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스터가 만든 화끈한 팀 물려받아 선수들과 울고 웃다 ‘본전치기’했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1.11.2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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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호 롯데 자이언츠 감독 인터뷰

▲ 양승호 1960년 출생 신일고·고려대 졸업 1982년 상업은행 입단 1983년 해태 입단 1986년 OB 베어스로 맞트레이드 1987년 은퇴 1988~90년 신일중·고 감독 1990년 OB 베어스 원정기록원 1994년 OB 베어스 코치 2006년 LG 수석코치/ 감독대행 2007~10년 고려대 감독 2011년 롯데 감독 ⓒ시사저널 유장훈

‘8888577’이라는 말이 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롯데의 정규 리그 순위이다. 그 긴 가뭄 끝에 로이스터가 3년 연속 3-4-4위의 성적을 내며 가을 야구의 갈증을 풀어주자 로이스터는 부산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롯데 구단이 지난해 11월 그 영웅을 내치고 양승호 감독을 사령탑에 앉히자 부산 갈매기들이 발칵 뒤집혔다.

‘누구 빽으로 내려온 낙하산이냐’라는 비판은 양반이었다. 4월에 3할대라는 승률이 나오자 양감독에게는 문자 협박까지 날아들었다. 그는 “욕하는 것은 괜찮은데 욕 문자까지 받으니까 받은 계약금, 월급 다 돌려주고 서울로 갈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라고 말했다. 중2 아들은 “아빠 나도 댓글로 싸우고 있어”라고, 고등학교 1학년생인 딸은 “공인이면 그 정도 욕은 먹어도 된다”라고 아빠를 응원했다. 그 사이 롯데 팬들은 그에게 ‘양승호구’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5월에 6할대의 승률을 올리면서 됐다 싶었는데 6월에 다시 3할, 7월에 다시 승률이 올라갔다. 그러다 8월에 6할5푼까지 오르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3위, 2위까지 치고 올라가며 시즌을 마감하자 그의 별칭은 ‘양승호굿’ ‘양승호감’으로 바뀌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롯데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제 부산 갈매기 중 그를 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20년 넘는 지도자 인생 중 “가장 긴 한 해를 보냈다”라는 양감독을 지난 11월15일에 만났다.

야구는 어떤 스포츠인가?

멘털이 중요하다. 모든 구기 종목은 기량이 앞선 팀이 70%의 승률을 가진다. 하지만 야구는 30%가 70%를 뒤집어놓을 수 있는 스포츠이다. 좋은 팀이 결정적 에러 하나로 자멸할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집중을 요구하는데, 상대팀이 약하다고 마음을 놓다가는 덜미를 잡힌다. 실력이 3인 팀이 실력이 7인 팀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야구의 매력이다. 그래서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9회까지 가봐야 안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분위기 싸움이다. 점수를 내야 할 때 못 내면 그 다음에 투수가 처진다. 찬스 뒤에 위기, 위기 뒤에 찬스라는 말이 야구에는 살아 있다. 

팀으로서의 롯데는 어떠했나?

로이스터가 좋은 팀을 물려주었다. 선수에게 ‘너희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공격적이고 화끈한 팀을 만들어놓은 점은 인정해주어야 한다. 선수들의 스윙이 커진 것 같은 단점도 있다. 기존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좀 더 섬세하게 다듬어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나는 좋은 팀을 맡아서 본전치기를 했다. 

올해 2위를 했는데.

내년에도 4강 이상의 성적을 올려야 의미가 있다. 다만 플레이오프에서 선수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고 강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감독 입장에서 그 점은 만족스러웠다.  

어떤 야구를 선보이고 싶나?

팬이 좋아하는 야구는 롯데 야구이다. 빵빵 쳐대니까. 감독이 원하는 야구는 투수력의 야구이다. 안정적이고 불확실성이 적으니까. 하지만 팬은 완봉보다는 호쾌한 홈런을 바란다. 선동렬 감독이 삼성에서 투수력을 훌륭하게 만들어놓은 것은 인정해야 한다. 투수력이 강해야 다른 준비도 가능하다. 선감독처럼 그런 팀을 만들려면 몇 년이 걸린다. 자이언츠는 투수력이 약한 것이 약점이다.

선수와는 어떻게 소통했나?

지난해 납회식 때 선수 모두에게 소주 한 컵씩을 받아 마셨다. 80잔이더라. 또박또박 숙소까지 걸어갔다. 정신력이었다. 게임이 안 풀리면 내가 선수를 데리고 술집에 갔다. ‘잊어버리고 술 먹고 자라’고. 4월과 6월에 그랬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문자 소통도 한다. 선수들이 보내오는 문자는 다 제각각이다. 그것을 보고 이 친구는 이런 스타일이구나 하고 속내를 짐작하곤 했다. 내가 상반기에 하도 욕을 먹으니까 그때 선수들끼리 그랬다고 하더라. ‘언제 이런 감독 모셔보겠냐’라고….(웃음)

올해 실질적인 위기는 언제였나?

