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방송의 새 물결 ‘2인자들’이 떠오른다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10.1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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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 은퇴 선언 이후 각 방송사 프로그램에 일대 변화

▲ (좌) KBS 에 출연한 박성호·이수근·김병만. / (우) SBS MC 이승기 ⓒKBS 제공

‘예능이 강호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주 눈에 띄는 용어가 바로 ‘포스트 강호동’이다. 한 예능인의 앞에 ‘포스트’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의 스타 의존도가 심각할 정도로 컸다는 반증이다.

이른바 리얼버라이어티 쇼가 대세로 자리하면서 우리 예능은 거의 강호동과 유재석에 의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이 움직인 예능 프로그램이 무려 여덟 개(강호동은 <강심장> <스타킹> <무릎 팍 도사> <1박2일>, 유재석은 <무한도전> <놀러와> <해피투게더> <런닝맨>)이다. 그것도 대부분 프라임 타임에 방송된다. 그러니 강호동이 잠정 은퇴 선언을 했을 때 방송 3사가 모두 패닉 상태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재석·강호동 양강 체제 ‘종언’…김병만·이수근 등 새로운 쇼의 가능성 보여

▲ SBS 붐·이특 ⓒSBS
실제로 그 타격은 컸다. <무릎 팍 도사>는 5년 만에 종영을 예고했고, <1박2일>은 강호동 없는 5인 체제로 남은 6개월간(사실 이 6개월 후 종영 역시 강호동 부재를 염두에 둔 결정이었을 것이다)을 버텨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강심장>은 애초부터 강호동을 염두에 두고 만든 토크쇼라는 점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여겨졌다. <스타킹> 역시 강호동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집단 MC 체제로 갈지, 새로운 MC를 영입할지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지만 과연 타격만 있는 것일까. 강호동이 미리 찍어둔 분량이 거의 소진되면서 하나 둘 강호동 없이 연출된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에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강호동의 공백이 크게 여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만큼 프로그램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1박2일>은 5인 체제로 들어서자, 그동안 강호동 추종자로서의 모습만 보이던 엄태웅이 숨겨놓은 끼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수근과 은지원, 김종민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적인 예능감을 선보였다. <강심장>도 마찬가지다. 강호동이 빠지고 이승기 혼자 투입된 이 토크쇼는 이제 좀 더 부드럽고 편안해진 인상을 주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몇몇 스타 MC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다른 캐릭터의 끼를 가렸던 것은 아닐까.

강호동이 잠정 은퇴를 선언하고 빠져나간 자리에, 이수근, 이승기가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이제 2인자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징후처럼 보인다. 어디 이들뿐이랴. 강호동-유재석 2강 체제에 빛이 바랬던 2인자는 너무나 많다. 김병만이 그렇고, 유세윤, 정형돈이 그렇다. 최근 갑자기 떠오른 붐이나 전현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그림자 속에서 평가 절하되었던 그들은 달라진 상황에서 향후 어떤 그림들을 그릴까.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인물은 김병만이다. 많은 언론 매체가 포스트 강호동을 지목하면서도 김병만을 배제한 것은, 그가 강호동이 해왔던 프로그램들의 대체재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포스트 강호동’이라는 말에는 약간의 함정이 들어 있다는 얘기이다. ‘강호동의 빈자리를 채우는’ 인물로 향후 예능 정국을 한정한다면 김병만 같은 인물이 설 자리는 없다. 그는 토크쇼가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리얼버라이어티 쇼에 적응할 만한 인물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호동 이후의 예능 프로그램을 그 형식의 다양성과 그것에서 비롯된 전혀 새로운 예능 스타의 할거로 본다면 단연 주목되는 인물이 김병만이다. 그는 기예와 몸 개그에 전통 연희가 가진 언어 유희를 덧붙여 그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달인’에 묶여 있던 김병만이 <키스 앤 크라이>로 자신의 세계가 가진 가능성을 타진했다면 이제 곧 시작될 <정글의 법칙>은 김병만쇼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강호동 ⓒ연합뉴스
이승기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자신만의 쇼를 하게 된 형국이다. 그는 공공연히 MC에는 욕심이 없다고 밝혔지만, 달라진 현재 상황에서 이승기는 예능을 통해 자신만의 매력을 보여줄 기회를 얻은 셈이다. 이승기가 좀 더 자기 스타일의 쇼를 만들 수 있는 곳은 <1박2일>이 아니라 <강심장>이다. <1박2일>에서는 그의 위치가 막내라는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심장>은 조금씩 ‘이승기쇼’로의 변환이 가능하다. 강호동에게 예능을 배운 이승기는 강온 양면을 가진 MC로 자리할 가능성도 크다. 강호동과 유재석을 섞어 놓은 듯한 특징은 이승기만의 독특한 자리를 예능 지도에 새겨넣을 수 있게 만든다.

이수근은 그동안 강호동에 의해 천거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그 끼를 눌려왔던 인물이다. 실제로 이수근의 면모는 혼자 서 있는 것보다는 누군가 함께 서 있을 때 훨씬 빛이 난다. 그것은 그가 지금껏 보여준 개그가 어떤 콩트 코미디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수근과 다른 인물의 조합(예를 들면 김병만 같은)은 흥미로운 쇼의 탄생을 가능케 한다. 유세윤도 마찬가지다. 그가 <무릎 팍 도사>에서 빛났던 것은 거기 강호동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UV 신드롬’ 등을 통해 자기만의 독특한 영역을 넓혀놓았지만 그 옆에는 늘 함께하는 인물이 있었다. 오랜 친구이자 콤비인 장동민, 유상무와 케이블을 통해 쇼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이제는 좀 더 업그레이드된 그만의 쇼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주목되고 있는 붐과 전현무는 변하고 있는 예능 정국의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큰 인물들이다. 이들은 몸 개그가 가능하면서도 동시에 진행도 가능한 캐릭터이다. 붐은 과거 가수 활동을 한 전력이 있는 데다가 리포터를 했던 경험이 있고, 전현무는 개그맨을 웃기는 예능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직업이 아나운서이기 때문이다. 전현무 같은 경우는 현재와 같은 기존 프로그램보다는 교양과 예능을 아우르는 그만의 쇼에서 더 빛을 볼 수 있는 인물이다.

포스트 강호동 시대에 2인자들이 전성기를 만들려면 강호동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 그들만의 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강호동 사태가 보여준 특정 스타에 의존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면서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좀 더 다양한 쇼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2인자들이여. 이제 쇼를 하라. 자신들만의 쇼를 하라. 


 종편 시대, 2인자들에게 ‘기회’ 될까 

2인자에게는 강호동의 잠정 은퇴 선언으로 무너진 양강 체제와 때마침 시작되는 종편 시대의 도래가 큰 기회로 다가온다. 즉, 좀 더 많은 예능 콘텐츠가 필요해진 시점에 2인자처럼 끼와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1인자에 가려 있던 인물에 대한 방송가의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몇몇은 이미 종편 쪽에서 준비를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2인자 캐릭터’를 그대로 끌어다 쓰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좀 더 최적화된 쇼의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것은 2인자들에게 큰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신생 예능 프로그램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제 그 무대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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