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제3 세력’의 힘
  • 김형준│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
  • 승인 2011.11.14 15: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치러진 다섯 번의 한국 대선은 제3 세력의 등장과 쇠퇴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기존 정당에서 잠재력이 있는 대권 후보들이 탈당해 새로운 당을 만들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3 세력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DJ)은 정통 야당인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민당을 창당했고, 대선에서 27.0%의 득표로 3위를 차지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가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했고, 대선에서 19.2%의 득표로 역시 3위를 했다. 2007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 직전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15.1%의 저조한 득표에 그쳤다. 한편, 1992년 대선에서는 대기업 총수인 정주영 회장이 국민당을 만들어 16.3% 득표로 3위를 차지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이 한국 축구의 월드컵 4강 진출에 힘입어 국민통합21을 창당했지만,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에서 패배함으로써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이와 같이 대선을 앞두고 급조된 제3 세력은 지향하는 가치가 아니라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를 내세웠지만 기존 정당과 똑같이 사당화의 틀을 극복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파괴력은 별로 크지 못했다. 2002년을 제외한 네 번의 대선에서 이들 제3 세력 후보의 평균 득표율이 19.4%였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현재 정치권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야권 통합 신당과 제3 정당 논의가 무성하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혁신과 통합’의 대표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2월17일 야권의 통합 신당을 출범시키는 일정에 사실상 합의했다. 문이사장은 “제3의 정당을 만드는 것은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해도 야권의 분열밖에 안 된다”라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최근 “나도 야권을 단합시키는 후보로 왔듯이 제3의 정당이 성공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기 때문에 안철수 교수가 제3의 정당으로 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는 야권 통합 신당이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심의 흐름은 정반대이다. 리서치앤리서치가 9월30일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기존 정당과는 다른 새로운 정당 또는 제3의 정치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동의한다(’63.0%)는 비율이 ‘동의하지 않는다’(30.0%)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디오피니언이 지난 10월31일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안철수 교수 중심의 제3 세력 정당을 내년 총선에서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30.3%로 야권 통합 신당(22.0%) 지지보다 훨씬 많았다.

과거에는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정치 안정을 위해 제아무리 새롭다 하더라도 막판에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제3의 무소속 후보나 제3 정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런 정치적 관행이 ‘안철수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과연 안철수 교수가 통합 신당에 참여할지, 아니면 기성 정당을 뛰어넘는 제3의 길을 걸을지 자못 궁금하다. 어느 길이 진정 한국 정당 정치의 뒤틀리고 왜곡된 패러다임을 바꿔 국민에게 희망을 주며 시대정신에 맞는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