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명품, 다른 가격’ 이유 있었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1.11.2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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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마트까지 고가 해외 브랜드 판매 나서…병행 수입·점포 위치 등에 따라 값 달라져

▲ 홈플러스는 매장 안에 명품관을 입점시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홈플러스 

흔히 ‘명품’이라고 불리는 고가의 해외 브랜드 제품에 대한 수요가 막힘 없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00만~2백만원대 제품은 저렴한 제품으로 분류되고, 1천만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출시되자마자 팔려나가기 바쁘다. 백화점에 입점한 고가 브랜드 매장 앞에서는 관리자가 고객들을 줄 세워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최근 병행 수입을 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명품 매장을 입점시킨 대형 마트까지 등장하면서 명품이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길을 걷다가 3초에 한 번씩 볼 수 있다는 일명 ‘3초백’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가격에 민감한 명품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명품 가격에 낀 거품이 조금이나마 빠질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한마디로 같은 제품, 다른 가격이다. 과연 명품 가격은 얼마나 부풀려져 있을까.

국제적인 컨설팅업체 매킨지는 최근 1년간 명품 구매에 최소 100만원을 지출한 소비자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명품을 갖는 것은 예전처럼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는 말에 45%의 소비자가 동의했다. 지난해 21%에서 대폭 상승한 수치이다. 실제로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루이비통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올해 상반기에 44%의 신장률을 기록하는 등 명품 매출은 46% 증가했다. 신세계 첼시 프리미엄 아울렛의 경우에도 매출액은 지난 2007년 이후 해마다 37%씩 급증하고 있다.

‘명품 싸게 사기 노하우’ 줄이어

그치지 않는 명품 인기에 인터넷에는 명품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해외 사이트를 통해 직접 구매하는 것에서부터 면세점이나 온라인 구매, 최근에는 프리미엄 아울렛까지 가세하면서 ‘명품 싸게 사기 노하우’가 줄을 잇고 있다. 명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직장인 장소진씨(30·여)는 “굳이 백화점이 아니어도 명품을 파는 곳은 많다. 같은 제품을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는데 백화점만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다. 물론 거품을 조금 덜어내도 여전히 비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예 그런 제품(가방, 의류 등)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 나 같은 20~30대 여성에게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여러 루트가 많이 생겨서 좋다”라고 말했다.

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도 명품에 낀 거품 덜어내기에 가세했다. 지난해 8월 잠실점에 명품 매장을 연 홈플러스는 개장 후 월평균 매출액이 최고 1억원에 달했다. 특히 1호점인 잠실점의 경우 월 매출액이 최고 1억8천만원에 달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후발 주자로 합류한 롯데마트 역시 비슷하다. 대형 마트와 명품이라는 어색한 조합은 의외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한 매장에 직접 찾아가 보았다. “이 제품은 1백35만원인데 S/S 신상품이에요. 백화점보다 20%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구입하시면 5% 더 할인해드려요.” 프라다에서 출시된 한 가방을 가리키자 직원이 다가와 설명해준다. 이 매장은 대형 마트 홈플러스에 입점해 있는 명품 매장이다. 프라다, 구찌, 에트로, 미우미우 등 다루고 있는 브랜드만 10여 개가 넘는다. 기자가 가리킨 것은 백화점에서 1백60만원대에 팔리고 있는 제품이었다. 다른 제품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40~50%까지 할인 폭은 다양했다. 물론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가격 기준이다.

계산해보면 35만원 정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나마 다른 제품과 비교했을 때 이 정도 할인 금액은 적은 편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일까? 전상균 홈플러스 테넌트패션사업본부 바이어는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더욱 손쉽게 명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자체 마진을 크게 줄여 가격 거품을 없앴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자체 마진은 어디에서 줄일 수 있을까? 해당 점포 관계자는 “물건은 병행 수입으로 들여온다. 해당 국가에서 직접 주문해 들여오기 때문에 유통 마진이 줄어들어 그만큼 고객에게 싸게 판매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공식 수입업자가 아닌 제3 업자가 정품을 수입하는 것이 병행 수입이다. 과거에는 공식적인 업자를 통해서만 수입이 이루어졌지만 소수 업체들의 독과점을 방지하고자 지난 1995년부터 병행 수입도 합법적인 수입 절차로 허용되었다.

그런데 병행 수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소비자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가짜 제품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병행 수입업체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고객들이 그런 질문을 많이 한다. 병행 수입이라고 하면 가품이 아닐까 걱정한다. 그럴 때는 오히려 백화점보다 싼 가격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싸니까 가짜일 것이다’라고 할 때는 답답하기도 하다. 한국보다 명품 시장이 더 활성화되어 있는 일본의 경우에는 병행 수입이 명품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 그만큼 병행 수입도 이제 믿을 수 있는 유통 경로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롯데마트에 입점해 있는 또 다른 명품 점포의 사정도 비슷하다. 1층에 있는 이 명품관은 끌로에, 구찌, 프라다, 멀버리, 미우미우, 펜디 등 20여 개에 달하는 브랜드를 취급하고 있다.

