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오고 갔는데 화해의 인사는 못 했나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10.2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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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평화 다시 시험대 올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포로 맞교환

포로 교환은 통상 동등한 비율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 상식을 초월하는 비대칭적 방식으로 서로의 포로를 교환했다. 양측은 팔레스타인에 감금된 이스라엘 병사 한 명과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죄수 1천27명을 맞교환하는 협정에 최근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1차로 이스라엘 병사 한 명과 팔레스타인 죄수 4백77명이 10월18일 자유의 몸이 되었다. 석방된 팔레스타인 죄수 중에는 27명의 여성이 포함되었다. 나머지 죄수 5백50명은 두 달 안에 석방된다. 이스라엘에는 아직 6천여 명의 팔레스타인 죄수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처럼 파격적인 비율로 그리고 대규모로 서로의 포로를 교환하기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처음이다. 63년에 걸친 두 민족의 갈등의 역사를 감안하면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일이다. 그래서 참으로 오랜만에 중동 평화의 서광이 보인다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적지에서 귀환한 포로들을 맞는 환호는 잠깐이고, 벌써부터 증오와 분노의 감정들이 쌍방에서 폭발하고 있다. 이스라엘 감옥에서 6년을 복역하고 석방된 한 팔레스타인 여성은 “나의 다음 목표는 더 많은 이스라엘 병사들을 납치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또 다른 병사들은 이스라엘 감옥에 남아 있는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모두 석방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격앙된 반응은 이스라엘에서도 나왔다. 하마스에 납치되어 5년간 가자 지구에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길라드 샬리트 일병을 뜨겁게 환영했던 이스라엘 국민들은 고문과 영양실조로 뼈만 남은 그의 몰골을 보고 치를 떨었다. 포로 석방을 계기로 팔레스타인과 평화 공존을 하려던 희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희망적 논평은 현실과 거리 있어

▲ 지난 10월18일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팔레스타인 포로가 풀려나 가족과 얼싸안고 있다. ⓒ© Xinhua

포로 교환이 평화와 화해를 촉진시킬 것이라는 일부의 기대는 중동 평화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는 비관으로 대체되었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대화의 가능성을 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적 논평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양측은 서로 상대방이 포로를 학대했다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샬리트 일병이 적십자사 직원들과의 면담도 거부당한 채 독방에서 굶주렸다고 주장했다. 하마스(Hamas)측은 팔레스타인 포로들이 고문, 자백 강요, 사형(私刑)을 당했다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의는 실현되지 않았고 포로 교환은 적에 대한 항복이다”라고 말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감옥에 남은 팔레스타인 병사들의 석방을 위해 더 많은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하라고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하마스의 경쟁 세력인 파타(Fatah)의 지배 아래에 있는 팔레스타인 임시정부 대통령 마무드 아바스는 남은 포로들을 반드시 석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베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는 텔아비브 공항에서 샬리트 일병과 포옹한 후 석방된 팔레스타인 죄수들이 다시 폭력을 사용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처럼 분노를 촉발한 포로 교환이 이루어진 배경에 대해 이스라엘이 중동 민주화 봉기로 안보 차원의 불안과 고립감에 사로잡힌 점을 지적했다. 하마스가 터키 및 이집트와 유대를 강화하고 이스라엘의 오랜 숙적인 이란과도 동맹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리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마스는 하마스대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거점을 상실할 경우 포로 교환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지 않을까 우려했다. 또한 그동안 시리아의 지원을 받아온 하마스로서는 그 나라의 민주화 봉기로 3천명이 피살되는 사태를 보고 그런 상황에 말려드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 정보 관리들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은 지휘부를 이집트로 옮기는 문제를 검토 중이며 협상 과정에서 이집트의 중재를 수용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스라엘은 또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이 선거를 통해 집권 세력으로 등장할 경우 그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지금 단계에서 포로 석방 중재에 동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이번 포로 교환은 수많은 사연과 예외를 만들었다. 5년 만에 석방된 샬리트 일병은 26년 만에 살아서 귀환한 첫 군인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그를 구출하기 위해 할리우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키는 대대적인 작전을 폈으나 실패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대체로 그의 석방을 환영하고 있으나 단 한 명의 자유를 위해 1천여 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석방한 것을 두고 ‘밑지는 장사’를 했다는 비판도 강하게 나온다. 더구나 지난 몇 년간 팔레스타인과의 포로 교환에 완강히 반대하던 네탄야후 총리가 국내에서의 인기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포로 교환에 합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석방된 팔레스타인 죄수들 중에는 이스라엘 국민을 죽인 살인범으로 30년 이상 또는 종신 징역을 받은 중죄인이 다수 포함되는 바람에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은 많은 유족의 반발을 샀다. 유족들은 포로 교환을 저지하기 위해 여러 차례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이스라엘 최고법원은 정치적 사안이라는 이유로 기각했다.

증오의 뿌리 너무 깊어 갈등 해소 쉽지 않아

▲ 지난 10월18일 포로 맞교환으로 팔레스타인 감옥에서 풀려난 이스라엘 병사와 그를 맞이한 아버지(오른쪽). ⓒAP연합

포로 교환에 대한 부정적 반응에도 석방된 포로들을 환영하는 분위기는 뜨거웠다. 특히 팔레스타인측이 더 열광했다. 가자 지구와 웨스트 뱅크 지구에서는 20만명이 모여 팔레스타인과 하마스를 상징하는 깃발을 흔들면서 석방되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축제를 벌였다. 하마스의 대변인은 “우리가 승리했다”라고 선언했다. 팔레스타인 임시정부는 온건파인 하마스와 과격파인 파타 두 세력으로 구성되어 파타는 웨스트 뱅크를,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각각 지배하고 있다. 두 파벌은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첨예한 내부 대결을 벌이고 있으나 하마스의 온건 노선이 국제적으로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 내에서 하마스의 입지는 포로 석방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유엔에서 펼쳐지는 팔레스타인의 국가 승인을 위한 외교 노력도 하마스측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런저런 요인에 따라 하마스는 향후 정상적인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과정에서 선제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지난 5월16일 건국 63주년을 맞았다. 이스라엘 건국일은 팔레스타인에게는 나라를 잃은 날이다. 아랍어의 나크바(Nakba), 즉 대재앙(catastrophe)의 날이기도 하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2년간의 전쟁에서 약 10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지금의 이스라엘 땅에서 추방되었다. 현재 1천만명으로 추산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랑민이 되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의 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 나라가 탄생한 날, 또 다른 한 나라는 없어졌다. ‘대재앙’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가 허사로 끝났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증오는 그 뿌리가 너무 깊다. 이 갈등이 겨우 한 차례의 포로 교환으로 해소되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성급하거니와 당장의 부정적 반응에 좌절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60여 년을 서로 증오했으면 지칠 때도 되었다. 해결은 간단해 보인다.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에서 자유를 누리는 대신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른바 ‘두 개의 국가’ 협정을 체결하면 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수많은 평화 노력이 실패한 끝에 모처럼 화해의 계기가 마련된 만큼 누가 희생자이고 또 다른 누군가가 희생자의 희생자이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모든 희생자의 고통을 서로 인정하는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비극의 터널은 끝이 보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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