또한 준비되어 있다. 주파수가 계속 낮아져 최악의 상황인 59.0㎐가 되면 저주파수 계전기(UFR)가 작동해 자동적으로 수요를 차단하기 시작한다. 최대 39%의 부하가 차단되어 1차 수요 차단으로 예비 전력을 3백만?4백만㎾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한전 전문가의 설명이다. 부분적으로 단전을 시킴으로써 전국적 정전을 어느 정도 막아준다는 얘기이다.

저주파수 계전기는 주파수 회복을 목적으로 변전소에 설치된 부하 차단 장치이다. 계전기는 교류의 주파수에 따라 작동하는 장치로, 주파수가 일정치보다 높을 경우에 동작하는 과주파수 계전기와 공급된 전력의 주파수가 설정된 값 이하로 내려가면 작동하는 저주파수 계전기가 있다. 저주파수 계전기는 전력 계통 보호용으로 주로 사용된다.

그런데 저주파수 계전기가 자동으로 부하를 차단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 피해 범위는 클 수밖에 없다. 저주파수 계전기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은 비상시의 마지막 카드를 사용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왜 순환 정전을 실시했을까

따라서 대규모 부하의 차단과 전력 계통 정전으로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저주파수 계전기가 단전을 하기 전에 전력 공급 운영자가 직접 순환 정전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부족한 전력 공급을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한 지역마다 하나씩 전력을 중단한 후 재가동시키도록 하는 것이 순환 정전이다. 정전 범위와 시간을 수동으로 통제하면 블랙아웃으로 진전될 가능성은 작다.

지난 9월15일 정전의 경우도 예비 전력을 남겨둔 상태에서 전국 정전이 생길까 두려워 순환 정전을 실시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주파수 상황으로 보면, 일정 시간 정격 출력(공급)이 수요보다 적어 예비 전력이 24만㎾로 떨어지고 주파수가 규정 주파수 이하인 59.8㎐ 이하로 낮아졌다. 발전기가 차단되기 직전까지 간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고 없이 단전을 하고 국가의 주요 시설까지 무차별적으로 단전을 시킨 것은 잘못이지만, 최악의 전국적 동시 정전을 막아낸 노력만큼은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만일 주파수가 59.0㎐로 떨어진 상황에서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저주파수 계전기가 작동을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전력 통제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토털 블랙아웃이 되고, 아마도 세상이 멈추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9·15 순환 정전 사태의 파장이 일파만파이다. 사건의 원인을 놓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전력의 수요 예측과 공급을 책임 지는 전력거래소는 늦더위에 따른 이상 고온으로 전력 수요가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에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가 일어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종훈 전 한국전력 사장은, 이는 전력 계통 운영의 기본 상식에 어긋나는 처사라고 말한다. 자연재해라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실상은 상황 판단 착오로 야기된 인재라는 것이다.

이번 이상 고온은 수일 전에 예고되었기 때문에 만일 당일 부하 증가를 예측했다면 전력거래소는 발전소에 긴급 추가 가동을 요청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정지 중인 수력 발전기는 1분, 세워둔 가스 터빈 발전기도 30분이면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서 비상사태를 막을 수 있다.

기상청은 9월15일 최고 온도를 33℃(남부 지역 폭염주의보)로 예보했다. 그런데 전력거래소의 전력 수급 계획안에 따르면, 전력거래소가 최고 온도 28℃를 기준으로 한 수요 예측(9월7일 예측)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최고 온도 예측에서 약 5℃의 차이가 발생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기온 1℃가 오를 때마다 전력 수요는 100만㎾ 내지 2백만㎾ 오른다고 김창섭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박사는 설명한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전력 수요가 적게는 5백만㎾,  많게는 1천만㎾가 증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상당한 전력 수요이고, 이러한 차이는 전력 수요 예측의 큰 오류를 유발할 수 있다.

중앙 집중형 공급 체계 바꿔 소규모로 전력 분산해야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정부의 전력 수요 예측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제5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을 보면, 올해 최대 전력 수요가 7천2백62만㎾로 예상되어 있다. 하지만 올해 최대 전력 수요는 7천3백13만㎾로 예상치보다 50만㎾ 이상 많았다. 자연히 정전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소비자가 마음대로 켜고 끄는 전력의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예비 전력을 높여 공급할 수도 없다. 터무니없이 전력을 낭비한다는 뭇매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전에는 전력 수요 예측이 딱딱 들어맞았을까. 아니다. 예전에도 예측의 실수는 빈번했으나 그때마다 예비 전력이 충분했던 것은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 전력거래소, 한국전력공사가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전력 사정은 어떨까. 보통 설비 예비율은 15%를 넘어야 안정적이다. 하지만 올해 설비 예비율은 6.6%에 불과하다. 내년은 7.3%, 2013년은 8.6%로 불안한 상태는 계속된다. 2015년이 되어야 15.6%에 이르러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가능해지면서 한숨 돌리게 된다. 포천에 LNG복합화력발전소가 완공되어 가동에 들어가는 시점이다. 결국 공급으로는 이번과 같은 정전 사태를 당분간은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수요를 관리하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다. 지난 10년간 석유나 가스 등 다른 에너지 소비량은 20%도 늘어나지 않았지만 전기는 80%가량 늘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전력의 공급을 더 늘리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려면 발전소를 지어야 하는데 원자력 방식은 10년, 석탄은 6?8년, 가스는 4년의 건설 기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블랙아웃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전국에서 생산하는 모든 전력을 한전이라는 단일 기업에 의해 전 국민에게 공급하고 있는 중앙 집중형 공급 체계를 바꿔야 한다. 지역별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와 열병합 발전 등으로 장기적인 지역 에너지 정책을 수립해 자기 지역에서 사용하는 전력은 해당 지역에서 생산·공급하도록 하는 전력 구조의 변화가 있어야만 오늘과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필요한 전체 전력의 총량을 여러 곳의 발전소에서 나눠서 받는 적절한 전력 분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10의 전력을 공급받을 때 ‘3+3+4’로 공급받는 것보다 ‘2+2+2+2+2’로 공급받는 것이 블랙아웃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력 수요가 크지 않은 국가의 경우 일반적인 원자력발전소보다 발전 용량이 작은 일체형 원자로 여러 기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에 일어난 초유의 정전 사태를 계기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한전, 유사시 어디부터 전력 차단할까 

한전은 전력 부족이 예상될 경우 건물 중요도에 따라 부하를 조정(단전)하는 ‘비상 수급 조절 운영 계획’을 해마다 수립해 운영한다. 그렇다면 정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전은 전력 공급 차단 순위를 어떻게 정하고 있을까. 비상 대응 체계에서 가장 먼저 전력이 끊어지는 대상은 일반 주택과 저층 아파트, 서비스업이다. 피해 규모가 가장 작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고층 아파트와 업무용 상업 시설, 경공업 공단의 전기가 끊어진다. 뒤를 이어 야구장을 비롯한 공공 다중 시설이 단전되고, 포스코나 삼성전자 같은 국가 기간 산업은 한전의 전력 순위에서 마지막으로 분류되어 있다.

국가 주요 시설인 중앙 행정 기관·군부대·공항·철도·지하철·통신·언론·금융기관·종합병원·상수도는 제외되어 있다. 따라서 최후의 순간까지 전력이 공급된다. 복구 순서는 이것의 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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