가격은 시중 판매가보다 많게는 30~40% 저렴하다. 인기 제품인 멀버리 가방의 경우 2백30만원이 넘는 백화점가보다 30여 만원 저렴한 1백99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역시 병행 수입을 거친 제품이다. 점포 관계자는 “자체 개런티 카드를 발급해 백화점에서 산 것과 똑같이 1년간 보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병행 수입에 대한 오해가 있어 처음에는 꺼리는 고객도 있었지만, 같은 제품을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이점이 역시 크게 작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병행 수입을 통해 유통 마진을 줄이는 것과 함께 판매 수수료가 낮은 것도 명품에 낀 거품을 덜어내는 데 한몫하고 있다. 한 브랜드가 백화점에 입점할 때 대개 매출의 일정 비율을 백화점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간다. 일종의 월세 개념이다. 입점을 원하는 업체는 초기 인테리어 비용을 부담한 후 정해진 판매 수수료만 백화점에 내면 된다. 롯데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한 브랜드 매니저는 “신상품의 경우 보통 정상가의 16%를 (백화점에서) 가져간다. 1만원짜리 상품을 팔면 1천6백원은 백화점에 내는 식이다. 백화점에 따라 혹은 브랜드에 따라 수수료는 다를 수 있다. 최대 30%까지 된다. 이 역시 관리비, 유지비에 포함되기 때문에 수수료가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원가를 책정할 때 고스란히 반영된다. 같은 제품이라도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는 것이 쌀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라고 설명했다.

홈플러스 역시 명품관 개장을 발표하면서 “직수입을 통한 유통 마진 축소와 함께, 특히 홈플러스가 판매 수수료를 시중 백화점보다 20~30%포인트 가까이 저렴한 8%로 대폭 낮춤으로써 가능해진 결과이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아울렛이나 대형 마트보다는 백화점이, 백화점 중에서도 이름 있는 백화점이 판매 수수료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병행 수입으로 들여온 제품을 파는 아울렛 같은 곳은 판매 수수료가 적기 때문에 그만큼 비용을 줄이기가 쉽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백화점보다 아울렛이 네임밸류가 떨어지기 때문에 (수수료 인하로 인해) 비용 절감이 되고 원가도 낮게 책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자체로 수수료가 일단 줄어들고, 특히 대형 마트 같은 경우 전략적으로 판매 수수료를 더 낮춘다면 그쪽에 입점한 명품 매장은 거품이 제거되면서 가격 경쟁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에는 이마저도 사라진다. 임대료, 유지비, 관리비 등이 빠지면서 판매 금액도 자연스레 더 낮아진다. 최근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상품 중 가짜에 대한 논란이 커지며 주요 업체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백화점이나 아울렛 등 큰 규모의 업체를 등에 업고 입점하는 것보다는 경쟁력 있는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 가격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명품 시장도 활성화하고 있다. ⓒW인터내셔널

백화점은 여전히 ‘명품 모시기’에 혈안

지식경제부의 주요 백화점 상품군 매출 증감률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명품 판매는 전년과 비교해 10.9% 증가했다. 9월의 15.1% 증가율에 비해서는 다소 둔화된 양상이지만 같은 기간 여성 캐주얼이 5.1%, 남성 의류가 0.6% 증가에 그친 것에 비하면 단연 돋보이는 신장세이다. 명품관을 들여놓은 대형 마트 역시 상승세이다. 실적에서는 홈플러스보다 오히려 후발 주자인 롯데마트의 선전이 눈에 띈다. 송파점과 서울역점의 월평균 매출이 1억원 수준이다. 지난 4월 말 문을 연 월드점의 경우 1, 2호점의 두 배에 달하는 월 1억9천만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 불황에도 개의치 않는다. 적어도 명품 시장에서는 이러한 이상 현상이 적용된다. 그런데 시장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프리미엄 아울렛도 더 많은 브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이런 경쟁은 면세점에까지 번졌다. 로드숍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온라인 병행 수입 판매도 활발해지고 있다.

백화점도 고가의 명품 브랜드를 입점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리 많아도 백화점이라는 이름 아래 모이는 고객들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브랜드 가치가 높을수록 백화점에서 떼가는 수수료 비율은 낮다. 명품 매장들에는 대부분 한 자릿수 판매 수수료가 책정되는데 이것이 전체 매출액에 비례하기 때문에 수수료가 20~30% 되는 매장보다도 나을 때가 있다. 하지만 백화점도 주요 지점이 아니고서는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을 꺼린다. 와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형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병행 수입업체 관계자는 “이제 소비자들도 명품을 구입하는 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식 수입업체라는 명목하에 가격을 비싸게 유지한다면 앞으로 수요는 더욱 이쪽(병행 수입)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도 무상 수리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똑같이 제공하고 있는 만큼 가격 이외의 경쟁력을 찾아야 수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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