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명품’ 홀대할 거면 왜 부르셨나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11.1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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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감독, 해외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신뢰 보여…“외국 명품만 선호하다간 대표팀 내부 경쟁 약화 자초” 지적받아

▲ (왼쪽부터) ⓒ 연합뉴스, ⓒ 연합뉴스, ⓒ 시사저널 윤성호

지난 11월2일 유럽 무대에서 맹활약 중인 기성용(셀틱)이 쓰러졌다. 피로 누적으로 인한 면역력 결핍으로 장염에 몸살이 겹쳐 결국 소속팀 경기에 불참하고 한국으로 건너와 정밀 검사를 받아야 했다. 기성용이 쓰러지자 노심초사한 것은 먼저 중동으로 건너가 월드컵 3차 예선을 준비하고 있던 조광래 감독이었다. 기성용의 합류만을 오매불망 바라던 그는 선수가 정상 컨디션이 아님에도 대표팀 합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미 기성용은 닷새 넘게 훈련을 하지 못했고 소속팀 셀틱에서도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다며 무리한 대표팀 차출을 자제해줄 것을 대한축구협회에 거듭 요청했다. 결국 조광래 감독은 기성용이 병상에 누운 지 일주일이 지난 11월9일에야 합류시키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을 하는 데 무려 사흘간 망설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성용을 대체할 선수, 이른바 ‘플랜 B’의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혹사에 쓰러진 ‘해외파’ 기성용

지난해 7월 출범한 이후 조광래호는 총 19회의 경기를 치렀다(2011년 10월7일 폴란드전은 교체 선수 초과로 A매치로 인정 안 됨). 기성용은 그 19회의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다. 유럽의 새로운 시즌이 개막한 8월 이후에도 기성용은 대표팀 경기를 치르기 위해 매달 한국으로 날아와야 했다. 조광래 감독은 “(기성용은) 현재 대표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이다”라고 표현했을 정도이다. 그는 소속팀 셀틱에서도 가장 중요한 선수이다. 이번에 쓰러지기 전까지 팀이 치른 19경기 중 18경기를 뛰었다. 출전 시간으로 환산하면 팀 내에서 제일 많다. 그만큼 기성용은 대표팀과 셀틱 양쪽에서 중요한 에이스라는 의미이다.

문제는 혹사 논란이 일 정도로 지나치게 중용되었다는 것이다. 대표팀과 셀틱에서의 경기를 합치면 기성용은 8월 이후 매주 두 경기씩을 소화한 셈이 된다. 거기다 왕복 20시간에 2만km에 가까운 비행 거리를 세 차례나 왔다 갔다 했다. 탈이 나지 않는 것이 비정상적일 정도의 일정이었다. 특히 셀틱의 연고지인 글라스고는 국내 직항로가 없어 늘 경유해야 한다. 소속팀은 차지하고라도 대표팀에서만큼은 중요한 실전이 아닐 경우 배려가 필요했다. 평가전일 경우 기성용을 쉬게 해줄 수 있었지만, 그는 늘 선발 출전이었다.

결국 선수가 쓰러지고서야 사단이 났다. 이미 현 대표팀에서 기성용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양날의 검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성용이 대표팀에서 미치는 영향력과 활약이 큰 만큼 그가 부상이나 다른 이유로 빠질 경우에는 대안이 없다. 이번 사태는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대표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는 기성용의 대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스타일과 장단점은 다르지만 K리그에도 수준급의 선수들이 있다. 팔방미인 김정우(성남)는 남아공월드컵 당시 뛰어난 활약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터프한 플레이로 제2의 김남일로 통하는 신형민(포항)도 올 시즌 물 오른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표팀에서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제대로 된 테스트를 받지 못했다.

‘국내파’들, 기회 적었다며 아쉬움 표출

▲ 조광래 감독 ⓒ시사저널 윤성호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에 부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K리그의 시민구단인 경남 FC에서의 성과 때문이었다. 재정적으로 열세인 경남을 유망주 위주의 팀으로 일신시키고 리그 상위권 팀으로 바꾼 능력을 인정받아 대표팀의 수장이 되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후에는 유럽과 일본에서 뛰는 해외파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해외파가 없는 골키퍼나 절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중앙 수비수를 뺀 포지션에서는 철저히 해외파가 경쟁 우위를 점한다.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의 경우 지난 8, 9월에 소속팀에서 거의 출전을 하지 못했지만 대표팀에 오면 선발 멤버로 나섰다. 주장인 박주영(아스널)의 경우 새 소속팀을 찾지 못한 상태이던 지난 8월 한·일전에서 최악의 플레이를 펼쳤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는 우려 섞인 소리가 나오고 있다. K리그 감독들은 “해외파의 기본 기량이 뛰어나도 경기 감각이 떨어져 있으면 위험하다”라고 조언한다. 일부 감독은 막상 소집이 되어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소속팀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선수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뛰게 하지도 않을 선수를 뽑아가는 것은 대표팀의 지나친 권리 행사이다”라고 말했다. 수원의 윤성효 감독은 “막상 대표팀에 보내도 오히려 컨디션이 떨어져서 돌아온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런 과정에서 K리그의 스타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이동국(전북)이다. 올 시즌 K리그에서 16골 15도움을 기록하며 전북의 선두 질주를 이끈 이동국은 지난 10월 1년3개월 만에 대표팀에 복귀했다. 이동국 자신은 대표팀 복귀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이었지만 박주영의 컨디션 난조를 우려한 대표팀 코칭스태프에서 추가로 발탁했다.

그런데 조광래 감독이 이동국에게 준 기회는 A매치로 인정받지 못한 폴란드전의 전반 45분과 이어진 UAE전의 후반 10여 분이었다. 이후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진 이동국은 종아리 부상을 입었고, 전북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이동국은 대표팀에 다녀온 뒤 “국가대표는 영광이지만 선수를 믿어주지 않는 환경에서는 힘들다”라며 우회해서 불만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동국과 더불어 K리그 최고의 선수로 꼽힌 염기훈(수원)도 마찬가지다. 아시안컵 이후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던 염기훈은 소속팀 수원에서 맹활약하자 지난 9월 레바논, 쿠웨이트와의 3차 예선 2연전에 선발되었다. 그러나 염기훈은 쿠웨이트전에 교체 멤버로 25분가량을 뛰었다. 염기훈은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라며 K리거에게 기회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염기훈의 경우 지난해 10월 열린 한·일전에서 후반 20분에 교체 투입되었다가 16분 만에 다시 교체되어 나오는 수모를 겪었다.

김정우 역시 앞서 열렸던 이란전에서 교체 투입된 지 21분 만에 교체되어 나왔다. 이런 과정에서 조광래 감독에 대한 K리그 스타의 불신이 쌓여가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해외파에 대한 조광래 감독의 지나친 의존과 신뢰는 외국 명품만 선호한다는 인식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국내파를 외면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대표팀의 내부 경쟁 약화와 신뢰 체계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흘러가고 있는 여론의 불신도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성용이 빠지면서 생긴 구멍을 메울 대체 선수가 없다는 사실은 이런 단편적인 상황이 얽히고설키며 나타난 조광래호에게 닥칠 수 있는 위기의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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