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최고 실세’ 담긴 폭탄 터질까
  • 김지영·안성모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10.16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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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철 폭로 사건, 이회장 대 검찰 기 싸움으로 변질…이회장 “이런 식이면 비망록 공개 불사”

이명박 정부 실세들을 겨냥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폭로 정국이 점점 ‘이회장 대 검찰의 기 싸움’으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권 실세들에게 금품 로비를 했다고 폭로한 이회장이 최근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을 잇달아 드러내면서 “계속 이런 식이면 비망록을 공개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언론은 이른바 ‘이국철 비망록’의 실체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이회장은 지난 10월1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를 받으러 들어가기 전 “검찰 수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SLS그룹 해체 기획 수사에 대해 명확하게 수사하지 않으면 정·관계 고위 인사들의 비리가 담긴 비망록을 공개하겠다”라고 밝혔다.

▲ 지난 10월13일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서울 중앙지검으로 소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14시간의 조사를 받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청사를 빠져 나온 이회장은 검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검찰이 지난 2009년 창원지검에서 무혐의 처리되었던 횡령과 비자금 조성 부분을 다시 조사하겠다며 자신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회장과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의 대질 조사도 무산되었다. 같은 날 검찰에 소환된 신 전 차관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로비 규모와 관련해 두 사람은 여전히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다. 이회장은 현금 10억여 원과 차량 그리고 상품권 및 법인카드를 제공했다고 주장한 반면, 신 전 차관은 명절 때 1천만원대 상품권을 받은 점 등 극히 일부만 인정하고 있다.

검찰 역시 이회장을 상당히 불신하는 듯하다. 그가 언론에 폭로한 내용과 검찰 진술이 다르다며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신 전 차관에게 주었다는 상품권 2천만원어치를 추적한 결과, 신 전 차관과 상관없는 SLS 직원들이 사용한 내역이 밝혀졌다”라며 이회장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임재현 청와대 정책홍보비서관은 이회장을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이다.

검찰은 이에 앞서 사업가 김 아무개씨를 통해 검찰 고위 간부들에게 1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이회장이, 검찰에서는 빌려준 돈이라며 차용증까지 제시했다고 밝혔다. 검찰 안팎에서 이회장의 말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조서가 남아 있고, 영상물이 남아 있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차용증의 경우 써준 것은 맞지만 당시 창원지검의 수사를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문서였다는 설명이다.

‘이국철 비망록’ 실체 두고 여야 반응 엇갈려

금융감독원에서도 이회장의 주장과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SLS 워크아웃과 관련해 지난 2009년 말 조선업계 침체와 회사 경영 악화로 이회장이 직접 신청했고, 채권단 98%가 찬성했다는 것이다. 이회장의 ‘검찰의 기획 수사’ 주장과 상반된다.

검찰 수사와 금융 당국의 조사가 이회장의 폭로 내용을 뒤집는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비망록 공개’가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회장은 지난 9월 <시사저널> 취재진과 만났을 때 “신재민 전 차관 등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것은 먼저 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개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다. 매우 민감한 내용들이어서 향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본 다음 공개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비망록이 공개되더라도 이회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큼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으면 또 의혹만 양산시킨 채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크다.

당시 이회장이 ‘공개하지 못하는 부분들’이라고 밝혔던 내용 중 <시사저널> 취재진이 들은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2007년 대선 전후 신 전 차관의 미국 출장 관련 내용 △검찰 등 사정기관을 대상으로 한 구명 로비 △‘여권 최고 실세’의 최측근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 내용 등이다. 이 가운데 두 가지는 이회장이 그동안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개했다.

우선 신 전 차관의 미국 출장과 관련해 이회장은 “신 전 차관이 안국포럼에 있던 2007년 대선 전에 두 번이나 갑자기 ‘로스앤젤레스로 출장 가야 한다’라고 해서 출장비를 지원했다. 당시 불거졌던 BBK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안다. 2008년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던 때에도 한 차례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 이대통령의 개인적인 일이었던 것으로 안다. 그때도 출장비를 지원했다. 신 전 차관의 미국 출장비는 SLS그룹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보면 알 수 있다”라고 밝혔다.

확실한 증거 제시 못 하면 흐지부지될 수도

▲ 같은 날 소환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이회장과의 대질 조사를 거부했다. ⓒ연합뉴스

검찰 등 사정기관을 통한 SLS그룹 구명 로비 주장에 대해서도 “김씨에게 수표로 1억원을 전달했고, 김씨가 그 수표로 검찰 수뇌부에 로비를 벌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 있다. 이회장은 9월 중순께 기자에게 “검찰에 있는 검사장급인 ㅈ씨, ㅇ씨 등과 경찰 고위 간부인 ㅇ씨 등도 자유롭지는 못하다”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이들에게 어떻게 로비를 벌였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고 있는 ‘여권 최고 실세’의 최측근에게 구명 로비를 벌였다는 주장도 내용이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회장은 <시사저널> 취재진에게 ‘여권 최고 실세’의 실명을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최측근’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구명 로비를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신 전 차관에게 건네진 금품은 ‘여권 최고 실세’에게 전달된 것에 비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여권 최고 실세’의 한 측근은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회장을 만난 적은 있지만 민원 차원이었다. 그 밖에는 만난 적도, 전화한 적도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수십억 원대 금품 수수’와 관련해서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다”라고 일축했다.

이회장이 주장한 내용들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권에서는 “이회장은 전혀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라는 얘기가 확산되는 상황이다. 야권에서는 이회장이 무언가 확실한 사실을 내놓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이다. 하지만 정작 이회장 본인은 이런 여야 정치권 각각의 노림수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눈치이다. 오직 자신이 만들었던 회사를 되찾는 데만 모든 신경이 모아져 있다. 상황이 참 묘하게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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