4월에 3할대 승률을 올리다가 5월에 승률이 6할 가까이 올라갔다. 그러다 6월에 다시 3할로 떨어졌다. 됐다 싶었는데 또 떨어지니까, 감독 입장에서는 선수를 믿어야 하지만 쉽게 믿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하루하루 선수를 체크해야 한다. 

초반의 시행 착오는 어떤 이유에서였나?

투수력에서 신데렐라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이 친구도 써보고 저 친구도 써보았다. 지난해에 잘하던 친구도 써보고. 지난해에 잘하던 친구가 4, 5월에 못해서 2군으로 내려보내고 한 템포 늦춰가기로 했다. 6월에 땜쟁이 투수 로테이션도 정상화시키고 보직을 확실히 정했다. 되든 안 되든 이렇게 간다고 선수들에게 주지시키자 투수력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직전까지 고려대 감독이었는데 대학 야구 감독과 프로야구 감독의 차이점은?

프로야구는 돈 놓고 돈 따먹는 프로의 세계이다. 대학 감독은 주위에서는 이겨야 한다고 하지만 인성 교육이 더 중요하다. 대학 졸업하고 전부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잖나. 그 다음 준비도 시켜주는 것이 감독이다. 정말 학생들과 허물 없이 이야기하고 지냈다.

어떤 제자들이 있나?

신일고 감독 시절에는 조성민이나 강혁·김재현·조인성이 있고, 대학에서는 LG의 신정락·김남석, 삼성 임진우, 기아의 홍재호 등이 있다.

선수 시절에는 꽃을 피우지 못했는데.

“게임이 안 풀리면 내가 선수를 데리고 술집에 갔다. ‘잊어버리고 술 먹고 자라’고. 문자 소통도 한다. 선수들이 보내오는 문자를 보고 속내를 짐작하곤 했다. 지나고 보니 잘하는 선수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좌절하는 선수에게는 죽도록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라고 말한다.” ⓒ시사저널 유장훈
스물여덟 살에 OB 베어스에서 부상으로 그만뒀다. 프로야구를 알려면 현장 밑바닥부터 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OB에서 원정 기록원으로 다시 시작했다. 나와 맞트레이드해 해태로 간 한대화는 4년 연속 우승하며 최고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마음속에) 그 갭이 컸다. 지나고 보니 잘하는 선수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영원한 팬은 한때 잘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좌절하는 선수에게는 ‘사회에 나가면 무슨 일을 하든 힘들다. 여기서 죽지 않을 만큼 힘들게 대들어봤냐’라고 말해준다. 죽도록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라고 말한다. 쉽게 포기하면 다른 분야로 가도 성공하지 못한다.

재능보다는 노력인가?

노력이 있어야 재능을 살릴 수 있다. 재능이 있는 친구가 노력을 안 하면 한계에 부딪힌다. 재능은 없는데 노력하는 친구는 나중에 뭘 해도 된다. 요즘에는 재능 있는 친구가 많다. 재능을 더 개발하기 위해 더 노력을 하면 슈퍼스타가 될 것이다.

롯데의 차세대 ‘재능’은 누구인가?

고원준은 롯데가 아닌 한국 야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단, 스스로 노력을 하고 자기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설정해야 한다. 아직 어리고 멘털 부분에 약한 데가 있어 질책을 하고 있다. 지금 일본 가을 캠프에 파견한 이재곤이나 김수완, 진명호 가운데서 적어도 한 명이 선발로 커주어야 하고….

내년 부담감이 클 텐데.

15승 투수인 장원준이 군 입대로 빠지고 이대호의 거취가 미정이라 감독 입장에서는 고민이 많다. 일단 FA(자유계약선수)를 지켜보고 용병 수급까지 끝나봐야 말할 수 있다.

본인 성격은 어떤가?

낙천적이다. 한 게임 끝나면 털어버린다. 상반기에 힘든 일이 이어질 때 숙소 앞 통닭집에서 맥주 한 잔 시켜놓고 혼자 먹고 들어가서 잤다. 그때는 나를 못 알아봤으니까. 이제는 못 돌아다닌다.(웃음)

지금 인생의 몇 회전에 와 있나?

7회 정도에 와 있는 것 같다. 감독은 하고 싶어서 더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언젠가는 야구 인재를 발굴하는 일을 하고 싶다. 선수만 가져다 주는 스카우터가 아니라 면담을 통해 선수의 사생활도 상담해주고 길을 가르쳐주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그는 와이번즈의 오너인 최태원 SK 회장과 신일고·고려대 동기동창이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재계 인사와 사적인 통로도 있다. 하지만 ‘야구’와 ‘부산’을 이어주는 인연은 없었다. “나는 정말 부산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롯데 구단에서 검토 끝에 나를 택했다고 연락이 와서 만나고 계약했을 뿐이다. 정치권 배후설이 나왔을 때 정말 황당했다. 허허….” 그는 이제 지난 1년을 편하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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