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비박근혜 연합’ 3인방이 뜬다?
  • 조진범│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1.10.31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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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론 흔들리면서 이재오·김문수·정몽준 ‘3자 연대설’ 나돌아…“당 밖에서 대안 물색 가능성”

 

▲ (왼쪽부터)이재오 전 특임장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몽준 전 한나라당대표. (왼쪽부터)ⓒ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유장훈, ⓒ 시사저널

 

“이제 ‘박근혜 독주’는 끝났다. 더 이상 독주 체제는 없다.”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 결과에 대한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의 진단이다. 범야권 단일 후보인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승리가 ‘박근혜 대세론’에 직격탄을 날렸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이제 박 전 대표가 반드시 대통령이 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박 전 대표도 대권 주자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내년 대선까지 한참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게임은 이제부터다”라고 말했다. 의미심장하다. 친박계 일각에서조차 ‘박근혜 대세론’을 부정하는 현실이다. 그만큼 서울시장 보선 결과는 충격적이다.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건’이다. 기성 정치권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도 시민 세력에 무릎을 꿇었다. 기성 정치권을 대표하는 박 전 대표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친박계의 한 전략가는 안철수 원장의 등장과 그에 따른 ‘박근혜 대세론’의 몰락을 ‘견지망월(見指忘月)’에 비유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뜻으로, 본질을 잊고 곁가지에만 신경 쓰는 것을 꼬집은 말이다. 그는 “안원장은 손가락에 불과하다. 안원장과 같은 콘셉트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동일한 효과가 나올 수 있다. 안원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배경의 무서움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심각성을 알렸다. 그는 “사실 국민들은 기성 정치권에 경고의 시그널을 꾸준히 보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는 물론 올해 4·27 재·보선에서도 국민들은 기성 정치권의 반성을 촉구했다. 그런데도 기성 정치권은 변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당권 싸움에 매몰되었고, 민주당은 대안 세력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기성 정치권의 갈등 해결 부재도 한몫했다. 서울 강남과 강북의 갈등,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 세대 간 갈등 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켰다. 안원장의 등장은 우연이 아니다. 기성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안원장이 ‘짠’ 하고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라고 강조했다.

수도권 의원들, “박근혜로는 힘들다”

 

▲ 서울시장 재ㆍ보궐 선거를 하루 앞둔 10월25일 박근혜 전 대표(왼쪽)가 나경원 후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울역까지 도보로 이동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친박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지방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의 승리를 견인했다는 점을 들어 ‘박근혜 대세론’이 완전히 꺾인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실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대구 서구청장과 부산 동구청장 선거는 박 전 대표의 지원에 힘입었다. 충청도에서도 ‘박근혜’는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문제는 서울이다.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보선에서 7%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패배해 ‘박근혜 대세론’은 어떤 의미에서든 훼손이 불가피해졌다.

내년 대선 승부는 ‘중원에서 결정 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인단 비율이 증명한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시·도별 선거인단 비율은 경기 21.8%, 서울 21.4%, 인천 5.3%였다. 수도권 전체 선거인단이 48.5%에 이른다. 박 전 대표의 아성인 대구와 경북은 각각 5.0%와 5.6%에 불과했다. 부산도 7.6%에 머물렀다. 대구·경북뿐만 아니라 부산·경남까지 설사 영남 지역에서 몰표가 나온다 하더라도 수도권에서 밀리면 박 전 대표로서는 대권을 잡기 힘든 상황이다.

수도권에서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대안론’을 둘러싸고 이미 심상찮은 분위기가 나돌고 있다. 당장 이재오 전 특임장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의 ‘3자 연대설’이 나돈다. 한 친박계 인사는 “이 전 장관이나 김지사, 정 전 대표가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거론하면서 ‘박 전 대표에게 대권 후보 자리를 주면 필패’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겠는가. 한나라당 밖에서 제3의 인물을 찾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친이계’의 ‘수장’인 이 전 장관이 직접 대권 후보로 나설 가능성은 당분간 작아 보인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시장 보선에서 ‘이명박 정부 심판론’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정권의 일등 공신인 이 전 장관도 책임이 있다. 이 전 장관이 국민의 불신 대상인 기성 정치권의 멤버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전 장관의 한 측근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이 전 장관이 무슨 명분으로 전면에 나서겠느냐. 국민들로부터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소리를 듣기 딱 알맞다. 당분간 자숙하면서 후일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설왕설래이다. 박 전 대표가 서울시장 보선에서 당초 20%대였던 격차를 줄였다는 평가도 일부 들리고 있지만, “역시 수도권에서는 박 전 대표로 힘들다”라는 아우성이 분출되고 있다. 생존의 위기에 휩싸인 수도권 의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일단 박 전 대표로의 ‘쏠림 현상’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 전 대표의 행보이다. 국민들에게 달라졌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내상’을 회복할 수 있다. 여권으로서도 중요하다.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면서 여권 전체가 위기를 맞은 국면이 되었다. 박 전 대표 외에 대안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친박계 일부 “박 전 대표 측근부터 정리해야”

박 전 대표는 원점에서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각오를 나타냈다. 선거 직후인 10월27일 자신의 측근인 이정현 의원의 광주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 전 대표는 대세론이 타격을 받았다는 질문에 대해 “언론에서 대세론이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원래 대세론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지지했다가 실망하면 반대로 돌아서는 것이 민심·천심이어서 정치권이 항상 국민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어떻게 하면 그 뜻에 부응하고 희망을 드릴까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내는 데 강한 의지와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또 말로 끝날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대세론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핵심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친박계 인사들은 박 전 대표가 측근들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적 쇄신으로 변화의 첫 단추를 꿰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친박계의 속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충성 경쟁을 하면서 신경전까지 벌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박 전 대표에게 직언하는 의원들도 별로 없고, 눈치만 살핀다. 박 전 대표 주변에 간신들만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과감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박계 소장파’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과거의 조직 선거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추세이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더라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선거 운동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2040세대의 문화에 빨리 적응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040세대를 위한 커뮤니티도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며,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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