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막대한 재산을 기부한 ‘고액 기부자’들이 생계에 곤란을 겪거나 송사에 휘말리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월1일 국회에서 발의된 ‘명예기부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은 30억원 이상의 재산을 기부한 사람을 ‘명예기부자’로 인정하고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무엇보다 고액을 기부한 후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보장한 점이 주목된다. 법안에 따르면, 총 재산이 1억원 이하이며 소득이 없는 60세 이상의 명예기부자는 생활 보조금을 지급받는다. 명예기부자는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때나 사후 장례를 지낼 때 전부 또는 일부의 비용을 감면받는 혜택도 누리게 된다. 명예기부자가 죽은 후 생계에 곤란을 겪는 유족 또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법안에서는 30억원 이상을 낸 명예기부자가 아니더라도, 10억원 이상을 기부한 사람 역시 생활 지원금, 의료 지원, 장제비 등에서 나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부 행위 취지 훼손 걱정하는 소리도 나와
그러나 이 법안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우선 고액 기부자만이 혜택을 받는 점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꾸준히 기부 활동을 해 사회에 큰 울림을 준 고(故) 김우수씨(54)의 사례 등을 고려하면, 소액 기부자를 도외시한 채 고액 기부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지적이다. 중국음식점 배달원으로 일하다 지난 9월25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씨는 한 달 수입 70만원을 아껴 매달 다섯 명의 청소년에게 후원금을 보냈다.
기부 행위의 취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의견도 많았다. 기부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의 행위인데, 어떤 대가를 암시하게 된다면 그 순수한 취지가 빛을 바랜다는 주장이다.
기부액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호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의 황선미 연구교육국장은 “현금 기부 외에 주식·부동산 기부의 경우 그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현물이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실제로 법안을 적용할 때 이처럼 모호한 기준이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 고액 기부자를 국가가 직접 지원하는 방식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미국·유럽 등 기부 문화가 발달된 곳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기부 방식이 존재하는데, 기부자들은 그중 가장 합리적인 방식을 선택한다. 이를 통해 생계가 곤란해지거나 법정 소송에 휘말리는 등의 어려움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다양한 기부 방식을 국내에 도입함으로써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산 연금’ 제도가 대표적이다. 대학이나 자선 단체, 각종 재단 등에 재산을 맡기면 그 50% 내에서 정액 연금 및 세금 감면 혜택 등을 주는 제도이다. 기부자와 그 가족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으며, 남은 재산은 재단에 귀속된다. ‘기부자 추천 기금’ 제도 역시 주목받는다. 이 제도는 공적 재단이나 단체에 기부금을 낸 뒤 기부자가 그 운용과 사용에 대해 조언할 수 있도록 약정하는 방식이다. 자신이 기부한 재산이 그릇 사용되는 바람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