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다르고 밖 다른 ‘대표팀 골잡이’의 운명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10.25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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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월드컵 예선에서 잇달아 골 터뜨려 주목…소속팀 아스널에서는 후보로 ‘대기 중’ 상태

ⓒ시사저널 윤성호

박주영은 박지성이 은퇴한 현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완장을 넘겨받았다. 대표팀의 간판은 곧 한국 축구 전체의 얼굴이 된다. 박주영은 지난 8월 말, 유럽 축구의 여름 이적 시장이 종료되기 직전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아스널로 이적했다. 유럽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인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박주영에게 공격의 중심축을 의미하는 백넘버 9번을 선사했다. 그러나 아스널에서 지난 50일 동안 박주영 이 출전한 경기는 1.5군이 나서는 칼링컵 단 한 경기, 71분에 불과했다. 대표팀의 에이스, 하지만 소속팀에서는 후보. 이것이 현재 박주영의 두 얼굴이다.

최근 조광래호에서 박주영의 활약은 눈이 부시다는 표현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지난 8월 삿포로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충격적인 0-3 완패 이후 네 경기에서 박주영은 총 일곱 골을 집어넣었다. 레바논과의 월드컵 3차 예선 1차전에서 해트트릭, 이어진 쿠웨이트 원정에서도 선제골을 넣었다. 아스널 이적 후 한층 강해진 책임감과 집중력은 10월에 있었던 두 차례의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빛났다. 교체 출전 한도를 넘어서며 A매치로 인정되지는 못했지만 동유럽의 강호 폴란드를 상대로 두 골을 터뜨린 박주영은 UAE와의 3차 예선 세 번째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주도했다.

당초 조광래 감독은 박주영의 경기 감각을 걱정하고 있었다. 전 소속팀 모나코를 떠나 아스널로 이적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여파로 한·일전에서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아스널 이적 후 출전 기회가 줄어든 것도 걱정이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상황을 대비해 K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던 이동국을 발탁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UAE전이 끝난 뒤 조광래 감독은 박주영에게 대만족을 표시했다. 그는 “염려했던 것보다 주영이의 몸 상태가 좋다. 자신의 원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해주었다”라고 말하며 박주영의 경기력을 두고 벌어진 언론의 논란도 완전히 잠재웠다.

하지만 대표팀에서의 눈부신 활약이 소속팀에서의 입지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아스널에서 박주영이 직면한 현실은 냉엄하다. 그가 아스널 유니폼을 입은 뒤 출전한 경기는 9월21일 칼링컵 3라운드 스류즈베리전이었다. 아스널은 리그컵인 이 대회에 보통 유망주 위주의 1.5군을 투입한다. 박주영이 선발로 나서기는 했지만 그와 함께 뛴 선수들은 20대 초반부터 10대 후반의 어린 선수들이었다. 선발로 나서 후반 26분까지 총 71분을 뛴 이날 경기가 박주영이 아스널 소속으로 출전한 유일한 공식 경기이다. 대표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고 돌아왔지만 그런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지난 10월16일 열린 선덜랜드와의 홈경기에서는 상대팀에서 뛰는 후배 지동원이 교체 출전하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다. 급기야 10월20일 열린 마르세유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서는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지난 시즌까지 프랑스 무대에서 활약했던 박주영으로서는 충분히 자기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경기였지만, 벵거 감독은 냉정했다.

국내 팬들의 기대와 달리 입단 후 좀처럼 팀 내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하는 것은 박주영이 아스널을 택할 때 이미 예고된 시나리오였다. 4-2-3-1 포메이션을 쓰는 아스널에서 박주영은 최전방의 원톱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현재 아스널의 주전 원톱은 네덜란드 국가대표 공격수인 로빈 판 페르시이다. 세계 최고의 왼발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판 페르시는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 정상급 공격수로 인정받고 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뒤에는 팀에 대한 강력한 충성심을 발휘하며 주장 완장까지 넘겨받았다. 기량·입지·인기 모든 면을 보았을 때 박주영이 넘어서기에는 벅찬 벽이다. 결국 박주영의 생존 전략은 판 페르시의 파트너 혹은 그가 결장할 때 들어가는 팀의 제2 옵션이 되어야 한다. 그 자리를 놓고 프랑스 리그1 득점왕 출신인 모로코 국가대표 마루앙 샤막, 아스널이 올여름 2백50억원이 넘는 이적료를 주고 야심차게 영입한 특급 유망주 알렉스-옥슬레이드 체임벌린과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주어진 기회를 본다면 박주영은 샤막, 체임벌린에게도 밀린 아스널의 네 번째 공격 옵션이다.

12월 중순 이후 맞을 ‘만회 기회’ 잘 살려야

▲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헤딩슛을 날리는 박주영. ⓒ시사저널 윤성호

그렇다면 과연 박주영은 현재 위기 상태일까? 아스널에 입단한지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위기론을 얘기하는 것은 섣부른 결론이다. 애초에 벵거 감독은 박주영을 당장 활용할 카드가 아닌 경험과 기량을 동시에 갖춘 공격진의 보험으로 영입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아스널은 내년 초 공격진에 구멍이 생긴다. 1월21일부터 가봉과 적도 기니에서 공동 개최로 열리는 20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위해 제르비뉴(코트디부아르)와 샤막(모로코)이 한 달 가까이 장기 차출되기 때문이다. 제르비뉴는 왼쪽 주전 윙포워드이고, 샤막은 판 페르시의 백업 선수이다. 두 선수가 빠질 경우 박주영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올 것이 분명하다. 특히 12월 중순 이후 사흘 단위로 리그 경기를 치르는 박싱 데이에는 체력을 고려해 로테이션 체제가 이루어진다. 벵거 감독은 이 시기에 박주영을 투입하며, 제르비뉴와 샤막의 공백을 메울 카드인지를 집중 점검할 것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박주영을 영입한 목적 역시 그 시기를 수월히 돌파하기 위해서다.

결국 12월이 박주영이 아스널에서 향후 어떤 입지를 점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시간이 된다. 만일 두 선수의 역할을 충분히 메워준다면 박주영은 네이션스컵이 끝난 뒤에도 현재보다는 훨씬 단단해진 입지를 자랑하며 경쟁 체제로 갈 수 있다. 만일의 상황에 대한 보험이 아닌, 즉각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벵거 감독의 카드가 되기 위해서 박주영은 오는 12월에 자신의 인생 최대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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