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민주당, 담대하게 진보의 길 가야”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1.11.2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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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 사회운동의 이정표로 남을 일”

ⓒ시사저널 유장훈

“‘끝장 토론’이 무산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누가 그랬어요? 정동영 ‘민노당’ 의원이요?”

지난 10월3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취재진과 민주당 간사인 김동철 의원 사이에 오간 문답이다. 이날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핵심 쟁점인 ISD(투자자·국가 소송 제도) 조항을 놓고 국회에서 ‘여·야·정 끝장 토론’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야당측 패널이었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함께 토론회를 ‘보이콧’했다. 이를 두고 회의장에 참석한 김의원이 정최고위원을 민노당 의원으로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농담조로 한 말이기는 하지만, 같은 민주당 내에서조차 최근 정최고위원의 ‘좌클릭’ 행보가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대권 쇼를 한다”라고 말하지만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진정성을 인정받아 ‘새로운 정동영’으로 거듭났다. 한·미 FTA 처리 문제로 한창 파열음이 들끓던 11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최고위원을 만났다.

11개월 가까이 끌어온 한진중공업 사태가 노사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나?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사회 운동의 차원에서도 하나의 이정표로 남을 일이라 생각한다. 시민들은 그동안 민주화 운동, 광우병 쇠고기 파동, 반값 등록금 등의 문제 등에서 전방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노동운동 현장과 결합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시민의 힘 덕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살아서 내려올 수 있었다.

사태 초기부터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활발히 활동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 지난 11월4일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맨 오른쪽)이 손학규 대표와 함께 시민들에게 한·미 FTA 관련 홍보물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나는 ‘담대한 진보’를 표방하며 복지 국가 노선을 주창해왔다. 복지 국가의 핵심에는 바로 노동 문제가 있다. 노동 문제, 즉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복지 국가로 갈 수 없는 것이다. 직접 현장에서 부딪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올해 초 (소속 상임위를) 외교통상위원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로 옮겼다. 지난 2월 임시국회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한진중공업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부상해 있었다. 특히 현장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설을 처음 들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 평생 들은 연설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이었다. 그때 마음속으로 ‘나에게 힘이 있다면 반드시 저 여자를 살려야겠다’라고 다짐했다.

당시만 해도 현장에서는 정최고위원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반성문’부터 썼다. 정리해고가 본격화된 것은 문민 정부 말 IMF 체제가 들어선 이후부터였다. 그 후 민주 정부 10년 동안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정리해고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원인은 보수 정권이 제공했지만, 민주 정부 시절을 거치며 많은 노동자가 고통을 받은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 처음 부산 영도를 찾았을 때도 사과부터 했다. 속죄하는 의미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을 지켰다. 특히 국회 청문회를 성사시킨 것이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청문회를 거쳐 노사 합의에 이르는 과정까지,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다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역할이 컸다. 국회 청문회를 개최하는 데는 야당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난 8월 초에 직접 홍대표를 만나 청문회 개최를 위해 힘써줄 것을 요구했다. 홍대표가 이 요구를 수용하면서 청문회가 열릴 수 있었다. 홍대표는 따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만나는 등 사태를 해결하려 애쓰기도 했다. 그 밖에도 한나라당측 인사로 황우여 원내대표, 이범관 간사가 청문회가 성사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주었다. 이번 한진중공업 사태는 노사 문제 해결에 여야가 함께 나서 생산적인 역할을 한 첫 사례라 할 만하다.

지금은 한·미 FTA에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파격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변화인데.

(노무현 정부 시절과 달라졌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난 2007년 10월 내가 했던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보아도, 그 주제는 한마디로 ‘작은 미국’이 아니라 ‘큰 스웨덴’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애초 나의 지향은 ‘큰 스웨덴’으로 상징되는 진보적인 방향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9월 미국 금융 위기를 계기로 그에 대한 신념이나 구체적인 각론을 갖추게 되었다.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목격하면서 종전의 애매했던 입장을 깊이 반성했다. 그리고 ‘맞다. 이 길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한·미 FTA 또한 절대 가서는 안 될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민주당의 전통적 노선에 비해 더 ‘좌클릭’한 것이다 보니, 당 전체보다 개인의 이미지 가꾸기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노당 의원 아니냐”라는 말까지 들리는데.

현재 민주당의 정체성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다. 당은 이미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내 주장을 받아들였다. 강령에 ‘보편적 복지’가 강조되고 ‘중도 개혁’이 빠졌다. 과거의 민주당과 지난해 10월 이후 민주당은 다르다. ‘진보’는 정동영만의 가치가 아니라 민주당의 가치이다. 이것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옛날 민주당에 안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최고위원이 주장하는 야권 통합 전당대회 방식을 두고도 기존 당권 주자들의 반감이 상당하다. 자칫하면 당내 입지가 상당 부분 약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개인의 입지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당이 살아야 개인도 산다. 각자의 눈으로 통합 문제를 볼 것이 아니라 국민의 눈으로 통합을 보아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모두가 살게 된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람, 어떤 세력 중심으로 통합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왜, 무엇을 위해 통합하는가이다.

지금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난 25년간은 민영화, 규제 완화, 노동 유연화 등이 중심이 된 신자유주의 담론이 지배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아마 내년 총선과 대선은 새로운 ‘2013년 체제’를 정립하는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참여정부 시기에 시작한 한·미 FTA와 관련해 공개 반성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 운영 원리를 바꿔 ‘재벌 개혁’ 및 ‘복지 국가’의 길로 나아가자는 데 합의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권 교체는 어렵다.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내가 (지난 대선에서) 실패해보았기 때문이다. 그 실패의 경험 속에서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내 나름의 확신을 얻었다.

그런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나?

최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평화복지네트워크’라는 이름의 전국적 조직을 준비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서는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 안남영 민주당 상임고문 등과 함께하고 있다. 아직은 형성기이다.

차기 대선을 겨냥한 행보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이다. 대권 도전 의사가 있는 것인가?

대선 레이스는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본격적으로 출발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안개가 낀 것처럼 불확실한 상태이다. 총선이 끝난 후 그 지형 위에서 후보 경쟁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앞에는 ‘한·미 FTA 저지’라는 목표가 있다.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반(反)FTA 공동 전선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야권 통합까지 나아가야 한다. 대선은 한·미 FTA 저지, 통합 정당 수립이라는 과제를 차례로 달성한 후에 생각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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